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거기, 한민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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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거기, 한민족이 산다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8.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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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연변본색<1> -동북 3성의 한민족을 찾아서


중국동포 출신 백청강씨가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백청강씨의 유명세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갖고 있겠으나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은 인기 프로그램에서 중국동포 출신의 연예인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대단히 흥미롭다.

본지는 우연한 기회에 스무명 가량의 국내 청소년들과 함께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을 탐방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지역은 우리에게는 '만주'지역으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하다. 특히 중국동포는 물론 북한을 떠나온 탈북 동포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한민족의 역사가 면면히 흐르고 있으되 지금은 중국의 영토로서 엄연하게 분리된 지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동포의 주요 거점지역으로서 한민족의 역사에 새겨지고 있는 바로 그 지역을 우리 청소년들과 함께 돌아보았기에 그 소감을 지면을 통해 간단하게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조선족이 북한사람인가요?”

탐방의 줄거리는 대략 요녕성의 끄트머리 대련에서 시작해 북한과의 접경지역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였다. 4박5일로 집약되기에는 짧지 않은 동선이다. 아직 나이 어린 탐방단 학생들이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일었다.

대련에서 려순으로 이동했다가 밤늦게 단동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아이들에게서는 아직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타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짙은 이질감과, 북한에 대한 위화감 같은 감정들이 알게 모르게 전해져 왔다.

“저는 여기에 오기 전까지 조선족이 북한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여행이 끝날 때쯤 여중생 리희는 기자에게 이렇게 고백했었다. 탐방단 아이들 중 상당수가 리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단동에 도착한 밤, 압록강변에는 한국어로 된 간판들이 불을 밝힌 채 휘황했고 확성기에서는 대한민국의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국동포, 탈북동포, 그리고 남한에서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한민족이 뒤섞여 있는 밤.

대련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중국동포 가이드는 지난해 잇따른 홍수로 그 지역의 동포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설명한다. 압록강 이쪽의 중국이 그 지경이었으니 저 너머의 북한동포들은 수도 없이 죽었으리라는 설명이 덧붙는다. 아이들은 심드렁한 태도로 까맣게 어둠이 짙은 북한 쪽을 건너다보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이쪽과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듯 어둠이 침묵하고 있는 북한 쪽이 묘한 위화감을 자아내던 그곳에서 기자는 여행 중 처음으로 19명 탐방단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까마득한 눈길로 희미하게 연변 사투리가 남아 있는 중국동포 가이드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단동을 거친 여정은 길림성으로 넘어가 집안, 통화 등으로 이어졌다.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등 고구려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역을 거치는 동안 대부분 10대 중반의 아이들로 구성된 탐방단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체력적으로 기운을 소진한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한민족 역사 속의 지역이 지금은 중국의 영토라는 개념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탓도 있었을 것이다.

코스에 포함된 고구려의 유적 중 어느 것도 한반도의 문화재들이 그렇듯 그럴싸하게 보존되고 있지 않았다. 광개토대왕비는 유리관에 덮어 씌워져 있고, 인근의 광개토대왕릉은 잇따른 토굴범행으로 을씨년스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그 유적지 중 어느 곳에도 이곳이 고구려의 유적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지 않았다.

교과서를 통해 우리의 역사라고 배운 바로 그 무대들이 여느 산림공원처럼 관리되고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 듯했다.

설상가상 유쾌하지 않은 에피소드까지 있었다. 탐방단의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가 광개토대왕비 관리공원 측에 빼앗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플래카드를 내보이거나 기념사진 등을 찍을 수 없다고 그곳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신신당부를 하던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내년에 대련에서 열리는 국제컨벤션 행사로 당국의 관리감독이 까다롭다”고 설명한 가이드는 관리소와의 실랑이를 포기한 채 버스에 오르는 탐방단의 끄트머리에서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끝난 셈”이라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플래카드를 지닌 것만으로도 중국 국적자인 가이드를 연행하고 더불어 다시는 여행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 중에는 그런 일로 당국의 눈밖에 나 고초를 겪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여러 소수민족을 거느리고 있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야속하고 마뜩찮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버스에 오를 밖에.

버스에서는 금방 겪은 일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고스란히 피부에 밀려와 닿았다. 안중근 열사의 통한이 서려있는 려순감옥에서도, 고구려 역사가 짙게 밴 비류수 계곡에서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중국 행정관리의 횡포에는 분통을 터뜨린다.

한 아이가 다가와 은근히 말한다. “땅이야 자기들(중국) 것이라도 유적은 우리의 것인데 너무한다”는 것이다. “꼭 기사로 다뤄달라”는 주문도 덧붙인다.

남의 땅에서 만난 고구려 유적

고구려유적지를 안내한 중국동포 가이드 청년과 헤어진 후 야간열차를 타고 백두산으로 향했다. 탐방단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지원이(이지원, 초6)가 “신따거(예의 그 중국동포 가이드)가 보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기에 슬쩍 “조선족이 좋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금세 “조선족은 싫다”는 답이 돌아온다. ‘신따거’는 좋지만 조선족은 싫다는 이중성. 하지만 그 중 어느 쪽도 진심인 것이 분명하다.

아직 어린 지원이에게는 조선족, 중국동포, 북한동포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다. 어느 민족보다도 복잡하게 구성된 역사이기에 청소년들에게 보다 섬세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었다.

[편집자주: 본지는 (주)더존투어(02-738-7661)의 후원으로 사단법인 한국특별활동연구원이 주최하는 '중국동북3성한민족유적지대탐방'을 함께 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4박5일에 걸쳐 중국 대련, 단동, 집안, 백두산, 연길, 도문, 하얼빈 등을 두루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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