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루 사전’ 만든 미루초유 여사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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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루 사전’ 만든 미루초유 여사의 사랑이야기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1.06.27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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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수 루마니아한인회장 "봉사하는 외국인 공로 인정해야"

미르초유 여사(오른쪽)와 한민수 루마니아한인회장.

1933년생인 미루초유 여사의 ‘러브 스토리’를 들려준 사람은 한민수 루마니아한인회장이었다. 미루초유 여사는 한국전쟁 후 북한에서 전쟁고아들을 데리고 루마니아로 건너온 조정호 씨와 사랑에 빠졌다. 여사는 그와 1957년 결혼을 했고 1959년 함께 북한에 가서 살게 됐지만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민수 회장이 이처럼 미루초유 여사를 소개하는 것은 우리정부에 그를 도와야한다고 호소하고 싶기 때문.

여사는 2009년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만든 ‘한-루 대사전’ 250권을 출간했다. 우리말 30만단어가 소개돼 있는 이 사전은 지금까지 나온 한-루 사전 중 가장 정확하고 표현이 깊다는 것이 한 회장의 설명. 여사는 또한 한-루 사전에 그치지 않고 루-한 사전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한민수 회장은 “우리나라를 위해 이처럼 봉사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최소한의 공로를 인정하는 성의를 보여야한다”고 강조했다. 미루초유 여사에 대한 스토리는 ‘루마니아의 여인’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젊었을 때 미르초유 부부의 모습

◇ 북한인 남편과의 사랑 이야기

남북전쟁 이후 1952년 전쟁고아들을 데리고 먼 북한에서 루마니아로 건너온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조정호. 미르초유 여사는 이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1957년 결혼을 했다. 59년 부부는 북한으로 갔고, 미르초유 여사는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배우며 남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부부는 딸을 낳았는데, 아이의 이름은 미란이었다.

그러나 딸은 영양실조로 구루병을 앓게 됐다.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아야했던 상황. 하지만 북한은 루마니아에 비해 의료시설이 좋지 않았다. 외국인 모녀가 치료를 받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었고 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키예프로 받던 지원도 러시아와 조선의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끊기게 됐다.

이후 루마니아 대사관은 아이의 병이 완쾌될 때까지 만이라도 루마니아에 머무를 것을 그에게 권했다. 결국 미르초유 여사는 남편을 북에 남겨두고 딸과 루마니아 행을 선택했다.

“아이만 나으면 다시 돌아가리라”하고 그는 마음먹었다.

그러나 북한으로의 입국은 거부되었다. 얼마동안은 편지만큼은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혹시라도 편지를 루마니아어로 써서 검열관들의 의심을 사 전달이 되지 않을까봐 조선말로 썼으며 “보고 싶다”는 정도만 쓰곤 했다.

가장 나중에 받은 편지 내용은 이제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로 탄광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 가지 않고 남편으로부터 편지가 끊겼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은 것은 1974년경이었다. 그동안 사망통지서가 집으로 수차례 배달되었지만, 마지막 편지 이후에서야 미르초유 여사 자신도 남편의 사망을 받아들였다. 한-루 대사전 250권은 미루초유 여사가 남편과 함께할 날을 꿈꾸며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제작된 것이다.

미르초유 여사가 손으로 정리한 사전 기초작업


다음은 한민수 회장이 이슬이라는 이름의 현지학생과 진행한 인터뷰.

▲사전을 언제부터 만들게 되었나요?
남북전쟁 후 1952년 북한으로부터 전쟁고아들이 루마니아에 오게 되었고 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북한에서 프랑스어 대학을 다녔던 시기와 루마니아에서 교직으로 바빴던 시기에는 사전 집필을 하기 힘들었으나, 정년퇴임 이후 약 16년간 본격적으로 사전 출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2년 전인 2009년 사전을 완성하게 되었다.

▲무슨 계기로 사전을 만들게 되셨습니까?
1952년에 북한에서 온 어린이들에게 루마니아어를 가르칠 때에 사전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를 루마니아어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책상 위에 조선어-러시아어, 러시아어-루마니아어사전 이렇게 두 권을 펴놓고 찾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항상 조선어-루마니아어 사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집필하게 되었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는 없었습니까?
실은 조선어-러시아어 사전을 1/3정도 완성했다가 조선어-루마니아어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게 사전 작업을 다시 시작하긴 했는데, 계속 손으로 써오다가 한 선교사가 컴퓨터로 사전작업을 하는 것을 알려줘서 손으로 쓴 초안을 컴퓨터로 옮기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자꾸 하다 보니 더 편했다. 그렇지만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이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이번에 출간하신 사전은 어떤 의미입니까?
한국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반평생을 함께한 작업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바빠서 잠시 중단한 적도 있었지만 마침내 완성하게 되었고 이젠 사전 작업을 하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로 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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