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미선이의 세계평화 기원 지구촌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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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미선이의 세계평화 기원 지구촌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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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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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서 피워올린 첫 '반전 촛불'
지구촌을 한바퀴 돌아 하와이까지
[송년/새해맞이] 효순.미선이의 세계평화 기원 지구촌 아리랑

김지은/권박효원 기자 10zzung@ohmynews.com  

[현장 취재]
= 서울(광화문) :
김지은 권박효원(취재) 권우성 남소연(사진) 강수연 곽기환(동영상) 기자

= 지구촌 현지보고 :
캐나다(토론토)-김태엽 / 인도네시아(자카르타)-배수현 / 인도(뿌나)-cultdream(이메일 ID) / 미국(하와이)-신민우, (시카고)-박건일, (LA)- 박우성, (메릴랜드)-주애령 / 영국(런던)-김제영 / 필리핀(마닐라)-서지인 / 뉴질랜드-이승욱 양광모 배성은 / 호주(멜번)-김효원 / 일본(신주쿠)-안창규/프랑스(파리)-김현숙(무순)

= 정리 : 김병기 홍성식 기자



▲ 미대사관으로 향하는 세종로 일대가 경찰차와 경찰병력에 의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촛불시위대 일부가 광화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마이뉴스>는 두 여중생 범대위와 토론토 유학생 모임과 공동으로 '효순이 미선이와 함께 부르는 세계평화 기원 지구촌 아리랑-지구촌 촛불 파도타기'를 공동기획했습니다. 이와 함께 <오마이뉴스>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대사관에 보내는 '평화의 쪽지날리기'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지구촌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평화 사랑' 의지를 세계 만방에 천명하고, 전쟁없는 지구촌 만들기에 동참을 호소합시다.

다음은 31일 자정을 기해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됐던 촛불 파도타기의 현장을 현지에서 직접 행사에 참가했던 네티즌들이 생생하게 전해온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어 이날 광화문에서 열린 100만범국민촛불평화대행진의 모습도 담았습니다.

멀리 이국땅에서 '지구촌 촛불 파도타기'에 동참해주신 네티즌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편집자 주)


관련기사  

영국 미국 일본 방글라데시도 참여
지구촌을 평화의 반딧불로 뒤덮자  





[시간대별 현장상황1]광화문 접수한 경찰, 인간띠 시도하는 시민들
/ 강수연 PD

[시간대별 현장상황2]경찰과 시민, 그 부적절한 관계 / 강수연 PD


<제 20신: 1일 오후 11시>

"효순아! 미선아! 우리들의 반딧불을 보았니?"
촛불 파도타기 마지막 지점, 하와이 점화

지구촌 촛불 파도타기의 마지막 지점인 하와이에서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습니다. 비록 유학생들만의 추모 모임이었지만, 촛불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었기에 조국과 전세계에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낯을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는 많은 12명의 유학생들이 12월 31일 오후 9시(하와이 현지시간)경, 하와이주립대 한국학센터 앞에서 모여 조촐한 추모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 촛불파도타기 마지막 지점인 하와이에서 열린 시위. 두 여중생의 영정이 놓였다.  

ⓒ 신민우


먼저 효순이와 미선이의 영정 앞에서 묵념과 촛불 밝히기 등 추모의식을 갖고, 곧바로 자유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야에서', '아침이슬'과 같은 노래들을 부르며 하와이의 밤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자유토론 시간에 많은 얘기가 오고 갔습니다. '효순이와 미선이 살인사건'의 전말을 아직도 모르는 한인들이 이곳에 많이 있다는 현실문제 지적, 유학생의 신분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솔직한 고민, 그리고 미국인 중 의식이 있는 분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방안 등과 관련해 정말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저희는 큰 수확을 두 가지 얻었습니다.

첫번째, 저희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타 지역과는 다르게 저희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유학생들만의 소규모 추모 모임으로 이끌려고 하였고 취재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현지 한인 신문사들과 라디오 방송국이 취재를 나와서 저희들의 의지를 한인사회에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성과는 저희 학생들의 의지가 너무나 강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모임 준비과정에서 참석자들의 열의가 낮을까봐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인데, 모임이 시작된 후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판이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 후 1월 투쟁에 관련되어서 예상치도 못한 결의까지 나왔습니다. 현지 반전단체들이 주최하는 대규모 시위가 1월 18일 예정이라는 것을 참가자들이 알고 나서, 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논의하여, 그 시위에 저희 학생들도 참여하여 '효순이와 미선이 살인사건'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범대위의 제안을 받아들여 1월 24일경에 하와이에 거주하는 미국인들과 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차원에서 촛불시위 또는 피켓팅 시위 등을 개최하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정말, 어느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기획된 것도 아닌 내용들을 2시간동안의 진지한 토론에서 저희 스스로가 이끌어낸 것에 우리 자신들도 놀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한국인들이 효순이와 미선이 살인사건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요?

작지만 정말 뜻 깊은 행사를 마련하였다는 사실에 저희들도 안도하고 있고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조그마한 섬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효순아! 미선아! 우리들의 반딧불을 보았니? 우린 너희들을 생각하며 해냈고, 또한 더욱 더 힘차게 해 나갈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오늘만은 편안하게 잠들어라."

11시 30분경에 서로 "새해 평화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하면서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곧 다시 만나서 신명나게 사고(?) 칠 것을 서로 약속하면서. /하와이 신민우

<제 19신: 오후 10시 30분>

간디의 비폭력 정신, 촛불에 담아
인도 뿌나, 촛불 파도행진 이어져

현지 인터넷 사정이 좋지 못하여 지금에야 연락을 드리게 됩니다.

인도도 파키스탄과의 관계악화로 전쟁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대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양국이 모두 핵을 보유한 나라이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행사를 진행한 뿌나는 인도 중앙에서 서쪽에 있는 도시로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교육과 IT 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



▲ 인도 뿌야에 모인 촛불파도타기 참가자들  

ⓒ vsnl


30일 오마이 뉴스의 "전세계 촛불 파도타기"행사에 대한 취지를 현지 한국인들에게 미리 설명하고, 생각을 같이하는 인도분들께도 동참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31일 모두 모여 플래카드와 유인물을 작성하고 인도인들에게 나눠줄 초와 "The most powerful weapon for peace"라는 문구가 붙은 컵을 200여 개 미리 준비해, 현지 연락이 가능한 한국인들에게 31일 저녁 11시까지 뿌나의 중심가인 M.G Road(마하트마 간디로드)에서 집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31일 20여명의 현지 한국인과 인도인이 M.G Road에 모여 "전세계 평화의 촛불 파도타기" 행사와 관련된 취지와 우리의 입장을 알리는 200여장의 유인물을 인도인들에게 나눠주고 자정을 기하여 우리의 평화에 대한 의지를 담은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시내의 중심가이다보니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매우 붐비는 와중에도 플래카드와 피켓을 통해 거리에 모인 인도인들에게 행사의 의미를 알리며, 유인물을 배포하면서 여중생 사건과 한국인의 반전 의지 그리고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 분위기 고조에 대한 불합리한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정신과 연결하여 미국의 비인간적인 무력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비판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유인물 배포가 끝난 후에는 촛불을 들고 M.G Road를 행진하였으며, 행진을 마치고 난 후 모든 행사 일정을 마쳤습니다.

