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춤의 글로벌에 앞장선 최승희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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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춤의 글로벌에 앞장선 최승희의 재조명
  • 최미자
  • 승인 2011.04.1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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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글로벌스포츠건강과학연구소 예술분과위원장 최미자

최미자 예술분과위원장
춤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각 나라의 종교, 기후, 생활습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연발생적으로 창조된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춤은 우리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문화 양식으로 오랜 삶과 함께 계승되어 왔는데 우리나라 근대 춤의 토대를 마련한 최초의 무용수는 최승희이다.

그녀는 이미 70년 전부터 춤을 통하여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동방에 알린 무용수로 유명하다. 최승희는 철저한 훈련으로 다듬어진 육체를 통하여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인 춤을 추었고, 그 표현의 특성은 예리하였으며, 광채가 나는 눈과, 성적 매력, 그리고 서정적인 동작에서부터 변덕스럽고 코믹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우리 춤의 장르를 선보였다.

최승희는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문화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고 힘없이 사라져 가는 우리 춤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서 근대무용을 자리잡게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춤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을 하였다.

최승희는 춤을 통해 우리민족의 사기를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코리아 댄서’라는 이름을 내세워 우리 춤의 멋과 신비를 동방에 알려 우리나라 예술문화 수준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 외교사절 역할을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교포 김용권씨로 부터 알려져 최승희의 춤과 생활이 이미 세계화 되어 있음을 입증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월남한 김백봉의 발표회에서 최승희 류의 춤을 제대로 공연했다.

즉흥성이 가장 돋보이는 살풀이춤을 교포 1세들의 애환을 담아 공연했다. 1940년대 조국을 떠나 흩어져 있는 동포들을 위문하기 위하여 일본을 비롯한 만주지방의 순회공연을 수십차례 무대에 올렸다. 살풀이는 승무(僧舞)와 더불어 가장 독특하고 어려운 춤으로 남도의 살풀이굿에서 파생됐다.

살풀이라는 남도 무의 장단에 맞추어 추는 살풀이춤은 무속의식에서 액을 푼다는 뜻으로 오늘날까지 공연되고 있는 한국 전통 무용 가운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춤이다.

무속(巫俗)에 기원을 두고 무당들이 신을 접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졌던 살풀이춤은 훗날 광대나 기생들에 의해 춤의 내용이 한층 예술적으로 다듬어져 아름다운 기법과 형식으로 발달하여 기방무용으로 계승발전 되었으며, 1930년 무용 발표회 때 살풀이 춤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하게 됐다.

최승희는 이러한 살풀이춤을 계승 발전시켰고,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 우리나라 춤을 선보여 세계화에 앞장선 주요 인물이다. 최승희의 훌륭한 창작 춤과 전통 춤은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포들에게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예술 작품이라 생각된다.

특히, 북미나 유럽에 계신 교포들에게는 그들의 이민 삶에 대한 애환을 닮은 살풀이춤과 도약과 발전 그리고 안정과 번영을 의미하는 태평무 춤은 한층 더 삶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 세계에 우리의 전통 춤을 알려 우리 민족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최승희 춤과 전통무용은 경험적인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증가함에 따라 많은 무용인들이 새로운 방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재연, 재구성하여 총체적으로 최승희의 춤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를 했다.

전 세계의 문화예술이 자리를 함께하는 이 시대에 무용예술의 영역이 무한히 넓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통 춤에 대한 교포들의 관심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춤 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살피고 내일의 지향을 위해 일상생활의 긴장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활력을 되찾아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우수한 우리나라의 전통 춤과 창작무용을 세계에 드높일 수 있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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