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따돌림 당하던 아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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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따돌림 당하던 아이였어요”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7.0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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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일동포 윤가희 양의 ‘명랑 한류 정복기’

소심했던 소녀 ‘한류 전도사’ 꿈꾸다

“저는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죠.”

윤가희 양(사진)은 쾌활하게, 마치 거짓말처럼 과거를 이야기했다. 밝고 긍정적인 태도가, 사려깊고 진지한 말투가, 또래의 20대처럼 낙천적인 웃음이 눈에 밟힌다.

“한국인 이름이라 놀림을 받았죠. 1년뿐이었어요. 나중에는 저를 따돌렸던 아이가 따돌림의 대상이 됐어요. 일본에는 그런 일이 흔하니까요.”

한국어 이름의 10대 여자아이가 실내화에 압정이 들어 있고, 교과서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일본에서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하다. 정작 본인은 담담하게 당시의 일을 전한다. 어른들에게 상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한 아이였다”며 웃는다.

재일동포 2세인 윤가희 양은 모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 없이 십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한국어를 쓰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 그녀의 고백이다. 부모님이 한국어로 말을 건네면 본인은 일본어로 대답했다고도 한다.

일본인 학교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부대끼며, 후일 일본에서 학교를 나와 일본인 직장에 취직하게 될 줄 알았다는 윤가희 양. 그 후로 10년이 지나 기자와 마주 앉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저에게 자신감을 줬어요.”

한류전도사를 꿈꾸는 재일동포 차세대, 윤가희 양을 28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나봤다.

“한류는 동포들이 한국 쉽게 접하는 기회”

윤가희 양이 한국에 온 것은 3년 전이다. 두 살 터울의 언니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윤 양은 언니가 재학 중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 후배로 입학하게 됐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공부하고, 놀고, 취업에 대해 걱정하는 윤가희 양. 최근에는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도 한다. 스펙 걱정을 늘어놓는 태가 영락없는 한국인 대학생이다.

“일본어를 하지만 한국에서 취직하려면 역시 영어를 해야 해요. 재외동포라서 (취업에) 더 유리한 점은 없는 것 같아요.”

남은 학기 동안 여러 각도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겠다고 한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혹은 새로운 제3국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재외동포 차세대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진취적인 감각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계획이 있다.

“그곳이 어디든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류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요. 특히 저 같은 동포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요.”

한국을 몰랐던 사춘기 동포 소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욘사마 열풍이 불었을 때였어요. 친했던 친구의 어머니가 저에게 욘사마에 대해 물었어요. 제가 아는 거라고는 한국어 인사 정도였어요. 그때 처음 민망함을 느꼈죠.”

한국에 대해 관심도 없던 재일동포 소녀를 한국으로 끌어당긴 것은 ‘한류’였다. ‘한류’는 재일동포 소녀에게 관심과 부끄러움, 기대와 의문 등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켰다. 때마침 입학한 한국인 고등학교에서 윤가희 양은 새로운 ‘한국’을 만나게 됐다.

“재일동포부터 주재원이나 지상사 자녀들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다녔어요. 월드컵 때는 함께 거리응원을 하고, 한국 아이돌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죠. 이게 뭔가 싶었어요. 가슴이 뜨거워졌거든요.”

월드컵과 문화콘텐츠를 필두로 자연스럽게 일본에 젖어든 ‘한류’는 윤가희 양에게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주제가 됐다.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일본인 친구들의 관심이 저에게 쏠렸어요.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 그건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한국어 이름 때문에 따돌림을 받던 소녀가 또래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인기녀가 되기까지. 그 배경에는 ‘한류’가 있었다.

윤가희 양은 말한다. “‘한류’는 나에게 소통하는 방법이었고, 나를 드러내는 무기였어요.”

SNS 통해 한류 소식 전하는 ‘전도사’

윤가희 양에게 전해 듣는 일본에서의 한류 인기는 가공할만 했다.

“욘사마로 대표되는 1세대 한류는 지엽적이었어요. 일부 그룹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동방신기로 대표되는 한류로 접어들면서 슬슬 분위기를 탔죠. 지금 소녀시대나 카라의 인기는 정말 커요. 모든 매체들이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하니까요.”

몇년 새 부쩍 영향력이 강해진 일본의 ‘한류’ 붐. 덩달아 그녀도 바빠졌다. 한국을 방문하는 친구들을 위해 가이드를 자청하고, 한국 연예계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SNS는 그녀와 일본의 친구들을 연결하는 핫라인이다.

한류가 앞으로도 꾸준히 경제적인 성과를 거두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제법 의젓한 의견을 내놓는다.

“상품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 대중가수는 데뷔 후에 성장하는 느낌이 있는데, 한국의 스타들은 데뷔전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일본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있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십대 때의 지나가는 열병이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한 윤 양은 경영학 동아리 활동과 문화인류학 부전공을 토대로 한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몰두하고 있다. 한국이 좋아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이기에 모국이 조금 더 그녀에게 살가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기자와 1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그녀는 오히려 어른스럽게 대꾸한다.

“(재외동포를 우대하는) 정책이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요. 정책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이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명랑하게 대꾸하는 그녀는 “바쁜 방학이 될 것 같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총총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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