연말인지라 시내 중심가가 너무 들떠있는 분위기였고 너무 많은 인파 행렬과 폭죽 소리로 인해 우리의 의지를 모든 인도인들에 알릴 수는 없었지만, 한국과 멀리 떨어진 인도의 한국인으로 조금이나마 "전세계 평화의 촛불 파도타기"가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걸로 자족하며 부디 하나 하나의 작은 힘이 모여 세계를 변화할 수 있는 큰 물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도 vsnl(아이디)

<제 18신: 1일 오후 9시>

필리핀, 연기 뒤덮인 마닐라에서도
각자 위치에서 밝힌 평화촛불

이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네요. 참 밝고 희망찬 모습으로 2003년을 시작하게 되어 마음이 참으로 따뜻해집니다.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조촐하지만 한자리에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해가 저물 즈음부터 터지기 시작한 곳곳의 불꽃놀이용 화약이 터지면서 우린 안전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벌써 폭죽사고로 다치는 사람이 생기고 귀를 찢는 듯한 굉음 때문에 서로의 말소리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폭죽놀이는 밤 9시(현지시각)가 되면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린 전화연락들을 통해 각기 살고있는 지역의 상황을 전하며 상의했으나 밖에 나간다는 자체가 굉장한 위험이기에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포기하고 각기 집에서 11시 30분에서 12시 30분까지 촛불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같은 건물에 살고있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혹은 혼자 살고 있는 친구는 혼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친구들은 가족과 함께. 그 시간만큼은 두 어린 영혼을 기리며 새해를 맞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최선을 찾자"
중국 유학생 "한국민 하나된 힘 놀랍다"

저는 그 시간 같은 기숙사에 있는 한 한국인 여학생과 이번 사건을 한국인 못지 않게 잘 알고 있으며 가슴 아파하던 한 중국인 유학생과 저희 집에서 촛불을 켰습니다.

우린 그 자리에서 촛불을 켠 뒤, 두 어린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저는 성당의 방식으로 교회에 다니는 다른 한국인 친구는 교회 방식을 따르고 중국인 친구는 그만의 방법으로 그렇게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간에 모았던 자료들을 함께 보며 이번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2002년도가 저물고 2003년을 밝히는 그 한 시간 동안 이번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 문제와 탈북자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여중생 사건과 더불어 "반전과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탈북자들 또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리곤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통령을 믿어보자고 얘기했습니다.

한국민 어느 누구보다도 슬퍼하는 우리들이지만,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지만, "좀더 현실적인 눈으로 사건을 직시하자고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 무엇이 최선이고 우선인지 생각하자"고 "지금은 그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러한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주권을 우리 손으로 지켜 나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있는 국민이 되자"고 "내 본분을 알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도 했습니다.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이곳의 현실 상황 때문에 외부적인 움직임은 힘들겠다"는 결론짓고 대신 소파가 개정되고 부시가 사과하는 그 날까지 우리 필리핀 유학생들은 매주 토요일 밤 각자 개인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두 어린 영혼과 그 동안 억울하게 희생된 미군 피해자들, 탈북자의 인권 문제 등을 지향으로 촛불을 밝히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서명운동을 각자의 학교에서나 소속된 사회에서 현지인들에게 알리고 전개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인 여학생 릴리(대학원생·22세)는 함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국민들의 하나된 힘에 굉장히 놀라며 "이러한 우리 국민들이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한국의 힘이 너무도 무섭다"고. 지난 월드컵 때도 내심 놀라하던 친구였는데 이번 여중생사건의 자발적인 모임에 대해서는 더욱 감탄을 하더군요.

연기에 휩싸인 마닐라를 지킨 희망 촛불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감사합니다"

밤사이 이곳 필리핀에서는 몇몇 지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전 마닐라에서 터뜨린 엄청난 폭죽으로 인해 곳곳에서 큰불이 일어나 많은 액수의 재산피해와 사상자를 냈습니다. 문을 꼭 닫았음에도 21층의 저희 집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밖의 폭죽 터트리는 소린 요란합니다. 폭죽 터지는 소리와 쉬지 않고 계속 울리는 사이렌 소리.

12시가 조금 넘자 저희 집 근처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그래도 계속 폭죽은 터졌고 한 시간 후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큰불이 1km 떨어진 곳에서도 났습니다. 전 마닐라가 화약 연기에 의해 잠겨버렸습니다. 바로 앞조차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합니다. 다니는 차라곤 소방차와 응급차가 전부입니다.

지금도 사이렌 소리가 멈추질 않네요. 당장 문밖에서의 한국민 안전 또한 위협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곳 현실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린 행복을 느낍니다. 마음만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내 나라가 있기에, 그 나라를 사랑하는 한마음의 국민들이 함께 하기에 우리는 희망을 느낍니다.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난 게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은 강할 때나 약할 때나 억울할 때나 슬플 때나 타락하고 부패할 때나 개선되어 나아갈 때나 하나가 되었을 때나 흩어졌을 때나 자랑스런 나의 조국입니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도 함께 나누는 자랑스런 국민들이 있기에 그런 우리를 포근히 안아주는 내 땅이 있기에 2003년 올 새해는 더욱 희망으로 맞이합니다.

아마 이것은 기사로 하기엔 너무나 작은 움직임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우리가 처해진 상황에 맞게 처음 그 뜻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이것이 이곳 필리핀에 있는 학생들의 마음입니다. 그저 작지만 저희 소식을 전했습니다. 올 한해도 행복한 한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필리핀 서지인

<제 17신: 오후 8시 40분>

"다가오는 새해에는 낡은 것 버리자"
에난데일 한인타운 촛불 추모모임

  

▲ 촛불 추모 행사 참여자들  

ⓒ 주애령
12월 31일 저녁 6시(현지시각)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세계평화와 효순미선 자매를 위한 촛불이 밝혀졌다. 같은 시각 메릴렌드에서도 풍물패 한판과 자주연합 회원들이 모여 촛불 모임을 가졌다.

한인들이 밀집해 있는 버지니아 에난데일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동포청년문화단체인 우리문화나눔터(이하 우문터)를 중심으로 교포 청년들과 10대 청소년들,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나온 6살 어린이까지 약 25명의 한인 교포들이 모였다.

이날 모임의 주도한 조현숙(우문터 회장)양은 얼마 전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에서 열린 효순, 미선 자매 촛불 시위에서 삭발식에 참여한 네 명 중 한 명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현숙양의 짧은 머리가 더욱 당당해 보이고 듬직해 보이는 저녁이었다.

우문터 고문이시자 자주연합 워싱턴 지부 회원 이재수씨는 "다가오는 새해에는 3가지 낡은 것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민주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앞에선 주권을 잃은 채 강대국의 손에 이끌려 가는 우리나라의 현실, 둘째는 자신의 힘만을 믿은 채 약육강식의 이론으로 약소국가를 몰아내는 것이 정당화 된 미국의 제국주의, 셋째는 우리의 힘과 민족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분단현실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수씨는 "과거 역사에서 볼 때 이런 낡은 것들은 절대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것에 의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며 "특히 우리 동포사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과거의 잘못된 것을 버리고 바른길,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갈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 학생참가자들  

ⓒ 주애령
버팔로에서 대학교을 다니고 있는 김범준씨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약소국가들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 의해 많은 피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언론들은 그 사실을 숨기고만 있다"며 미국 시민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문외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고등학교 12학년에 재학중인 이보배양은 "그 동안 미주 한인사회에서 함께 한 촛불 시위와 추모 모임에서 같은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하다"며 한인 동포들의 태도를 안타까워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이슬', '광야에서',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등의 노래를 부르며 이재수씨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효순이, 미선이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어떻게 죽는가는 물론 어떻게 사는가도 미처 고민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온 국민이 깨닮음을 얻을 수 있는 값진 죽음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 추모 모임의 한켠에서는 이라크 전쟁 반대 서명도 함께 이루어 졌다.

이재수씨는 "진정한 세계화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가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현실에도 관심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위해 모두가 하나되어 나아가는 것"이라 말하며 "1월 18일에 D.C.에서 있을 전쟁반대 시위에도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하셨다.

이날 모임은 우리 민족의 통일과 영원한 평화의 시대를 꿈꾸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막을 내렸다. /메릴랜드 주애령

<제 16신: 1일 오후 8시>

LA, 우리의 요구는 이제 '정의와 평화'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떳떳하고 싶다."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촛불 파도타기의 물결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 미대륙의 서쪽 끝 LA 까지 이어졌다. 이날 LA 지역의 촛불시위는 정각 12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저녁 6시 반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 날따라 유난했던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시위장소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마다 단단한 결의가 넘치고 있었다.

  

▲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민들이 모여 촛불을 밝혔다.  

