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개혁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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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개혁사상
  • 박상석
  • 승인 2011.09.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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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이글은 지난 5일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 홀에서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사진)이 ‘다산 정약용의 개혁사상’이란 주제로 행한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박석무 이사장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엽에 살았던 다산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의식은 당시 시대에 비교해서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측면이 많았다. 특히 그의 민권의식은 대단히 색다른 바가 많아서 오늘의 민권사상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부분이 있었다.

권력의 소종래(所從來)를 밝힌 그의 유명한 논문 원목(「原牧」)이라는 글을 살펴보면,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있는가. 백성들이 곡식과 옷감을 생산하여 목민관을 섬기고 또 탈 것과 사역자들을 내어 목민관을 전송하고 있으니, 백성들이 정말 목민관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고 철저한 위민사상을 설파하고 있다.

백성을 괴롭히거나 목민관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군주는 백성의 힘으로 추방할 수 있다는 다산의 혁명적인 탕론「湯論」은 더욱 흥미로운 주장이다. 천자는 여러 사람이 추대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다산의 혁명론은 바로 동양 정치의 시작부터 행해진 일이라고 주장했던 이론이다.

다산은 목민관이 되어 자신의 주장인 원목과 탕론의 사상을 실천했다. 또 <자찬 묘지명>에서 “수령이 밝지 못하게 된 이유는 백성들이 자기 몸을 위해서만 교활해져서 폐막을 보고도 원님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그 시대에 벌써 국민의 저항권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 국민기본권 신장에도 마음을 기울였다.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목」에서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준 내용이다.

다산은 그의 논문 오학론(「五學論」)에서 성리학, 훈고학, 문장지학, 과거지학, 술수지학의 폐해를 들어 그 혁파를 통해 바른 학문의 세계로 들어갈 것을 주장했으며, 토지제도의 개혁을 통해 경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나아가 다산은 개혁 중에서도 문학과 철학사상의 개혁을 크게 강조했는데, 애군(愛君), 우국(憂國)이 아닌 시는 시가 아니라는 말로 참여시를 주장하였다. 또한 사고체계에 대한 새로운 변혁이 없고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실천과 실행이 가능한 실학적 경학의 논리로 새로운 사상의 마련을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다산은 과학적 사고에 기초하여 기중기와 거중기 등 과학기술의 개발에 무한한 정력을 바치고, 수리학의 중요성을 인식해 정부조직으로 이용감(利用監)과 산학서(算學署) 를 설치해 국민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놀라운 과학자요, 선구자였으며, 주자학의 비현실성을 통박해 사서오경의 새로운 주석을 시도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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