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핀치 새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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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핀치 새둥지
  • 최미자(재미수필가)
  • 승인 2011.07.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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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자(재미수필가)
미국 남가주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는 재미수필가 최미자씨가 미국 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레몬향기처럼>(2007) <샌디에고 암탉>(2010) 등의 수필집을 발간한 그는 재미동포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편집자주>

어릴 적 집 마당에서 참새 소리만 듣고 자랐던 내가 샌디에고에 살며 반해버린 새가 있다. 나의 뼈가 굵어진 고향처럼 오랜 세월 살아오며 휘파람 소리로 깨어나는 싱그러운 아침. 궁금하여 창문을 열면 멀리 날아가 버려 정원 일을 시작하면서야 그 녀석의 얼굴을 알아냈다. 만나는 이웃마다 새의 이름을 알아보았지만 몰랐다. 새에 관한 책을 사고 또 미국인 친구가 사다 준 새 이름이 적혀 있는 책받침 같은 그림표를 보고서야 하우스 핀치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암놈은 땅 색 빛깔, 노래 부르는 수놈은 불그스레한 머리와 가슴 털을 가졌다.

하루는 고향에서 먹던 갓 김치가 생각나서 갓 씨를 뜰에 심었다. 씨앗이 맺히면 새떼들이 몰려 와 가느다란 가지 위에 옹기종기 매달려 신이 나게 까먹곤 했다. 마치 어릴 적 우리가 학교 앞길에서 수다를 떨며 간식을 사 먹던 때처럼 새들도 무슨 이야기를 저토록 재잘거리는 걸까.

미국생활은 매일 날아오는 우편 문서며 집안수리며 온갖 영어의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야 한다. 이럴 땐 우리 집에 놀러 온 새 떼들을 잠시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언젠가 대전에 살 때 하얀 문조 한 쌍을 기르다 먹이 주는 걸 깜박 잊어버려 죽인 일이 있었다. 우아한 깃털. 시원한 노랫소리에 반해 조류가게 앞에 한참 서 있으니 집에 놀러 왔던 오빠가 딸에게 사 준 새였다. 이삿짐을 옮기다 잠시 책장 위에 올려놓은 것이 실수였다. 며칠 후 새소리가 나지 않아 들여다보니 죽어 있었다. 저런! 말 못하는 새를 굶겨 죽인 죄인의 이 마음을 어찌할꼬. 그런 업보인가. 묘한 인연이다. 나는 지금 우리 집 정원에 날아오는 새들을 날마다 돌보며 살아간다. 올해도 벌써 열두 마리의 새가 둥지에서 날아갔다. 매일 새 목욕통의 물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갈아 주며 사랑을 붓는다.

휘파람소리를 내는 하우스핀치 새와 둥지 속의 아기 새들.
한번은 처마 밑의 새집을 관찰하다 조용해져서 새끼들이 날아간 줄 알고 남편이 새집을 걷어내려다 실수로 새끼를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우린 미안해하며 소쿠리를 엎어 놓고 애지중지 남은 새끼를 키워 보냈다. 정원 일을 즐기는 나는 해마다 봄이면 뜰에서 자라는 가지가지 유기농 먹이로 새들의 방문을 기다리곤 한다. 둥지 안을 들여다보면 나뭇가지며 민들레 꽃 솜털과 길바닥에서 주어 온 가느다란 실이 건축 재료이다. 깨끗하지도 않은 온갖 것들이 얽혀 지어진 작은 둥지 속에서 자라는 새들을 보면 저택에 사는 인간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짓들을 하고 사는가.

한 뼘도 안 되는 집에서 네 마리의 새끼가 오순도순 살면서 고개를 내미는 걸 보고 집이 무너질까 걱정되어 우린 대못을 박고 두꺼운 종이도 받혀준다. 명당 터를 잡았다는 듯이 두 마리가 부리를 부딪치며 비행하는 사랑의 몸짓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뻐진다. 아, 새들과 내가 말없이 서로 주고받는 우리 집 뜰 안에 가득한 이 행복한 에너지를 어떻게 나누어줄까!

여물은 갓 씨를 먹으며 떨어뜨린 씨앗들은 봄이면 자동으로 새싹이 되어 올라오고, 우린 유기농 갓 김치를 담가 먹고 노란 꽃들은 집 안뜰을 곱게 장식해 준다. 우리 집 뜰을 찾아온 새들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로의 흥미로운 생명의 윤회를 생각하면서 허무하고 탐스러운 마음을 비우는 연습도 한다. 세상은 돌고 돌아, 결코 되돌아올 대가를 따지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반드시 선과 악의 인연으로 만나지 않던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좇아가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갈등을 엮으며 무서운 병도 만들곤 했다.

새나 우리는 운이 좋아 좋은 날씨 아래서 이렇게 둥지를 짓고 살지만, 오래전에 일본과 사할린 벌판에 강제로 이주당하여 조국을 그리며 남의 땅에 묻혀버린 그 수많은 억울한 혼들은 어이할까나. 중국 연변에서 한국어 간판을 걸고 살아가는 동포들의 이야기도 눈물겹다. 다행히도 그런 동포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모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아름다운 단체들이 있다니 고마운 소식이다. 현재 자라는 한국인 후손들도 그들의 조상처럼 김치를 담그고 한국말을 배우려고 할까? 튼튼한 우리 둥지가 세계로 뻗어 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막강해져 가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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