ⓒ 박우성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한 아리랑에도 민족 자주의 염원을 담은 우리의 소원 노래에도 이전에 가끔씩 느껴지던 처량함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한시간 가량 진행된 시위도중 바람이 점점 세게 불기 시작해서 촛불도 자꾸 꺼지고 사람들이 많이 추위를 타기 시작하자 대형 영정사진을 들고 있던 한인 2세 김한진(21)군이 메가폰을 들고나섰다.

"Revise SOFA now!" "Apologize Bush now!" 사람들이 힘차게 따라하자 구호에는 힘이 붙기 시작했다. "What do we want?" "Justice!" "When do we want it?" "Now!" 시위대는 장단을 맞추어 구호를 외치면서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손에든 촛불을 흔들었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건 내용이 소개된 유인물을 돌리며 용감하게 외치는 이들의 구호는 세밑의 밤거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조금 전에 지나간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시위대를 향해서 뭐라고 욕을 해댄 것에 화가 난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니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저는 잘 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2세니까 이 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알아요. 저 같은 또 다른 2세랑 앞으로의 제 자식들을 위해서 나서는 겁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에 대한 것도 얘기했다.

"저는 한국과 미국을 모두 아니까 제가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던 친구들도 다 받아들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부끄럽게도 생각하지요. 나쁘게 대하는 사람이요? 물론 많습니다. 포스터를 붙여놓으면 찢어버리고 욕을 써놓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제 뿌리는 한국이니까요."

  

▲ 손주를 안고 영정을 들여다 보는 유민이 할머니.  

ⓒ 박우성
한인타운에 거주한다는 유민이 할머니는 자신이 직접 갓 돌이 지난 손자를 들쳐업고 딸을 데려왔다고 말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야 걸어서 왔지! 손자가 추울까봐 이렇게 단단히 동여매고 나왔어요." 촛불시위 소식은 당일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반미가 걱정된다고 하는 말이요? 우리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이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데."

뉴스와 신문을 통해 많이 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유민이 할머니는 진열되어 있는 사진들을 꼼꼼히 보면서 연신 혀를 차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거리에는 함께 모여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작은 목소리가 과연 부시를 움직일 수 있을까요?" 노령의 몸을 이끌고 촛불시위에 참여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에스더 치코니(Esther Cicconi, 83세)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 당신 눈에는 이 사람들이 점점 자라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월남전쟁도 바로 이렇게 시작한 우리가 끝냈다!" 그녀는 그녀 곁에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마다의 손을 잡아끌어서 행렬에 뒤쳐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 이날 촛불파도타기에는 한인 뿐 아니라 미국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 박우성
오늘 LA 지역의 시위에서 눈길을 끈 것은 한인이 아닌 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백악관 항의 방문 투쟁단이 함께 했던 1차 촛불시위 때 참여했던 IAC(International Action Center) 회원들뿐만이 아니라 지역 인권 활동가들과 복지 운동가들은 물론이고 트로츠키스트를 자처하는 ICL(International Communist League) 회원들까지 등장, 자신들을 홍보하는 신문을 판매하며 촛불시위에 합류했다.

게다가 거리를 지나던 일반 미국인들까지 합세해 스스로 피켓을 들고 시위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한국의 촛불시위가 세계와 연대해서 반전평화시위의 중심으로 나아가자는 전망에 대한 훌륭한 방향제시로 삼을 만한 것이었다.

광화문에서의 촛불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LA에서도 시민 발언대가 마련됐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가 자신의 얘기를 하던 발언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지금 이 찬바람은 못된 부시 때문에 부는 바람" 이라고 말해 사람들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자유발언대 앞에 모인 참가자들  

ⓒ 박우성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선 미국이 제대로 된 길을 가게 해야된다는 의견과 추모시위를 반전평화시위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시위에 참여한 LA 지역의 동포들은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보통인 이날을 더욱 뜻깊게 보냈다는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한 이 외국인들을 보십시오. 우리의 시위는 더 이상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추모의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효순이 미선이에게 떳떳할 수 있으려면 미국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이키는 그날까지 세계의 모든 양심인들과 함께 이 싸움을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촛불시위를 정리하고 시민발언대까지 이끌며 사회를 본 김하림씨는 1월 11일에 다운타운에서 있을 반전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한인들의 참여를 부탁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시위를 끝낸 한인들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한국에서의 31일 시위에 대한 소식을 묻고 앞으로의 촛불시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면서 주변을 정리했다. /LA 박우성

<제 15신: 1일 오후 6시 50분>

"우린 2003년 새아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맞았습니다"
캐나다 토론토 한인타운에 지펴진 200여개의 추모 촛불

  

▲ 토론토에서 열린 촛불파도타기에 참여한 한국교민들.  

ⓒ 김태엽
캐나다 토론토에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2년의 끝자락을 붙들고 토론토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둘 한인타운의 한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추운 날씨라 목도리와 털모자로 완전 무장을 한 꼬마 아이들부터 고등학생, 어학 연수생, 동포 여러분들까지.

200여명에 달하는 우리들은 세대를 넘어 하나의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습니다. 안타깝게 죽어간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며, 더 이상 21세기에 이 지구촌에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우리들은 세계 곳곳에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캐나다인들도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효순이와 미선이 일을 모르는 캐나다인도 거의 없었고 동참을 이야기하면 기꺼이 함께 해 주었답니다. 촛불을 든 인파를 보고 "한국인은 이렇게 셀레브레이션을 하냐"고 묻던 캐나다인도 효순이와 미선이의 일을 듣고는 곧바로 촛불을 들었습니다.

  

▲ 토론토 한 광장에 마련된 신효순, 심미선양의 영정  

ⓒ 김태엽
이날 받은 소파개정 촉구 서명만 해도 700여명을 웃도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월드컵, 붉은 악마의 열기로 토론토의 명소가 되어버린 그 광장이 이제는 평화와 반전의 촛불시위로 명소가 되었지요. 효순이와 미선이의 영정을 앞에 두고 우리는 그 순결한 영혼을 위해 한판 씻김굿을 했지요.

두 아이의 부모 인터뷰와 그간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훔치던 할아버지와 참가자들. 목이 갈라져라 효순이와 미선이를 부르며 평화염원의 시를 낭송해 준 최종수 신부님(피터보로 한국순교자 성당), 세계 평화와 연대를 위해 발언해준 필리핀 유스그룹 사람들, 밤새 행사에 쓰일 동영상 자료를 만들고 전세계 평화그룹에게 이메일을 띄우고 발을 동동 구르며 잡일을 해온 10여명의 자원봉사자 학생들. 늦은 밤 가게문을 닫고 촛불을 밝히러 와준 한인 동포 부부, 촛불이 잘 안 보일까봐 간판 네온사인을 꺼버린 광장 앞 레스토랑 사장 등.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2003년 새해 새아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촛불의 물결로 맞이했답니다. /캐나다 김태엽

<제 14신: 1일 오후 3시 15분>

세계 각국 언어로 나눈 '평화' 메시지
파리 시민들과 함께 한 촛불행진

프랑스 파리 에펠탑 부근, 에펠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트로 카데오 광장에서 평화의 촛불을 나누었습니다. 31일 밤 11시 45분부터 0시 40분까지 진행된 평화의 촛불 나누기는 새해를 맞이 하려는 파리 시민들 속에서 반짝였습니다.

한국인 준비자 5명과 프랑스인 1명은 미리 준비한 메세지가 담긴 컵과 양초에 불을 붙여서 평화를 나누었습니다. 365일 평화만이 깃들기 바라며 준비된 365개의 양초에는 각국 언어로 쓰인 '평화'라는 단어 위에 '2003'과 'stop the war'라는 메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한국인 참가자 중 가장 연세가 많으신 이유진 선생님은 근 40년 가까이 되는 파리 망명 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한국에서의 평화나누기는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계십니다.

