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플랜트 꽃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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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플랜트 꽃밭의 추억
  • 최미자 / 재미수필가
  • 승인 2011.05.06 17: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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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가주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는 재미수필가 최미자씨가 미국 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레몬향기처럼>(2007) <샌디에고 암탉>(2010) 등의 수필집을 발간한 그는 재미동포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편집자주]


왼쪽에서 두번째가 최미자 작가.
4월이면 피어오르는 아이스플랜트 우리 집 꽃밭. 길을 걷던 이웃들도 즐거워 한마디씩 집주인인 나에게 말을 건네올 때는 보람이 넘치는 달이다. 원래 심어진 잔디는 언덕이라 물만 소비해서 가뭄에도 잘 견디는 식물로 수년 걸려 조금씩 심었는데 이상기온으로 2007년엔 얼어 죽었다.

다시 뒷마당에서 옮겨 심은 꽃이다. 올해엔 낮은 기온과 자주 내린 비로 5월까지 피어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선인장 가시로 무릎을 다쳤던 그 앞뜰에 나가 잡초를 뽑고 있었다.

저녁 해가 서쪽으로 기울여져 가는 시간. 도란도란 한국말 소리가 건너편 길에서 들려왔다. 허리를 펴고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보냈다. 내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는 그 부부도 반가움은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남편의 대학 후배였다. 동창주소록에서 선배가 사는 걸 알고 전화를 걸어 보고 싶었지만, 바쁜 미국생활에 혹 폐가 될까 하고 망설였는데 이렇게 뵙느냐며, 날마다 산책하던 길, 바로 코앞에 우리가 사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이웃을 위해서도 집 앞뜰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중요했지만, 남편 후배라는 말에 나는 당장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재미있게도 그는 나에게 신분증까지 보여주었다. 마침 남편은 동네 근처에서 시간제 근무하는 시간이라 우리 셋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국수로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부인은 근처 집으로 달려가 집에 팥죽이 좀 남아 있다며 들고 왔다. 초록 빛깔의 클로렐라 국수에 우리 집 마당에서 나온 치커리를 썰어 넣고 양념장과 참기름으로 비볐다.

부부가 한 대접씩 뚝딱. 정원 일을 좋아하는 나는 아마 그날 저녁도 별이 나올 때까지 뜰에서 잡초를 뽑았을 텐데, 손님 덕분에 집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도 반가움에 비상으로 사두었던 막걸리와 소주를 꺼내 들고 왔다. 건강 때문에 단호하게 술을 끊었던 두 분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밤이었다. 거의 십년지기 선후배지만 지난날 직장이야기로 새벽 두 시가 되어도 몰랐다. 근처 딸의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산책길에 만났으니 참 희한한 인연이다. 그 시간이 아니면 절대 일어날 수가 없는 것들.

비교적 솔직한 성격 탓 인지 우린 금방 친해졌다. 후배부부가 보름 후면 귀국한다니 나는 정식으로 초청하고 싶었다. 마침 다른 이웃 재영 아빠도 영전하여 곧 한국으로 출국하니 두 부부를 축하해 드리려고 작은 점심파티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화씨 칠 십 도의 온화하던 봄날이 하필이면 팔십 도를 오르내리는 여름날로 둔갑한 것이다.

더위에 빌빌거리는 나는 잡채도 포기하고 음식을 간단히 준비했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힘들어도 난 콧노래를 부르며 부엌에 종일 서있기를 좋아한다. 전날 밤 너무 늦게까지 일하여 피곤해서인지 내놓을 반찬들을 깜박한 것 빼고는 정성으로 차렸다. 고맙게도 일곱 분 모두 내가 차린 뷔페가 맛있다고 했다. 남은 음식도 조금씩 싸 드렸다. 나는 어릴 적 친척집에서 제삿날의 정겨운 추억을 잊지 못한다. 어른은 어른대로 부엌에서 지지고 볶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왁자지껄 떠들며 먹고 살던 시간들을 가능하면 지금도 이어가고 싶다.

한번은 후배 부부와 우리 집에서 노래경합을 했다. 그들처럼 나는 잘 노는 사람들이 좋다. 두 남자가 그날은 술도 마시지 않고 건강을 챙기며 12시 취침시간도 지켰다. 다음 날 정오 엔, 일 년에 한 번 만발하는 우리 집 분홍 아이스플랜트 융단 꽃밭에 앉아 후배 부부랑 행복한 미래를 기약하며 기념사진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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