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집트 사태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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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집트 사태 어디로 가나?
  • 공일주 중동 북아프리카 한국학회장
  • 승인 2011.02.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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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 북아프리카 한국학회장
1월 25일 이집트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전 이집트 정부와 주요 일간지에서 이집트가 다른 아랍 국가와 환경이 다르므로 튀니지와 같은 정권퇴진 시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집트 역사는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이집트 청년들이 움직이자 정부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이집트 청년들은 무바라크가 집권하던 3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30년간 좌절과 의욕 상실에 빠져 있던 이집트 청년들은 이제야말로 무바라크가 퇴진하여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를 바랐다.

그동안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고위직에 나가기 어려웠고 반면에 권력층 자제들은 실력도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꿰찼다. 이집트에서 일반적으로 대졸 초봉은 월 100불을 넘지 못하고 있고 여성들의 월급은 이보다 적었다.

튀니지 시민 혁명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혁명으로 알려지면서 이집트에서도 젊은이들이 페이스북으로 몰렸다. 작년 이집트 내무부 장관은 이집트 젊은이들이 페이스북을 절대로 애용하지 않는다는 이색적인 사실을 언론에 내 놓았다.

당시 이집트 청년들이 페이스북을 통하여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가자 이를 막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이집트 청년들은 그런 짓을 안 한다고 했던 것이다. 금년 1월말 시위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번져가자 이집트 정부는 인터넷을 중지시켰다.

시위를 정면으로 막아보려는 무바라크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러자 미국이 인터넷 개방을 촉구하고 나섰고 일주일 만에 인터넷이 다시 열렸다.

이번 이집트 시위는 그 원인이 복잡하다. 청년 실업, 물가의 상승, 정치와 사회 개혁, 부패와 독재 청산, 외세(이스라엘과 미국 등) 개입 반대와 아랍의 자존심 회복 그리고 정권 퇴진과 체제 개편, 이슬람주의자들의 정치권 등장 등이었다.

이집트 시위는 청년들이 주도했다. 그래서 시위가 나자마자 정부와 종교계는 청년들의 시위 자제를 요구하고 불법 폭력 시위를 중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해외 언론에서는 이집트 시위가 민주화를 앞당기고 있다는 거창한 표현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집트 내에서는 민주화가 아닌 일부 계층의 대형 매장 약탈과 절도, 그리고 경찰서와 관공서의 방화가 이어졌다.

이번 이집트 사태의 두 얼굴은 하나는 무바라크 퇴진 운동과 체제 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속하는 약탈, 탈옥, 무기 탈취, 식량 절도, 사기 등이었다.

순수한 청년들의 시위는 시간이 가면서 정치적인 말로 도배됐다. 서구 언론은 이집트의 민주화의 봄이 오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민주화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전혀 낙관할 수 없다. 무바라크가 부통령으로 임명한 오마르 술래이만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차기 대권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점찍어 놓은 사람이었다.

무바라크는 처음에 자신이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대선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시위가 이미 정치화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일부 시민들이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하야와 체제 변화를 요구했다.

시위가 일주일째 접어들면서 일부 언론들은 무바라크의 해외 도피를 외신의 톱뉴스로 꼽기도 하며 이집트의 시위 양상이 곧 정권퇴진과 민주화로 연결될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무바라크의 첫 연설은 매우 단호하고 힘이 있었다. 그의 아랍어 연설을 들을 때면 ‘무바라크가 강력한 통치자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다소 찡그린 얼굴로 연설문을 하나하나 읽어내려 가면서 때로는 손짓을 하고 때로는 강조를 위해 그의 목청을 높였다.

무바라크의 첫 연설에서 "나 무바라크는 이집트에서 태어나 이집트를 위해 내 생애를 바쳤고 나는 조국의 땅에 묻히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연설을 들은 국민들은 2월 1일 무바라크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던 시위대 앞에 나타나 무바라크 지지 운동을 벌였다.

이집트와 튀니지 시위로 인해 이제는 어느 아랍 국가도 이런 민중의 시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랍 국가들이 시위 예방 조치로써 봉급 인상과 물가 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새로운 정치 어젠다가 되고 있다. 이집트 시민 봉기는 안개 정국이어서 어디로 갈지 아직 분간하기 어렵다.

다만 권력층이 대담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시위를 통해 제기되는 시민들의 요구 사항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면 아랍 국가들이 앞으로 따라가야 할 본이 되겠지만 그런 징후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집트 시위가 집권층의 정치적 놀음에 묻히면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결과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지난 30년간 무바라크 대통령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협조의 대가로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왔다. 지난해부터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반대하고 가자 지구를 압박하는데 이스라엘과 협력했다.

그래서 금년 1월1일 새벽에 일어난 알렉산드리아 콥트 교회 앞의 폭발범을 가자지구에 근거지를 둔 테러 조직이라고 이집트 정부가 발표한 바 있으나 그 원인 규명은 의문투성이다.

이집트가 온건 이슬람을 주창하고 나선 것은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라는 근거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라이벌인 이란, 시리아, 히즈볼라, 하마스와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가 지난 30년간 이슬람주의자(이슬람 근본주의자)인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이들의 활동을 막아온 것이 미국에게는 어느 정도 안정된 정치로 보였다.

미국은 이번 시위 초기에 이집트 국민들의 자유스런 의사 표현을 적극 지지한다는 말을 바꾸어 오마르 술래이만과 함께 평화적 정권 이양을 지지한다고 했다.

결국 그렇다면 구체제에서 얼굴만 술레이만으로 바꾼 꼴이 되겠는데 이것은 이집트 개혁 세력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

이번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위로 아랍 세계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아랍 국민들이 그들의 통치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입방아를 찧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랍 국가에서 정치, 종교, 성에 대한 담론은 대화 그 자체가 자제돼 왔었다.

대부분의 아랍 통치자들은 그들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시키려고 했다. 더구나 권력층이 일부 국가 재산과 국영 기업을 사유화하고 있다. 특권 엘리트층의 과소비에 비해 보통 사람들의 생활고는 너무나 크다.

일부 아랍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아랍의 시위는 미국이 아랍 정치에 깊이 관여하면서 서로 충돌한 것이라고 하고 아랍 국민들이 그런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이집트와 튀니지의 시위라고 했다.

물론 이집트 정부도 이집트의 시위는 외세의 간섭이고 외부의 소행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집트 청년들이 1월 23일부터 시작한 시위의 근본적인 성격은 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길거리로 뛰쳐나갔다는 사실이다.

시위 목적은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구조를 갈망하고 새로운 헌법, 새로운 선거법, 새로운 의회, 그리고 자유스런 의사표현과 사법부의 독립을 원하고 있지만 갈 길은 요원하다.

그들이 원하는 깨끗한 정부, 책임 있는 행정,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정의 사회 구현은 아직 이집트의 새 정부에서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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