촛불을 받아 든 파리 시민들은 즐거운 환성과 함께 촛불을 높이 쳐들면서 평화의 연대감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아랍권의 사람들은 즉석에서 준비자들과 함께 양초를 다른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행사가 끝날 동안 주변에서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등, 평화에 대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의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아랍권 사람들이 가지는 진정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각국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 언어로 쓰인 '평화'라는 단어를 손으로 가리키며, 참가 한국인들에게 '본 안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정겹게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프랑스인은 붙여 준 촛불을 입으로 훅 불어 꺼서, 한국인을 잠깐 놀라게도 했는데, 그가 '부시를 이렇게 쉽게 꺼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바람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평화를 나누는 것은, 웃음과 정겨움과 삶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에펠탑 위로 솟아오르는 불꽃놀이와 함께 한 평화의 반딧불이들은 평화를 기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언제까지나 깜박이고 있을 것입니다.

애초 예정된 에펠탑 부근이라는 인터넷 광고 때문에 에펠탑 부근을 수많은 인파를 뚫고서 반딧불이 촛불을 찾아 헤맨 한국 분들이 계십니다. 갑작스럽게 장소가 변경되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 그 공간에 우리가 함께 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평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촛불은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고고한 강물로 흐르고 있는 평화의 강물.

다음에는 평화기원 촛불 나누기가 아니가, 평화누리기 촛불 나누기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2003년 새해에는 이 지구 어디에서도 미선이, 효순이처럼 죽어가는 사람이 없기를... 전쟁 뿐 아니라, 인간 내면에 도사린 야만의 본성까지도 촛불이 다 태워 버렸기를 바랍니다.

새해, 평화 많이 받으세요. /파리 김현숙

<제 13신: 1월 1일 오전 11시 50분>

인도네시아 난항, 영국 런던 성사
다음 촛불주자는 미주 지역

인도네시아의 촛불시위는 난항을 겪었다. 자카르타 모나스 광장에 새해축제를 즐기는 인파가 예상보다 많이 밀리면서 도로가 거의 마비되어 한국교민들이 12시가 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아예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간 교민들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5명이 한 참가자의 아파트로 이동해 촛불을 밝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준비가 소홀해 마음이 무겁지만 열심히 했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며 "다음엔 정말 제대로 된 촛불행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카르타 배수현

부시-블레어 정부 비판 이어진 런던
영국 촛불시위 무사히 마쳐

31일 런던 레스터 스퀘어에서는 150여명의 한인학생 교포 인터넷 넷티즌을 중심으로 '촛불릴레이' 행사가 성공리에 벌어졌다. 이날 자리에 나온 한인들은 인터넷에서 나온 광고를 중심으로 나왔는데 연말 분위기와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미군 철수와 SOFA개정, 전쟁반대 그리고 평화 뜻을 같이 하였다.

전날 런던 메트로폴리탄 폴리스 당국은 사전 집회신고에서 매년 12월 31일 분위기에 우려를 많이 하며 여러 번 자리를 옮기거나 시간을 미루어 달라고 제의를 하였으나 행사의 내용을 존중하겠다고 마지막에 알려왔다.

항상 매년 12월 31일은 수많은 인파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의 장이 레스터스퀘어나 피카딜리 서커스.또는 트라팔가 스퀘어에서 일어나는데 이날도 엄청난 인파가 레스터스퀘어에 모였고 경찰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공격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모인 150여명의 한국 학생 교민들은 '아침이슬', '광야에서’, '아리랑’등의 노래를 같이 부르며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을 추모하고 다가오는 2003년에는 평화의 원년을 삼겠다는 희망도 함께 전달 하였다.

연말,신년을 즐기러 온 많은 사람들은 이날 촛불시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고 또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 부시 정부의 이라크에 대한 과도한 횡포 그리고 영국 블레어 정부에 대한 비난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하였다.

많은 나라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런던에서 각국 사람들의 의견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인데 그 중 이라크 사람들은 촛불시위에 동참하기도 했으며 팔레스타인,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 또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이기도 하였다.

미국인이라고 밝힌 한 관광객은 부시 정부를 비난하며 한국민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표하기도 하였고 많은 유럽인들과 관광객들은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유인물을 읽어보며 시위하는 이날 시위를 격려하기도 하였다.

이날 런던 메트로폴리탄 폴리스는 자정이 다가오자 밀려오는 수많은 인파의 안전을 걱정하며 행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재촉하기도 했으나 질서 정연한 시위모습에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고 예상보다 아무 마찰 없이 30분정도 빨리 끝낸 이날 시위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넋으로 새해에는 평화를 일구어냅시다"라며 150여명이 모인 이번 행사를 마무리 했으며, 이날 모인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다사다난했던 2002년을 레스터스퀘어에 모인 인파와 같이 즐기러 떠나는 모습도 보였다. /런던 김제영

"올해는 우리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런던에서 촛불시위에 다녀와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준비를 주체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저 다녀온 소감을 알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100여명정도 모여서 10시부터 촛불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여주었고 특히 이라크에서 왔다고 하신 분들도 잠시나마 저희와 함께 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오셨다는 분들은 저번보다 조금 모였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시고 그런 반면 그래도 모인 것이 중요하다고 앞으로 잘될 거라고 낙관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침이슬'로 노래가 시작되었고 '애국가', '나의 살던 고향은', '광야에서', '바위처럼', '사랑으로' 등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며 저희의 집회를 런던시민들에게 알렸고 함성을 외치기도, 미선이와 효순이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좀 더 길게 하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확성기도 있었음 좋겠고. 앞에서 사회를 보시는 분들의 말이 잘 안 들렸거든요. '한국처럼 풍물패가 길놀이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도 저희도 해냈습니다. 미주지역에 계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올해는 우리의 힘으로 소파를 개정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 런던 clclo(독자의견 아이디)

<제12신 대체:2003년 1월 1일 오전 2시 10분>

마침내 계미년 새해아침이 밝아오다

격동의 2002년이 가고 2003년 계미년 새해가 마침내 밝았다.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수 만명의 서울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0시 정각 제야의 종 타종식이 열렸다.

촛불을 들고 시민열린마당에 모인 시민들도 잠시 행사를 멈추고 함께 카운트다운을 셌다. 2003년을 시작하는 폭죽이 터지자 시민들은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면서 인사를 나누고 "한미 SOFA 개정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열린마당에서 다시 이어진 공연은 2003년의 평화를 기원하는 비나리였다. 무대차 한켠에 마련된 고사상에는 천지신명과 '이 나라 이 땅을 위해 싸운 넋'들에게 "오늘같은 재앙이 다시 없게 해주시고 노무현 당선자가 소신있게 자주 주권 있는 나라를 만들게 하소서"라는 축원이 진행됐다. 진행자는 축원문을 태운 뒤 고사상에 차려진 과일과 떡, 술 등을 시민들에게 돌렸다.

  

▲ 31일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전쟁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열린마당은 시민의 발언으로 끝났다. "대학 졸업한지 2년된 평범한 회사원 박이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민은 "화려한 방송3사의 신년맞이 행사에 우리의 함성이 조금이라도 들려서 두 소녀와 그 부모님을 위로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이진씨의 선창에 따라 2003년을 맞이한 종각 사거리에서는 "살인자를 처벌하라" "부시는 사과하라" "SOFA를 개정하라"는 촛불시위대의 구호가 울려퍼졌다.

폭죽과 함께 축제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장엄하게 울려퍼진 종소리는 지난 한 해의 무거운 짐을 털고 희망의 새해를 열어주는 듯 멀리멀리 퍼져갔다. 현재 보신각 주변에는 아직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밤 12시 40분 현재 광화문 사거리에는 아직도 전경이 대사관 방면 도로와 골목을 막고 있다. 광화문 도로를 따라 빽빽하게 들어선 경찰버스는 1일 새아침이 되어서야 사라질 것 같다.

2003년을 '지구촌 평화' 원년으로

2002년과 2003년 사이 북미 갈등으로 인한 북핵 문제로 전쟁의 기운이 암울하게 드리워진 한반도.

하지만 효순·미선이를 추모하는 한민족 네티즌들의 행렬은 한반도 평화 염원을 넘어 세계 평화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새해 아침이 제일 먼저 밝아오는 뉴질랜드에서 '반전 촛불'이 타올랐고, 이제 막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민족 네티즌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이국의 거리로 나서고 있다.

