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이제 사라져 가는 전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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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이제 사라져 가는 전통인가?”
  • 서지영
  • 승인 2011.07.2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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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지영 / 연극평론가, 문학박사


서지영 평론가
한국도 이제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네 가구에 한 가구가 1인 가구라는 통계가 나왔는데, 고령화 사회의 빠른 진행으로 인한 독거노인 증가, 결혼안한 독신자 증가, 그리고 이혼률 급증 등 몇 가지의 이유가 이 통계에 공헌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들 솔로의 삶은 프랑스 영화를 흉내 내고 싶었던 옛 꿈이 아닌 절박하게 다가 온 현실일 뿐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전통적인 가족의 와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이 같은 현상은 과연 선진사회 진입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 동안 한국사회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가족애란 명분으로 서로를 꽁꽁 묶어 놓고 그들 중 반드시 희생자를 만들고야 말았던 사실을 돌아볼 때 이들의 홀로서기는 고립이 아닌 탈출로 보아야 할 지 모른다.

재외동포들은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고국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고국을 떠날 때의 인식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가족이 아직도 전통적인 가족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재외동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사회의 오늘의 가족을 보여주는 연극 두 편을 소개한다.

2011서울연극제에 출품해서 연출상과 연기상을 수상한 연극<만선>(김원 작, 신동인 연출)이라는 작품은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가족애의 잔인한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드러내 주었다. 조금은 과장된 설정이지만 온갖 불행을 골고루 갖춘 가족이 서로를 원망하면서도 가족이라는 그 질긴 끈을 끝까지 놓지 못하다가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 사고를 당해 의족에 의수를 끼고 사는 아버지, 그리고 뇌성마비에 걸린 딸, 그나마 신체가 건강한 어머니와 아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지만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의 고통은 곱절로 늘어가기만 한다. 이들은 결국 동반자살을 결심하고 고깃배 한척을 훔쳐 마지막 가족여행이자 자살여행을 감행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지긋지긋한 고생만 했을 어머니, 그녀의 삶을 동여맨 가족들, 누구하나도 그녀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이토록 버거운 것이 가족의 사랑이라면 차라리 그녀는 모두를 데리고 바다로 뛰어내리고 싶은 거다.

소외된 자들의 삶이 이들 가족을 통해 함축적으로 드러나면서 최악의 처지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로 버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떤 사람에겐 가족이 위안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버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연극은 그 짐을 덜어주고자 해피엔딩이 되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만선>의 극단적인 선택과는 달리 올봄 상연 후 인기를 끌며 재공연에 들어간 연극<고령화 가족>(천명관 작, 문삼화 연출)은 심각한 루저들의 이야기지만 의외로 훈훈한 결말을 맺는다. 나이 50줄에 실패한 삶을 질질 끌고 노모의 집에 기어들어와 복작거리며 살게 된 세 남매의 삶은 한마디로 막장인생이다. 전과5범의 큰 아들, 영화감독이라지만 매번 실패만 하는 둘째아들, 바람피다 이혼당하고 딸 하나를 데리고 나타난 술집마담인 딸, 지금까지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등장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좀 다른 건 이들의 나이가 좀 많다는 사실.

이 연극을 보고 있자니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만큼 철드는 나이도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노모는 이 철없이 나이만 먹은 자식들에게 “사람은 그저 잘 먹는 게 최고”라며 매일같이 고기반찬을 해 먹인다. 서로 많이 먹으려 아웅다웅거리는 이들 중에도 어김없이 희생양은 있었다. 바로 딸이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술집에 나가 벌어 온 돈으로 부모의 생계를 책임지며 오빠들의 뒤치다꺼리까지 해 왔다. 때 아닌 웬 신파조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딸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뒤늦게나마 다시 모이는 건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노모가 세상을 떠난 뒤, 그들은 도덕적 가치관과는 무관하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행복을 찾는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매일같이 나오는 것이 가족이야기지만 연극을 통해 만나는 가족들의 모습은 관객의 살갗을 부비며 진하게 다가온다.

아이 둘 셋을 키우며 뼈골이 부서져라 살림을 해내던 30대 주부의 모습을 더 이상 한국에서 기대해선 안 된다. 30대 아가씨들은 더 이상 시집못간 노처녀가 아니라 시집안간 독신이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부딪쳐 튕겨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는 지금 전통과 변화의 부딪힘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은 1인가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령화 가족’은 8월 14일까지 대학로에서 상연된다. 여름 휴가를 이용해 한국에 와 계신 동포라면 대학로를 찾아 마음에 드는 연극을 한두 편 관람하는 것도 한국사회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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