한인회장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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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회장의 빛과 그림자
  • 김길남
  • 승인 2011.12.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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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길남 / 단국대 재외동포연구소장, 전 미주총연 회장

김길남 소장
혈통적으로 우리는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배달겨레의 단일민족이며, 사회적으로는 고조선인, 고구려인, 발해인, 백제인, 가야인, 신라인을 거처 고려인 그리고 다시 조선인이 되었다가 1900년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선포로 대한인이 되었다가 1945년 해방 후 한반도가 분단되어 대한민국이 건국된 남쪽지역은 사람들은 한국인이 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북쪽지역사람들은 조선공민이 되었다.

한반도가 분단되어 한국인과 조선인으로 갈라진 것처럼 해외동포사회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진 자들은 일본에서 구성한 재일 조선인 총련합회를 구성하고 대한민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대한민국재일민단을 조직해 있다. 냉전시대까지 중국과 구소련 지역에서는 조선족협회와 고려인협회가 구성되어 있었으나 한국과의 국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아 이들과 교류가 없었다.

1950년 후반에 미주지역에서 대도시마다 조직되어 있던 한국인 학생회, 한국인 친목회, 교민회 등이 학생들보다 일반인의 숫자가 늘어나자 한인회로 이름을 바꾸어 한인회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한국인이어서 한국인회라는 단체가 필요가 없었지만 120여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전통과 문화가 같고 언어와 풍습이 같은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인들만의 모임이 필요했다.

조선왕조의 고종은 을미사변이후 자주 독립국의 의지를 선포하고자 대조선 제국으로 국호를 정하고자 하였으나 우리나라가 3한으로 분할돼 있던 것을 3한을 통일한 대한으로 정하고 지금 소공동에 있는 원구단에서 대한제국 황제로 하늘에 예를 올리고 1897년 10월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취업이민으로 도착한 이들은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000가 발행한 여권으로 미국에 왔다. 그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처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 된 것이다. 미주에서 최초로 1903년 도산안창호가 San Francisco에서 창립한 단체의 명칭도 한인친목회였고, 1909년에 조직한 단체의 명칭 또한 대한인국민회였다.

1940대후반부에서 창립되기 시작한 한인회가 전 세계에 700여개가 있다. 미국48개주에 190여 한인회가 가장 많고, 러시아에서 남미 아르헨티나 그리고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한국인이 사는 곳 이면 어디에나 한인회가 있다.

한인회가 이념적으로 일정한 목표를 세우고 동지를 규합하여 창설된 단체가 아니고 이민와서 살다보니 우리들과 피부색이나 전통이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여 “우리”라는 공동체로 우리가 필요해서 결성한 단체이다. 지난 50년간 한인회는 시대적 환경에 따라 초기한인사회에서는 상부상조를 위한 친목기능 그리고 중기한인사회에서는 봉사기능이 한인회의 주요 활동이었다. 한인사회가 성장하면서 동창회 향우회 같은 친목단체로 친목기능을 이양하고, 봉사기능은 전문봉사기관으로 이관된 오늘의 한인회는 시대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Mission Statement가 필요한 전환기에 와 있다.

국가 예산과 공권력의 보호 환경아래 활동하는 정치인은 성취업적에 따라 역사가 기록되지만, 한인사회를 대변하는 한인회장은 예산도 공권력도 없이 집단의사를 창출하여 단체를 이끌어야 하고 “겨자씨” 같은 실수에도 냉혹한 비판을 받고 물러나야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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