2002년 한반도를 달군 '행동하는 네티즌'들은 이제 지구촌을 한바퀴 돌아 새로운 세계 역사를 그리고 있다.

  
"공무수행 나온 기념으로 한 장 찰칵?"  
[현장] 김해영 뉴스게릴라가 보내온 '이 한 장의 사진'  



▲ 촛불시위 진압나온 경찰들의 기념촬영.  
ⓒ김해영
김해영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가 31일 '촛불평화대행진' 현장에서 찍은 재밌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의 내용은 제복을 입은 채 기념촬영을 하는 경찰 기동대원들의 모습이다.

촬영 장소는 미 대사관 앞 세종로 한복판으로 시민들의 대사관 접근을 막기 위해 이 주변엔 수십 대의 경찰버스가 둘러싸여 있었다.

이 사진을 보낸 김해영씨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오후 7시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념촬영 하는 경찰 한 무리를 발견, 사진을 찍게됐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들은 약 5컷의 사진을 찍었다"고 덧붙였다. / 김지은 기자  





<제11신 대체:31일 오후 11시 20분>

광화문 촛불시위 인파 '제야의 종' 타종 보러 보신각 집결



▲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광화문 지하보도 내 조선일보 광고 앞에 있는 두 여중생 영정 앞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시위를 마친 시민들은 인근 종로2가 보신각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보신각 인근에는 수 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으며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가는 해를 아쉬워 하고 있다.

제야의 종 타종을 30분여 앞두고 있는 보신각 앞에는 대형멀티비젼과 조명 등 행사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 격동의 2002년 마지막 밤과 희망의 2003년 새해 아침을 맞으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모두 모아졌다.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이곳으로 몰리면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각 인근까지 다시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보신각에 몰린 인파 중 촛불을 든 시민은 약 3만여 명. 광화문에 모인 시위대가 대부분 종각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종각 사거리에서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무산됐던 '시민열린마당' 행사가 열렸다. 오후 11시 30분부터 국세청 앞에 마련된 무대 차 위에 대학 문예패, 노래패, 극단 한강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들은 'Fucking USA' 등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제로 한 노래를 선보였다.

이날 무대에 선 사회자는 지난 8월 훈련을 시작하는 미군 장갑차을 막아섰던 여학생. 사회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이 없다면 국민들에게 맡겨달라"며 "우리 힘으로 SOFA를 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종각 사거리 부근 아시아나항공 건물 앞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는 인디밴드의 게릴라 콘서트가 열렸다. 'No more WAR in our WORLD'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이들의 공연은 대중음악판바꾸기위원회(대바위)와 MIM(Made in mania, 음악 팬 모임 커뮤니티)이 성금을 모아 마련한 작품. 이들은 지난 월드컵 당시에도 거리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는 디스코트럭, 노마크, 퍼필, 사혼, 가이아, 마귀, 허키클럽 등 7팀이 참가했다.

콘서트를 준비한 '앙마'는 "시민들의 반응에 만족한다"며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공연을 보는 시민들의 모습에 이번 공연이 평화 반전 콘서트가 됐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콘서트는 새벽 2시까지 이어질 예정.

  
"미국은 '힘으로 된다'는 오만 벗어야"  
CNN에서 생방송으로 '광야에서' 방송  

  

▲ 미선이와 효순이의 영정사진이 새겨진 종이컵  
ⓒ오마이뉴스 권우성
안녕하세요.

여기 시간 새벽 4시입니다.

지금 생방송인 CNN에서 한국의 촛불시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르고 있는 "광야에서" 노래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을 통해 저희 생방송으로 듣고 있는 아이러니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하와이 한인 여러분들과 대화한 결과 연령에 상관없이 북미관계에 관해서 심각히 여기고 있으며, 그 문제가 이 사회에서 더 이슈화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확연히 느꼈습니다. 한 현지 한인이 그러시더군요. "아직도 전쟁의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국이 너무 안타깝고 보기 힘들다"고요.

오늘 평화기원 행사가 1월 25일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1월 18일에 대규모적인 반전시위가 예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오늘 반전단체 인사들과 논의한 결과 저희가 그 행사에 참여하기를 그쪽에서는 원하는 것 같은데, 저희는 그때 3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이민 백주년 기념 코리안 페스티발이 이미 기획된 상태라 조금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반전시위를 위한 준비모임이 1월 2일에 개최될 예정이어서, 그 미팅에 참여하여 저희의 계획(1월25일 시위)을 적극 개진할 예정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 쪽 반전단체 분들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인들이 왜 길거리에 나가서 촛불을 들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이해하시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캐서린이라는 중년여인이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한국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모든 것을 힘으로 된다는 오만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선 한국인으로써 지금 진행되고 있는 행사에 참여하시는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한가지만 더 말씀 드린다면, 미국에도 여러분과 뜻을 같이하는 한인 그리고 미국인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힘내세요. 여러분. 우리 한국인은 미국 정책가들이 자주 얘기하는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영구적인 전쟁 [Perpetual War for Perpetual Peace]이 아닌,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영구적인 시위[Perpetual Protest for Pereptual Peace]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이에서 또 다른 소식을 전해 드릴 것을 약속 드리며. / [하와이] 신민우  






▲ 미대사관으로 향하는 시민들과 이를 막는 경찰. 광화문 거리 곳곳에서 이들의 몸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국 60여개 지역서 '촛불시위' 동시 열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며 한해를 마감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31일 오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60여개 지역과 해외에서 동시에 열렸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사망 전북대책위'는 이날 오후 전주 코아백화점 앞에서 시민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촛불 집회를 열고 부시 대통령의 직접사과와 SOFA 개정 등을 촉구했다.

군산과 익산, 남원, 완주, 고창, 김제 등지에서도 각각 2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촛불을 들고 인근 1-2㎞를 왕복 행진하는 평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천주교 부안성당도 이날 오후 10시부터 부안성당에서 신자 등 100여명이 추모 미사를 연 뒤 부안터미널까지 촛불을 들고 도보 행진을 벌였다.

충북여성민우회와 청주 여성의전화 등 충북도내 2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충북대책위원회'도 31일 오후 5시 청주, 충주, 제천, 진천 등 도내 6곳에서 `추모 문화제 및 촛불 시위'를 열었다.

대구지역에서도 이날 '10만 촛불 평화대행진'행사가 개최됐다. 행사는 이날 오후 6시 대구백화점 앞에서 청소년 댄스공연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의 아리랑합창, 노래공연과 청소년 발언 및 촛불점화와 행진 등으로 진행됐다.

이 행사에는 경북대 학생들도 학교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3㎞ 정도를 행진해 와 합류하게 된다. 대구백화점 앞 행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중앙파출소와 중앙로.한일로.공평네거리 등을 거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 종각까지 행진을 하며 소파 개정의 필요성 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자정께 '제야의 종' 타종에 맞춰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이밖에 경북지역에서도 해당지역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돼 경산시 중방동 주택은행 경산지점 앞 등 9개 장소에서 여중생들을 추모하는 촛불행진을 벌였다.
/ 연합뉴스=종합  




<10신: 31일 오후 10시40분>

시민들,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한목소리
미대사관 촛불 인간띠 잇기대회 종료

밤 9시50분 시작된 미대사관 촛불 인간띠 잇기대회의 마무리 자유발언대에 오른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무대에 오른 손영철씨는 "21세기 벽두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라크에 전쟁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지구의 삼분의 일을 망가뜨릴 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이어 마이크를 건네받은 양동철씨 역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의 일부분을 암송하며 모든 쇠붙이가 사라지는 평화의 날을 기원했다.

한 20대 시민은 "미국은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라며 그들에게 타격을 주려면 "미국물품을 사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범대위 관계자는 "2003년에도 촛불시위는 이어져야 한다"며 "내년 1월25일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제의를 집회 참석자들에게 하기도 했다.

밤 10시30분경 범대위측의 마무리 발언을 끝으로 미대사관 촛불 인간띠 잇기대회 행사는 종료됐다. 애초 범대위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행사를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전경들이 시민열린마당으로 향하는 골목을 막아서는 바람에 무산됐다.

