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에서 어엿한 사장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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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에서 어엿한 사장님으로”
  • 오재범 기자
  • 승인 2011.04.21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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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덕홍 한류백화점 대표

일본 신주쿠의 김덕홍 한류백화점 대표(사진 39)은 항상 겸손하다. 인사도 먼저하고, 주변사람을 챙기고, 항상 높임말을 쓴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배운 것일까.

“98년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정말 막막해서 건너갔습니다. IMF 때문에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가면 먹고 살길이 있을 거라는 기대심만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던 그는 작은 한국식품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월급은 4개월 동안 밀렸고, 급기야 주변사람들에게 빌려준 돈까지 못받아 일순간에 무일푼이 됐다.

“서울로 돌아와도 남은 건 빚밖에 없었기에, 당시에 우연히 알던 동아무역 부장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일본 워킹비자가 잘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운 좋게 비자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경영학과 4학년 2학기 까지 마쳤던 덕분이었다.

“한국식품 무역을 하던 그 회사 창고에서 2년 동안 열심히 일해 빚을 갚았습니다. 슬슬 무언가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기회가 왔습니다.”

취업을 시켜준 부장님이 ‘해찬들 재팬’을 설립해 독립하면서, 김 대표를 파트너로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요코하마로 건너가 차떼기(물건을 차에만 싣고 다니며 배달해주는 일. 가장 영세한 일이다)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도 꿈만을 목표로 뛰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신주쿠에 한국식품점 ‘장터’가 제일 큰 한국업체였는데 그보다 큰 사업체를 갖고 싶었던 것이고, 무엇보다는 가족이 모여서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면서 차근차근 꿈을 일궈나갔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붐을 딛고 요코하마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돈을 모으자 먼저 동생을 데리고 왔고, 2004년 신주쿠에 아주 작은 매장을 처음 열었을 때는 부모님을 모두 일본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2005년에는 나고야 엑스포에 식당을 개업하고, 정식 회사를 설립해 법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사업시작 후 매년 50%의 성장을 거듭했다고 한다. 실패도 겪었지만, 성공이라는 발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의 성공에는 무엇보다 ‘한류’의 도움이 컸다고.

“2008년 신주쿠에 한류백화점을 개업 했을 때는 매장 지하에 블루(Blue)라는 한류문화센터를 차렸습니다. 일본인들에게 한류스타 팬 미팅을 주선하고, 한국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신주쿠, 요코하마 등 일본에서만 5개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라쿠텐, 7i 등 온라인쇼핑몰에도 이미 입점했다. 신주쿠의 그의 매장은 하루 평균 방문객이 1만명이고, 지난해 매출액은 무려 130억원에 달한다.

“제가 운영하는 업체는 모두 현지인을 타켓으로 가장 적합한 물건을 팝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성실하게 그리고 웃음을 잊지 않는 3S(speed, smart, smile)의 정신이 있었기에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가게는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지 유명일간지에도 수차례 소개되고 거의 매주 방송에 나온다고 한다.

“올해는 200억 매출이 목표입니다. 최근 지진, 원전사태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달성했겠지만 아직은 약간 미지수입니다.”

그는 최근 사업영역을 확대하려고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을 수입해 매장에서 직접 팔 계획이다. 동시에 서울과 상해에도 매장을 오픈해 또 다른 3S(Shinjuku, Seoul, Shanghai)를 만들려 한다.

“스스로 제가 한국제품의 일본 내 인지도를 한 단계 높였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류가 우리를 먹여 살렸다면 앞으로는 우리가 한류를 현지화 되는데 중심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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