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강도도 겁먹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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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강도도 겁먹는 개
  • 최미자
  • 승인 2011.10.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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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가주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는 재미수필가 최미자씨가 미국 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레몬향기처럼>(2007) <샌디에고 암탉>(2010) 등의 수필집을 발간한 그는 재미동포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편집자주>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동영상을 보았다. 로스앤젤레스의 근교 한 편의점으로 두 명의 강도가 대낮에 사냥총을 들고 와 위협했다. 조금 있으니 가게 안에 있던 치와와가 물듯이 짖어대었다. 계속 짖는 소리가 난다. 잠시 후 보안용 카메라엔 강도가 가게를 빠져나가는데 너 죽고 나 죽자며 필사적으로 좇아가는 용감한 파코(Paco)의 뒷모습이 보였다. 몸무게가 15파운드인 강아지. 으하하. 이처럼 웃음을 선물해주는 귀여운 치와와의 당찬 모습은 우리 집 개와 똑같았다. 동영상이 재미있어 보고 또 보았다. 다치지 않은 행운의 가게 주인은 용감한 치와와를 자랑했는지 이처럼 세계로 퍼져 나가며 즐거운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고 있다.

이민 초기부터 어린 딸하고 친구처럼 지내고 집도 지키라며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동물보호소에 가서 입양할 개를 선택하려니 개장을 돌아보았다. 한 개장 앞에서 개구쟁이 남편은 얼마나 사나운지 알아본다며 철장 문을 발로 찼다. 그걸 본 직원이 와서 우리에게는 개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개를 학대하는 부끄러운 동양인 가족으로 망신을 당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황한 우리는 문화가 달라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며 사과를 했고, 겨우 사정해서 한 마리를 입양했다. 입양 후에도 우리가 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동물 보호소에 들려 종종 보고를 했다. 순식간에 잘못 저지른 개인의 행동 하나가 전체의 한국인으로 오해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웃집 개를 발로 걷어찼던 사람이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간 신문기사를 보았다. 동물 사랑이 대단한 서양사람들의 좋은 태도를 이곳에서 배우며 살아간다. 어린아이는 물론 개들도 뜨거운 여름 차 안에 내버려뒀다가는 주인이 감옥에 가게 된다. 주인이 묻혀 있는 무덤으로 날마다 찾아가는 이야기며, 전화번호를 발로 눌러 구급차를 부르는 개도 있지 않은가. 더러운 개밥 그릇에 종일 우리에 가두어두거나 목을 매어두는 한국에 사는 천덕꾸러기 개들의 애처로운 눈망울들이 자주 떠오른다. 화풀이로 개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짐승 같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한국인의 소식에 나는 감사한다.

인정 많은 딸과 버린 개를 종종 주어오는 남동생 때문에 개를 도맡아 기르며 나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깊게 배울 수 있었다. 바닥에서 아무거나 개가 집어먹으면 안 되니 집 안 청소는 자주 하게 되고 귀찮아도 매일 개의 털도 빗질해준다. 귀여운 재롱과 영롱한 눈망울이 나를 웃게 해주니 우린 서로 행복하지 않은가.

녀석이 곁에 앉으면 전기 장판이 따로 없다. 딸의 조언대로 동물이라고 얕보지 말고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니 진정한 가족이 되어갔다. 사람처럼 잔꾀를 부리거나 사기도 치지 않으니 스트레스도 주지않는다. 속이 좁은 개는 가끔 앵 풀이를 했지만, 이 녀석은 예쁜 짓으로 은혜를 갚는다.

지난해 책 출판일로 두어 달 고국으로 나왔을 때, 녀석이 궁금하여 전화로 물어보았다. 밥 먹고 볼일 보고는 종일 꿈적도 안 하고 대문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외출할 때도 물 한 모금도 먹지 않고 방석이 따끈하도록 앉아 있다. 이런 충성 때문에 지금은 녀석의 잠자리도 승진을 시켰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어린 시절은 잠시 떠돌아다녔지만 녀석의 중년 복은 태평이다. 지난번 삽살개는 간질병을 앓아 약을 먹이며 키웠는데 이 녀석은 우리랑 테니스장에서 신이 나게 공놀이를 한다. 한국말이랑 영어랑 모두 알아듣고 재주까지 부리는 천재이다.

방석 귀퉁이며 옷 단추를 물어뜯던 6개월짜리 천방지축도 이젠 주인이 싫어 한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동물에게 꽤 냉정했던 남편의 마음까지도 긴 세월 걸려 바꾸어 놓았다.

예로부터 철판을 깔고 살아가는 못난 인간을 오죽하면 개만도 못하다고 흉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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