  
지구촌에서 처음으로 피어오른 촛불 30개  
Mt. Eden 정상에서 울려퍼진 세계평화  



▲ 뉴질랜드 촛불시위 현장  
ⓒ배성은  
날짜 변경선과 가장 가까운 뉴질랜드에서 2003년 1월 1일 0시를 기해 오클랜드 Mt. Eden 정상에서 교민과 유학생들의 참여로 촛불을 밝혔습니다.

Mt. Eden 정상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불꽃놀이를 관람하기 위해 수많은 현지인들이 모여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일차선 차로가 심각한 교통 체증을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행사 진행에 차질이 일어날까 우려했습니다만, 이 행사를 위해 참여해주신 교민, 유학생 여러분들과 현장에서 참여해주신 분들의 호응으로 약 30여개의 촛불이 지구촛 촛불 파도의 시발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종교 행사 등으로 시간이 겹치거나, 유학생들의 귀국으로 참여 인원 수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촛불을 밝힐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만, 이 정도의 참여를 이루어 낸 것은 나름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촛불을 켜고 동그랗게 모여서서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이승욱씨의 행사 취지 설명과 각 참여자들의 소감 발표가 이어졌으며, 소파 개정을 통해 민족적 자주성을 회복하고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쟁 위협에 단호히 반대하자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일견 모래알처럼만 보였던 교민 사회에서 이러한 단합된 참여 의식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을 평가하고, 이와 같은 모임을 상시적으로 운영하자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이날 소견 발표가 마무리되고, 행사는 아리랑과 애국가를 연이어 부르며 막을 내렸으며 참가자들은 행복한 새해를 서로 기원하며 지구촌 촛불 파도타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산하였습니다. / 뉴질랜드 배성은

"살기좋은 나라 될 한국, 내가 왜 이민왔나"
뉴질랜드 점화 참관기

행사를 예정했던 Mt. Eden이 연말의 폭죽행사를 보기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 되어있었지만 "촛불행사를 시작한다"고 한국말로 용감하게 소리쳐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폭죽행사가 거의 끝나고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모인것이 12시 20분 경.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며 행사 분위기를 더욱 갖추고 촛불도 더 옮겨 붙였다. 미처 초를 준비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초를 가지신 분들이 반이나 삼분의 일로 잘라서 옆의 분들에게 나누어 주는 흐뭇한 모습도 보였다.

노래를 부르니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비켜주고 우리만 오붓하게 남았는데 약 30-40여명이 모였다.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셈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인 사람들은 유학생, 이민자, 잠시 관광차 왔다가 행사에 참석하신 분들 등등 다양한 분들이 모였다.

'아침이슬'을 부른 다음 사회자가 오늘 행사의 의의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는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남섬의 크라이스트쳐치에서 올라온 배성은씨가 제일 먼저 발언을 했다.

배성은씨는 "100여년 전 일어났던 강화도조약과 같은 불평등조약이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서 SOFA와 같은 불평등조약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또, 집회에 참석하신 한 초로의 어머니는 "부디 열심히들 공부해서 힘을 길러서 우리나라를 아무도 업신여기지 못하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셨다.

황가레이라고 하는, 오클랜드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에서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들과 함께 오신 한 목사님은 이런 모임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어떤 조직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모두들 이번 지구촌 촛불파도타기 행사의 첫 점화를 뉴질랜드에서 하게 되었고 그런 행사에 참석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한 행사 참가자는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너무 멋있고 자랑스럽다"면서 "내가 왜 이민 왔나. 이제는 한국도 분명히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건데 이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도 한다고 말해서 참가자들의 웃음과 박수를 받았다.

자유발언을 계속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새벽 한시가 넘었다. 더 이상의 자유발언자가 없기도 했고 시간이 많이 되어서 다같이 아리랑과 애국가를 연달아 불렀다. 그리고 서로에게 새해 덕담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하면서 행사마감을 하고 각자의 집의 발길을 돌렸다. / 뉴질랜드 이승욱  





<9신: 31일 밤 9시 50분>

경찰, 포위된 시위대 끌어내면서 폭력 사용 말썽

시위대 7~800명이 전경과 전경차의 철벽수비를 뚫고 미 대사관 앞으로 향하기 위해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남쪽 전경차 방어벽은 뚫었으나 다시 북쪽 전경차 방어벽에 포위된 상태다. 9시 50분 현재 전경들은 이 시위대를 한 사람씩 끌어내면서 때리거나 방패로 찍는 등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오마이뉴스> 편집국에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9시50분 현재 광화문 동화면세점과 동아일보 사옥 사잇길에서는 촛불시위 정리집회가 진행 중이다. 현재 광화문은 거의 모든 차로가 통제되고 있어 극심한 교통정체가 빚어지고 있다.



▲ 경찰버스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8신: 31일 밤 9시30분>

오늘 미대사관으로의 접근 힘들 듯
경찰 "대사관으로 통하는 모든 길 봉쇄했다"

경찰은 미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을 이중 삼중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듯 전경들을 배치했다. 미 대사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3-4중으로 쳐진 전경차와 전경들의 철통 벽을 뚫고 지나가야할 정도이다. 일부 촛불 시위대들은 경찰의 방어막을 뚫고 미 대사관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그나마 경찰의 철통 방어에 밀려 뒤쪽으로 물러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대들은 광화문 거리 곳곳에서 "비켜라" "비켜라"를 외치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현장에 파견된 경찰기동대의 한 간부는 "세종로를 비롯, 미대사관 뒷길, 세종문화회관 뒷길 등 미대사관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경찰차와 경찰병력으로 막았기 때문에 (미대사관으로)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대원들도 연일 미국 관련 시설보호를 위한 비상근무에 시달리는 탓에 굉장히 피곤하다.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진압하라고 교육했다"는 말로 경찰도 폭력사태를 원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밤 9시10분 현재 시위대는 세종로 입구에서 경찰과 30여분째 대치중이다. 경찰과 시위대가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시민 한 명은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위대는 "비켜라, 비켜라"를 외치며 경찰에게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날 경찰들은 미니 소화기를 시민을 향해 분사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 몇몇 시민들은 울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분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과 시위대의 밀고 밀리는 싸움은 1시간 가량 계속됐다.



▲ 미대사관으로 향하는 세종로 거리를 경찰버스가 가로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7신 대체: 31일 오후 8시30분>

"내 소원은 전쟁이 없는 나라, 소파가 개정된 나라"
8시20분 본행사 마친 시위대 미대사관으로 행진 시작

서울 광화문 촛불 대행진 본행사에서 열린 자유발언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올라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종교인 대표로 나온 양비엔나 수녀는 "올해 나의 소원은 전쟁이 없는 나라, 소파가 개정된 나라였다. 이 소원은 내년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냄비가 아닌 뚝배기다. 뚝배기처럼 달궈 소파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촛불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티즌 대표로 무대에 섰다는 강순영씨는 이번 촛불시위에 있어 네티즌의 역할을 정리했다. 강씨는 "미군재판의 불합리성을 알린 사람도 네티즌이고, 앞장서서 불평등한 소파개정을 외친 것도 네티즌"이라며 향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네티즌들이 단결해줄 것을 호소했다.

오늘로서 촛불시위에 11번째 참여한 신하늘군(진건초 2)은 "우리의 세 가지 요구인 '살인미군 처벌' '부시 공개사과' '불평등 SOFA 전면개정'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한 마디로 미국이 우리를 아주 우습게 아는 것"이라고 어른스럽게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서울특별시 청소년회의 의원이라는 이계덕(서울국악예고 3년)군은 "가끔 '청소년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시위참여를 말리는 어른들이 있는데 3차 청소년육성계획에는 청소년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당차게 강조했다.

예술가를 대표해 무대에 올라온 사진가 이용남씨는 사고 당시 여중생이 신고있었던 운동화를 들고 "우리 모두 저 하늘로 효순이와 미선이를 데리러 가자. 데리고 와서 뭐가 잘못된 건지 물어보자"고 발언했다.

이관복 범대위 상임공동대표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범대위는 이 선언문을 통해 "평화를 위협하는 힘에 대해 단일된 힘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호소하고 2003년을 "평화통일이 타오르는 해" "오만한 미국으로부터 한국민이 자주하는 해"로 선포했다.

