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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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김봉섭
  • 승인 2011.09.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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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박사/ 전 재외동포재단 전문위원

요즘 글로벌화가 대세다. 그렇게 본다면 한민족은 어떤가. 남·북한 인구의 10%에 달하는 700여만 명 이 국제연합(UN) 회원국의 90%에 달하는 170여개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글로벌사회의 일원이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 속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글로벌화를 유지?강화하는 주요인자인 모국과의 상생발전, 동포사회 간의 교류협력, 민족정체성의 지속가능성 여부 등에 대한 밑그림과 재외국민보호와 재외동포지원에 대한 기본철학이 여전히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 현상은 하루 이틀에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근 세계적 기업 ‘삼성’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활발한 것도 하드웨어산업의 선점우위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소프트웨어경쟁력 때문이듯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려면 정확한 미래사회 인식, 과감한 인프라 투자 그리고 치밀한 현장조사·연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유태인, 화교, 인교, 아이리시 등의 움직임에 대해 세계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이유가 이들만큼 생존전략을 치밀하게 짠 민족집단도 드물며, 하나같이 해외거주자 정책을 국가전략 최우선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외 자국민과 자민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정보·네트워크와 역량결집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다. 이들은 보다 멀리 보기 위해 남들보다 더 높이 날고 있을 뿐이다. 물론 우리도 재외동포와 관련된 행사와 사업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정부지원예산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세계 유수의 디아스포라열강들과 어깨를 견줄만한 독창적인 전략구상은 크게 뒤진다. 정부의 정책수준 또한 외국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좇아가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멀게는 100년 후, 가깝게는 20~30년 후의 미래 동포사회를 예측하면서 관련 정책을 구상·입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외동포정책의 본부인 외교부나 재외동포정책의 조정자인 총리실 그리고 국가전략의 총지휘자인 대통령실에서조차 그저 눈앞에 닥치고 발등에 불 떨어진 현안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재외국민참정권 실시를 앞둔 정치권도 표계산에 마음이 앞설 뿐 동포사회의 성숙과 균형발전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재외동포문제를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성질의 것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잘잘못도 따질 수 없다. 동포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므로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그저 “재외동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재외동포정책에 대한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700만 재외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을 움직이고 이들의 자발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전략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재외동포가 희망이다”는 발상의 전환이 선행되고, 동포정책의 틀이 쇄신되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이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이상 대통령이 어떤 생각과 정책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급변하는 글로벌환경 속에서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의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전문가의 정책제안과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재외동포재단에 대한 기대감도 “일 잘하는 재외동포재단” 수준에서 벗어나 재단법에 규정된 목적과 사업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인력·예산)을 실어주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인물을 재단책임자로 발탁하고, 동포사업을 수행 중인 여타 부처·기관들의 사업대상 중복 여부와 소외지역을 재점검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18년 멕시코 메리다지역의 에네켄농장을 방문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는 그곳 한인들의 참상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동포의 과거도 그렇거니와 미래가 더욱 위험하외다. 슬프다, 형이여. 우리의 생활상 문제가 하필 유카탄뿐이리오. 근래 구라파전쟁으로 캘리포니아 몇몇 한인들이 큰 이익을 얻었다고는 하나 미 본토, 포(하와이), 중국, 러시아 각처에 재류하는 전체 동포들의 생활이 역시 가련치 아니합니까? 이것이 걱정이외다.”라고 당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복수국적, 재외국민참정권 등 재외동포사회의 오랜 꿈(Dream)이 하나둘 현실화 되고 있는 이때, 우리 정부나 정치권이 재외동포사회의 밝은 면, 긍정적인 면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반성해보아야 한다. 재외동포사회의 미래를 낙관하기엔 여전히 우리의 마음가짐과 준비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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