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문화센터에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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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 문화센터에 가는 날
  • 최미자 / 재미수필가
  • 승인 2011.05.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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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가주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는 재미수필가 최미자씨가 미국 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레몬향기처럼>(2007) <샌디에고 암탉>(2010) 등의 수필집을 발간한 그는 재미동포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편집자주]


샌디에고의 서북쪽 아름다운 바닷가, 세계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 라호야(La Jolla)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보석이란다. 고급 주택이 들어서고 여전히 황금 땅 동네. 잠깐 연수를 다녀가는 젊은 한국 부부들도 비싼 아파트 값을 지급하며 살다 간다. 미국인 가정교사를 채용해 가며 영어를 가르치는 극성스러운 한국 엄마들의 소문이 나 있기도 한곳이다.

샌디에고 전 한인회장인 김병목 의사부부도 40년 넘게 살아오고 있다. 직장 근처로 집 주위가 허허벌판일 때 이사 와 거실은 책과 그림으로 차있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한인이다. 돈을 번 한국인도 지금은 많이 살고 있다.

그곳에는 내가 늘 부러워하는 건물이 하나 있다. 샌디에고 유태인 문화센터.

건물을 만든 기증자 명단이 걸린 복도에 전시된 책들과 자원봉사자

미국에서 지금도 분야마다 그들만의 삶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라는 이유로 피를 흘리는 인류의 슬픈 역사로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유태인 문화센터에 들어서면 단결심으로 이루어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

유태인문화센터에서 무료로 배우는 동양화 수업이 있어 나는 종종 간다. 약 팔십여 대의 차가 주차할 수 있고 이 층으로 된 건물에는 도서관과 청소년들이 연극과 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극장이 있다. 동네 사람들 누구나 회원권을 사면 운동과 수영을 할 수 있는 넓은 체육관도 있다. 기증도 잘하고 단결 잘하고 자린고비처럼 검소한 삶을 사는 그들의 애국심. 복도의 벽 위에, 건물 입구 앞에는 돈을 낸 기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탑이 서 있다.

작가인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행사는 책 박람회 날이다. 일 년에 한 번 복도에서 열리는 북페어. 처음에는 하루 이틀 시작하더니 이제는 날짜를 늘리어 나흘 닷새로 열린다. ‘바니 앤드 노블’이라는 서점에서 책을 팔고 수익금을 기증한다. 거의 절반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물론 유태인 작가들의 책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부럽다. 여러 분야로 성인들을 위한 책도 소개한다. 서점의 책값과 똑같지만 한두 권을 사 그들의 좋은 행사에 나도 참여한다.


고국에 나갈 때마다 나는 서점에 들른다. 발전하고 있는 대형서점의 시설을 보면 그래도 우리 한국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팔팔 튀는 아이디어로 화가들은 표지의 그림을 그리고, 어린이 코너에 놓인 책들도 정말 훌륭했다. 딸아이가 자랄 적 이사를 자주 다니고 사택도 좁아서 동화집을 사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 미련 때문인지 아이들의 책을 만지면 왜 그리 기분이 좋을까.

한국전쟁 후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책이 보고 싶어도 구할 수도 없었고 살 형편은 더욱 아니었다. 지금처럼 자녀가 한두 명이 아니라 일곱 여덟 이었기에 부모님들은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정황에도 문학 선배들이 수필을 쓰고 시와 소설을 공부하며 남겨준 책들은 보석처럼 느껴진다.

올해 봄 샌디에고 중앙도서관에 이민 작가로 초청받아 다른 작가들과 공개토론회에 참석하며 애송이 수필가인 나는 부끄러움과 동양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도서실의 책들을 보며 아직 책을 읽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희망으로 부풀었다.

한국에 갈 때마다 근사한 응접실에 대형 텔레비전과 소파는 자리를 차지해도 책이 꽂혀 있는 집들은 드물었다. 아이들은 밤중에 돌아오니 책 읽을 시간도 없었다. 부모들이 먼저 양서를 읽는 모습으로 본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대형 콘크리트 건물에 살면서 답답한 탓인지 대부분 집 밖으로만 튀어 나가는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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