오후 8시20분. 8미터 높이의 철구조물 위에 설치된 '2003 자주 평화'라는 글씨에 불을 붙이는 상징의식을 끝으로 본대회는 끝이 났다. 글씨는 성조기를 상징하는 파랑, 빨강, 하양색 천으로 만들어졌다. 사회자는 이에 대해 "성조기를 태우고 자주평화의 불길을 지핀다"고 설명했다.

본대회가 끝난 뒤 시위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미대사관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평화는 폭력으로 얻어질 수 없다"  
일본 신주쿠 거리에서 외친 유학생들의 '촛불 함성'  




  
2002년 12월 31일 오후2시, 6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일본에서의 촛불파도타기가 시작됐다. 시작에 앞서 일본 유학생 이름으로 셩명서를 발표하고 성명서를 불태우는 순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행사가 바다를 건너 한국과 미국까지 우리의 뜻이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한 재일교포분의 인사말이 끝나자 행사 참가자들은 공원을 벗어나 신주큐 중심부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오후2시 이른 시각이었기에 거리는 예전에 비해 한산하였지만 태극기를 앞세운 대열을 지나가는 일본시민들이 관심어린 눈길로 지켜보았다.

대열은 신주쿠 역 동쪽 출구앞에서 20분간 사진 판넬과 초를 들고 거리 한가운데 일렬로 늘어서 미선·효순이에 죽음을 침묵으로 알렸다.

대열은 다시 신주쿠 역 서쪽 출구로 이동해서 잠시 침묵시위를 하며 전단지 배포를 실시하였다. 15분정도 서쪽 출구에 머물렀던 시위대는 다시 신주쿠 역 남쪽 출구로 이동해 서쪽 출구와 같은 방법으로 시위를 전개했다.

오늘 참가자들은 일반 동경 유학생 및 재일교포, 그리고 일본인으로 구성됐다. 시위대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국에 여중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위대의 사진 판넬과 전단지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지나가는 미국인들도 "투걸스"라고 물어보며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갔다. 시위대는 남쪽 출구 두곳에서 각각 15분씩 머무리며 여중생 사건을 알렸다.

다시 시위대열은 신주쿠 한복판을 가로 질러서 출발 장소인 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안에서 오늘 집회에 대해서 평가하고 유학생, 재일교포, 일본인과 하나되어 아리랑을 부르며 오늘의 집회를 끝마쳤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성명서 전문이다.

2002년 6월 13일, 모두들 월드컵 함성에 두 여중생 미선·효순이의 비명이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50년 간 이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에 하나로 치부하며 마무리 지으려 하였습니다. 기만적인 재판과 한국민들을 우롱하는 외교적 모습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주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주둔군에 모습이 아닙니다. 식민지를 점령하고 있는 점령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미군들에 범죄가 이 땅에서 자행되어 왔지만 변변한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이번 미선·효순이 사건 만해도 기만적인 부시의 사과가 다였습니다.

우리는 당당히 요구합니다. 이제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님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전쟁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평화는 폭력으로 얻어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진정 평화를 원합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어떤 공격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린 동등한 외교를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평화를 해치는 그런 위험한 일을 자행하지 않기를 미국에 요구합니다.

작지만 평화의 촛불을 들겠습니다. 하나의 촛불의 모여 평화의 큰 불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미선·효순이를 추모하며 평화를 기원합니다.

2002년 12월 31일
동경유학생 일동.

/ [일본] 한창규  






▲ 31일 광화문 촛불대행진 본행사에는 3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6신: 31일 오후 7시50분>
"노 당선자의 친미적 자주는 어불성설"
양희은씨 무대 올라 '아침이슬' 부르기도

  
미선이 오빠 시민들에게 인사  
"여동생에 부끄럽지 않게..."  

31일 집회에선 여동생을 잃은 슬픔을 아직도 떨치지 못한 고 심미선양의 오빠 규진(19)씨가 무대에 올라 시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규진씨는 이날 아버지 심수보(48)씨, 어머니 이옥자(45)와 함께 나왔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규진씨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요즘도 동생 생각이 많이 난다"며 "미선이 생각에 같이 즐겨하던 것들은 모두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례를 치른 날 처음으로 미선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꿈에 나와 '오빠 나 잘 갈게'라고 말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살아 있을 때도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오빠생각에 어렵게 왔다 갔다고 생각하니 고마웠다"고도 했다.

"광화문 촛불시위는 두번째, 의정부 등 경기도 촛불시위에는 이미 여러 번 나갔었다"는 규진씨는 이날도 "당연히 와야할 자리에 온 것"이라고 밝혔다.

규진씨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동생을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편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하늘에서나마 근심없이 편히 지내라"며 동생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전했다.

조용하고 착했던 여동생을 여전히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동생의 일에 이렇게 추운데도 많은 시민이 나와 주시니 감사하다"는 인사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 김지은 기자  



광화문 촛불시위 참가자가 1시간30분만에 2만5천명으로 늘어났다. 본행사 무대에 오른 노래패 '우리나라'는 여중생 추모곡 "탱크라도 구속해"를 불러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무대 아래에선 참석자들이 촛불로 '피스 인 코리아(Peace in Korea)'라는 글씨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범대위 오종렬 상임공동대표는 "우리가 켜든 촛불이 미국 보수세력을 흔들고 있다. 진정한 양심의 촛불, 평화의 촛불이 켜질 때까지 우리의 행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홍근수 상임공동대표는 "믿었던 노무현 당선자가 변해서 자꾸 딴소리(촛불시위 자제)를 하고 있다"며, "(노 당선자가 말한)친미적 자주는 어불성설"이라고 노 당선자의 태도를 질책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도 촛불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권 대표는 "우리 당원들은 지속적으로 전국을 돌면서 서명도 받고, 촛불시위에도 참여해왔다. 나 또한 대선 기간 동안에도 계속 참여했기 때문에 특별한 감회는 없다"는 소감을 밝힌 후 "촛불시위는 여중생 사건을 해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한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상록수'를 부르는 양희은씨의 뺨위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노무현 당선자의 '촛불시위 자제' 발언에 대해 권 대표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안되지만, 미국의 무력행사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촛불시위는 미국의 무력행사를 막기 위한 한국민과 네티즌의 힘이다. 이를 단순한 반미로 봐서는 안 된다"며 노 당선자와는 생각이 다름을 분명히 했다.

이날 무대에는 '아침이슬'의 가수 양희은씨도 등장했다. '아침이슬'은 그간 촛불시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다.

양씨는 이날 직접 시민들에게 이 노래를 선사했다. 무대에 오른 그는 "그 동안 정말 오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오게 됐다"며 "오늘에서야 이렇게 힘을 보태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후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불러 시민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양씨는 무대에 오르기 전 다소 담담했던 표정과는 달리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4년 전 광주 금남로에서 노래하던 기억이 오버랩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노래를 만든 사람의 순수한 마음이 전해져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것 같다"며 "노래에 담긴 시민들의 바람이 내년엔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간 '촛불시위 단골 부자(夫子)'로 각종 매스컴을 통해 많이 보도된 신영철씨·신한얼군도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이제 시위현장에 나오면 으레 범대위 진행요원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이날 무대에 오르기 전 신한얼(9·진건초교 2년)군은 "오늘로 11번째 촛불시위에 나왔다"며 미소 지었다. 신군은 "TV 뉴스 등을 통해 효순이·미선이 누나 얘기를 듣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영하에 이르는 추운 날씨에도 "춥지 않다"며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신군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신군의 아버지 신영철(41·경기도 남양주시)씨도 "하루 촛불시위에 데리고 나온 이후 아들이 매번 나오자고 졸라 나오고 있다"며 "아이까지 나서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아 매번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매번 낯익은 노란 점퍼 차림으로 집회에 나왔던 이들은 이날 무대에 올라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경찰은 이날 집회 현장에 145개 중대 2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투입했다. 또 서울교육청 관계자 60여명이 현장에 투입돼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 실태와 동태를 파악해 교육부에 보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긴 파리입니다. 촛불시위 함께 합니다"  
에펠탑 아래에서 '2003 stop the war' 기원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김현숙씨가 <오마이뉴스>에 메일을 보내와 '지구촌 촛불 파도타기' 행사 동참의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다음은 전문입니다.

