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 스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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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 스쳤죠"
  • 조한철 월드옥타 상임고문
  • 승인 2011.03.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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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서 보낸 편지(조한철 OKTA 상임고문)

일본 동북부 지진이 일어난 지 10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어진 지진해일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이 되었고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훨씬 많은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피해지역과는 한발 떨어져 있는 수도 동경에서도 슈퍼마켓에서 물, 화장지, 쌀을 사기가 쉽지 않고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전력부족에 의한 계획단전으로 하루에 세 시간은 전기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면 맨션의 가스와 수도는 물론 엘리베이터도 멈추어 28충을 걸어서 올라야 하고, 전철이 운행을 중단하고 음식점은 물론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진발생 후 세계 곳곳의 옥타 형제들로 부터 위로 전화와 메일을 받았습니다. 전화통화를 여러 번 시도하다가 포기한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진이 있은 3월 11일(금) 지진의 한복판 지역인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에 체재하고 있었습니다.
경영하고 있는 호텔에서 영업회의를 마치고 두시쯤에 시내 레스토랑으로 사원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가 있었습니다. 주문을 하는 중에 지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평소에도 자주 있어온 가벼운 흔들림으로 생각했는데 5-6초 후에 이건 보통 놈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급히 실외로 뛰쳐나갔더니 곧 바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대단한 놈이 쳐들어왔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위를 살피니 땅이 융기하고 꺼지고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기에서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쳤죠. 불행 중 다행으로 바다에서는 5키로 정도 떨어져 있어서 해일피해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호텔과 직원들의 안부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서둘러 차를 몰아 호텔에 돌아오니 모두 일본인인 직원들이 주차장 광장에 모여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한편 호텔건물의 손상과 기계설비 등을 체크하였습니다. 전화가 불통인 상황에서 바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직원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간신히 휴대폰 메일을 통해서 하나 둘 전해지는 어렴풋한 피해소식에 모두들 사색이 되어갔습니다.

집이 떠내려갔다는 소식, 가옥이 무너졌다는 메일, 물이 안방까지 들어왔다는 전언 등. 그러나 가족의 안부와 집 상태 파악을 우선하기 위해서 직무를 이탈하는 직원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묵묵히 회사의 피해상황을 조사하고 넘어지고 깨진 비품집기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진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수도 가스가 끊기고 온천물이 정지된 상태라 임시휴관을 결정하고,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피 태세를 유지하면서 큰 정리를 끝내고 비상 시프트를 편성한 후 교대로 귀가조치를 하였습니다.

객실사용은 금지하였으나 먼 지역의 귀로가 차단된 고객과 장기 숙박을 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1층 출구 가까운 연회장을 임시 쉼터로 배정하고 20분 간격으로 찾아오는 여진과 씨름하며 좀 큰 놈이 왔다싶으면 주차장으로 대피시키는 일을 십 여 차례 반복하였습니다.

섭씨 0도의 바깥 날씨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두를 더욱 지치게 하였습니다.
TV보도를 통해서 전해지는 각지의 피해소식에 희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며 총체적인 패닉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새벽에 원자력 발전소 문제가 불거지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었고 손님들은 서둘러 하나둘 빠져나갔습니다. 날이 밝아 평소의 남다른 호기심이 발동하여 시내를 돌아보고 바다 쪽을 찾았지만 경찰 바리케이트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피난소에서는 급수와 급식을 받으려 수 백 미터의 열을 이루는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을 감춘 무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호텔로 돌아와 저수탱크(130톤 저장)와 냉동 냉장고의 식자재 재고를 확인한 후 종업원들에 배부토록 하고 피난처가 없는 종업원들의 가족을 호텔에 수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연락이 안 되어 동경 사업소가 걱정이 되는 가운데, 원자력발전소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호텔을 폐쇄하고 대피하라는 지침을 주고 밤9시에 확신이 서지 않는 탈출을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동경까지는200킬로로 평소 같으면 2시간 남짓 거리인데 고속도로가 불통인 관계로 전혀 생소한 바닷가를 달리는 일반도로로 남하를 강행했습니다. 물론 정전으로 사방이 암흑인 가운데 만약 이곳에서 해일이 다시 온다면 도망갈 길이 없고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달렸습니다.

다행히 도로는 낮에 정리를 해 놓은 듯 차도가 확보된 가운데 군데군데 융기와 함몰된 곳을 조심하며 핸들과 브레이크와 액셀을 필사적으로 조작하였습니다. 암흑 속에서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풍경은 해일이 할퀴고 간 잔재들. 내려앉은 주택, 구겨져서 여기저기 늘어져 거꾸로 처박혀 있는 자동차, 쓰레기더미 등 영화에서만 보던 광경들을 실제상황으로 체험하였습니다.

8시간 걸려 동경에 생환하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쌓인 피로로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날이 새어 앞으로 회사를 어떻게 재구축 할까를 구상하고, 관계관청과 은행 협력업체 등을 방문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이면에는 기회가 숨어 있는 법. 위기를 찬스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평소에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가서 싸구려 과자를 씹으며 잡지를 뒤적거리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일상생활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에 기반을 닦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현재 동경에서 경영하는 레지던스 호텔에 해일과 방사선에 쫓겨나온 호텔 직원 5가족을 수용하여 돌보고 있습니다.

많이 걱정해 주시고 격려를 주신 옥타 동지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동경대회에 모시지 못함을 섭섭하게 생각하며
4월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기약하겠습니다.

동경지역 옥타 멤버들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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