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고 있는 주민등록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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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있는 주민등록법 개정안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1.05.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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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언제 주민등록증 받을 수 있어요?”

“주민등록증을 ‘몰래’ 사용하고 있어요.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범죄자 같은 느낌이 들어요.”

독일동포 A모씨는 8년째 1년의 절반을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아내로서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챙겨야 하기 때문. 여름방학은 독일에서 아이들과 지내지만 겨울나기는 한국에서 한다는 그는 최근 “독일 영주권자이면서도 한국 주민등록증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그가 독일동포가 된지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독일에서 10년짜리 단수비자를 갱신하면 되니까, 주민등록증을 폐기할 필요는 없어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쉽게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에서 오래 거주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갖는 게 필수불가결하다는 게 그의 주장. 원칙적으로 재외국민들은 해외에서 영주권을 받을 때 주민등록증을 신고·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내에 체류할 때에는 ‘거소증’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거소증은 제약이 크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은행, 보험회사, 휴대폰 업체 등은 거소증에 대해 생소해 하며 여권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는 것.

실제 이 같은 사례는 본지를 통해 지적됐지만(2008년 3월), 최근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또 다른 재외국민은 23일 “국내에 체류하는 재외국민 중 상당수가 거소증을 갖지 않고 자신과 같이 주민등록증을 사용할 것”이라고 귀띔하면서도 “영주권자는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국민이지만 마치 정부는 외국인처럼 대우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 복수국적시대, 시민권자도 ‘주민증’… 왜 영주권자는?

모국과의 왕래가 잦은 재외국민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한 채 8개월 이상 잠을 자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의된 주민등록법 개정안은 국내에 30일 이상 체류할 경우, 해외 영주권자들에게도 주민등록증을 발급한다는 점에서 재외동포사회가 관심을 두었던 제도다.

원칙적으로 국외이주를 하게 되면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주민등록증을 사용할 수 없지만, 실제 재외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말소 신고를 하지 않으면 주민번호는 남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개정안을 발의했던 것.

거소증이 주민등록증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도 개정안 발의의 이유가 됐다.

재외국민들이 실제 부동산 거래를 위해 국내 거소증을 제시해도 많은 사업체들이 여권사본을 제출하여 줄 것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의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회원가입을 할 수 없다.

세금납부통지서가 말소된 주민등록 주소지로 송달되고 세금을 납부하지 못해 과태료가 부과되는 일도 발생한다.

그렇지만 주민등록 개정안은 국회 의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전자주민증 도입문제가 개정안에 포함되었고, 정부와 국내 시민단체가 이에 대한 논쟁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시민단체들은 “전자주민증 도입이 개인정보 주체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행안부는 ‘IC칩 정보의 수집 저장 금지 및 위반 시 벌칙 규정’ 등을 명시하는 등 법률안을 수정·보완했지만, 오는 6월 임시국회를 비롯해 얼마나 빨리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하지만 전자주민증 도입과 별개로, 일부 영주권자들은 “주민번호제도는 불평등한 요소가 있다”며 조속한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부터 우리나라도 복수국적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65세 이상이면 시민권을 가진 동포도 국내에 장기 체류할 경우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시민권자들도 받을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우리나라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영주권자들이 받을 수 없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또한 현지 거주 국가와 한국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하는 동포들도 개정안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영주권자들은 신용금고와 같은 2차 금융기관과의 거래나 주소지가 있는 지역 주민만 가입할 수 있는 주택조합원 활동 등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도 지난해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재외국민들에게 금융거래 및 국내취업 등 국내활동의 편의가 증진되는 점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

한편 지난 2월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 장기체류하는 재외국민은 6만6,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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