31일 밤 11시 30분부터 다음해 오전 0시 30분까지 에펠탑 아래에서 평화기원 촛불을 듭니다. 365개, 365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초를 준비했습니다.

"평화의 촛불을 밝히자 - 서울에서 파리까지-"

투명 플라스틱 컵에 각국언어로 '평화'라는 단어와 '2003 stop the war' 라는 글귀를 넣은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거기에, 양초를 넣어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려는 프랑스인들과 프랑스 거주 외국인들과 평화의 마음을 나누려 합니다.

서울에서 하는 평화의 촛불 파도타기 행사와 연대의 마음으로 하고자 합니다. 내년에는 세계평화와 함께, 우리 내면의 평화까지도 깃드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세요. / 김현숙  






▲ 31일 광화문을 촛불로 물들이는 집회 참가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5신 대체: 31일 오후 6시10분>
"평화시위 불허한 경찰 이해할 수 없다"
광화문 일대,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

  

▲ 31일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 가족.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후 6시10분 현재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의 국세청에 이르는 거리는 학생과 시민단체 회원 등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너나 없이 손에 촛불을 들고 미선이와 효순이의 영혼을 위로하며 추위를 녹이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김수령씨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춥지만 아무 상관없다. 촛불시위에 나올 때마다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고 말하며 촛불을 들고 웃어 보였다.

행사 직전 만난 문정현 신부는 "올해에는 열심히 싸웠고 정말 많이 모였지만 아직 얻은 것은 없다"며 "2003년에는 살인미군을 구속시키고 매향리 사격장을 폐쇄하고 SOFA를 개정하는, '얻는 해'가 되야겠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또한 "요 며칠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친미자주는 있을 수 없더라"고 말했다. 친미는 반자주 매국노라는 것이 문 신부가 내린 결론이다. 문 신부는 "앞으로도 DJ 정부 못지않게 바쁠 것 같다"며 "앞으로 자주 보자"라고 인사했다.

행사장에 나타난 화가 임옥상씨는 '걸어다니는 양초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지난 월드컵 때 붉은 악마에게서 힘을 느꼈다. 하지만, 그 힘을 표현할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 다시금 그 힘을 확인했다"며 "미술은 일상을 파고드는 힘으로 승화돼야 한다"는 예술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양초를 팔던 50대 상인은 "20여 년을 시위현장에서 마스크와 장갑 등을 팔아왔다. 양초를 파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상인은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시위현장보다 지금의 평화시위가 훨씬 보기 좋다"며 "촛불시위가 국민들의 맑은 정신를 나타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행사진행 자원봉사를 하는 경기도청소년대책위 중앙본부 회장 임동연(성남정보산업고 3년)군은 "그동안 '해봤자 되는 게 없다' '미국에게 대항하면 전쟁이 나서 모두 죽는다'며 욕하고 무시하는 어른들이 있어서 힘들었다"며 "그럴 때는 '아저씨 아들딸이 죽었어도 그럴 수 있냐'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시위 현장에는 생일을 맞아 케이크를 사들고 나온 학생들도 있었다. 경희대 동아리 '탈머리' 회원 10여명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생일을 맞은 권순원(29·직장인)씨는 "연말이 생일이라서 해마다 대학 동아리 후배들과 송년회 겸 생일잔치를 했는데 올해는 후배들과 의미있는 장소에서 보내고 싶어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지난 달 30일 첫 촛불시위에 나온 날 시민들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권씨는 그는 "이 열기가 민족주의를 넘어서 반전·평화운동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또한 "오늘은 참 의미있는 생일로 기억될 것 같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경찰이 촛불 평화대행진 행사가 예정된 서울 광화문을 차량으로 폐쇄하자,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경찰의 이같은 대응에 대해 민주노동당 이승헌 자주통일국장은 "어제 낮까지만 해도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상호협조 한다는데 합의했는데, 어젯밤 갑작스레 경찰 지휘부에서 시위 불허를 통고해왔다"는 말로 경찰의 조처에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어떻게든 행사는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여년을 시위현장에서 마스크와 장갑 등을 팔아왔다는 50대 아줌마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시위현장보다 지금의 평화시위가 훨씬 보기 좋다"고 말하면서 준비해온 초를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촛불 평화대행진 본행사는 1만5천명의 사람들이 모여든 가운데 오후 6시 교보문고 뒷편 무대에서 시작됐다.

<4신: 31일 오후 5시10분>
"오늘 세상이 바뀌는 소리가 들릴 것같다"
인도 뿌나에서도 '촛불파도타기' 동참



▲ 31일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퍼포먼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시간으로 31일 오후 2시30분경 인도 뿌나에서도 '지구촌 촛불파도타기'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메일 ID로 'cultdream'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이날 오마이뉴스에 보낸 메일을 통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던 터였는데, 다행히 어제 인터넷을 통해 촛불 시위 제안을 보고 부랴부랴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직접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이번 계기로 마음의 짐도 덜고 고국에 계신 한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많은 준비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지만, 우리 능력껏 행사를 준비해 보려 한다"면서 "우선 반전 정황에 대해서 인도인들에게 피를 나누어주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과 함께 촛불과 피켓을 들고 여기 M.G 로드에서 행진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곳 언론사들에게 취재를 요청했고, 집회신고도 이미 마무리가 되었다"면서 "행사에 관련된 사진과 동영상은 집회가 끝나는 대로 보내주겠다. 왠지 오늘 세상이 바뀌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광화문을 가득 메운 전경차량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인 비하·전쟁 부추겨…
<007 어나더데이> 보지 마세요"  
통일연대, 종로 극장가서 <007 어나더데이> 불매운동 벌여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이하 통일연대)는 31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종로 서울극장 앞에서 '<007 어나더데이(Die Another Day)> 안보기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은 이날 하루동안 약 3시간 간격으로 서울극장 앞에서 벌어졌다.

영화 <007 어나더데이> 개봉관앞 표정 - 곽기환/김용남 PD

캠페인을 주관한 통일연대의 민경우 평화위원은 "<007 어나더데이>가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과 다른 이유는 그 정치적 목적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 위원은 "이 영화가 노골적으로 우리 민족을 비하했을 뿐 아니라 현재의 전쟁 위기와 관련 전쟁 상황을 선동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이유로 이 캠페인은 단순한 영화 불매운동이 아닌 반전운동의 일환"이라며 "이 영화에 젖어 들어있는 폭력성과 제국주의 본질도 아울러 꿰뚫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일연대는 이날 집회에 앞서 지난 24일 '20세기 폭스사 한국지사'를 방문, 영화상영중단을 요청했으나 폭스사는 "합법적 개봉이며 영리목적의 영화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통일연대 측은 "폭스사 측에서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캠페인과 관련 영화 컨텐츠 사업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극장 앞에서 이 캠페인을 본 시민들은 "취지에 동감한다"며 매표창구에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대학생 커플 장영환(중앙대 3년)·이지연(중앙대 2년)씨는 "애초 안볼 생각이었다"며 "주위에서도 최근 촛불시위나 반미시위와 연결지어 보지말자는 의견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007 어나더데이>를 선택했다가 후회하는 관객도 있었다. 부인과 함께 영화를 보러 나온 김영철(가명, 45)씨는 "이런 캠페인이 있는 줄 몰랐다"며 "취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표를 안 샀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들을 "미국인"이라고 밝힌 외국인 커플도 주저없이 <007 어나더데이> 영화표를 사들고 나왔다. "혹시 반미운동이나 '007 영화 안보기 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반미 분위기도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물음에도 "그런 운동을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며 매표창구를 떠났다.

이 캠페인은 이날 하루만 3차례 벌어졌다. 그러나 좌석 점유율은 다른 영화에 비해 뚜렷하게 떨어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극장 기획실 측은 "<007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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