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삶, 동포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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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삶, 동포의 문학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3.24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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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 힘겹게 피워 올린 모국어의 씨앗

이민사가 오래된 지역에 세대를 이어가며 정착한 동포들에게 모국어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모국어를 일상어로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한다고 해도 본국에서 사용되는 모국어의 모양에서 많이 벗어나 있거나, 급기야는 모국어를 거의 잊었다.

동포들에게 있어 문학은 두 가지 양태로 드러난다. 창작에 사용되는 언어가 모국어인가 아닌가는 이 두 가지 양태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본지가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에게 동포문학이 그들에게 갖는 의미를 물어보았다.

문학, 이민생활의 위로

“해외에서 모국어로 문학 활동을 한다는 것은 내 나라를 가슴에 심는 작업”이라는 황현숙 씨는 호주 퀸스랜드 한인문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호주 한인문화재단에서 문학상을 받는 등 여전히 왕성하게 집필에 열중하고 있는 24년차 ‘글쟁이’다.

“향수병을 스스로 치료할 수도 있고, 이민생활에 정서가 메마르지 않도록 도와주는 활동이기도 하며, 마음의 위안을 주죠.” 황현숙 씨는 재외동포에게 창작활동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포문학이 동포들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해외생활의 피로감이나 외로움에 대한 위로며 동시에 민족적 동질성과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다리다.

2000년 등단해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는 호주동포 최옥자 씨는 “글을 쓰고 발표를 하며 이민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를 주고 받으며 치유를 받는다”고 본인의 경험을 소개했다.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지부 김윤선 회장은 동포 개인의 문학활동이 한인사회에 던지는 의미에 주목한다. “모국어로 문학을 한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김 회장은 “(이 같은 활동이) 한인사회에는 삶의 온기를 전하는 일”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한글로 문학을 하는 것은 한글문학을 이 땅에 전수하는 일도 된다”고 설명했다.

황현숙 씨 역시 “나의 글을 통해 손길을 내밀고, 그들의 손을 잡는다”며 “이민생활이 외롭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어려움도 많아

하지만 모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재외동포들의 문학 활동에는 어려움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출판 및 인쇄에서 오는 어려움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서 출판을 하려면 어려움이 따른다”는 황현숙 씨는 “인쇄하는 방식이나 종이 질이 다르다보니 경비가 많이 든다”고 토로한다. 이같은 어려움은 많은 문학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동포들이 대체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대부분 (재외동포)문인들이 한국 출판사를 이용하고 있으며, 주로 동인지를 통해 출판에 참여한다”는 황 씨의 설명은 동포사회에서 문인 단체들이 갖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최옥자 씨 역시 “호주에서 출판은 불가능해 본국에 의뢰하는 형편이라 불편하다”며 “더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지부 김윤선 회장은 “이곳에서 출판이 어려워 한국에서 출판을 하는데, 출판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운반비가 만만찮다”며 “출판사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어 외국에 거주하는 작가들을 위해 운반비 정도라도 지원해주는 정부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언어를 구사하는 데 있어서 나타나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최옥자 씨는 “어휘력이 떨어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윤선 회장 역시 “신간서적은 물론 서적 구입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크다. 도서관에 시간서적은 귀하고 대부분 오래된 책들 뿐”이라며 “700만 재외동포 시대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는다.

이같은 어려움은 2,3세대 동포들이 등장하는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미 미·중·일 등 이민사가 오래된 동포지역에서 현지어로 문학 활동을 하는 동포들이 현지 주류사회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모국어가 아닌 현지어로 집필된 작품을 동포문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

미국에서 수필가로 활동하는 최미자 씨는 “외국에 살며 솔직히 모국어는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처음 이민 와 시를 쓰시던 오빠와 언니가 한국어를 잊어버려 못 쓴다고 했을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최미자 씨는 최근 영어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영어 수필을 미국인들이 읽어주고 기뻐하는 걸 보며 한국인으로서 긍지도 느낀다”는 최 씨는 “한국인들과 문학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한인 문학 단체들 중 패거리를 만들거나 등단을 핑계 삼아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한인 문인 단체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재외동포재단은 동포들의 문학 활동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의미에서 해마다 ‘재외동포문학상’을 실시하고 있으며 2010년 12회를 맞았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오정희, 은희경, 김형경 등의 소설가들은 “응모작품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으며, 글의 소재도 과거 이주사 등 힘들게 살았던 고생담에서부터 거주국 내 작은 성공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 글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경향을 설명했다.

재단은 “청소년 글짓기 부문의 응모편수가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경향을 전했다. 정착기에 접어든 1세대 동포들부터 제2언어로 새롭게 모국어를 익힌 차세대 동포들까지 동포문학의 개념은 더욱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

척박한 토대에서 힘겹게 밀어 올린 동포들의 주옥같은 우리말이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모국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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