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주러공사 이범진 순국 100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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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주러공사 이범진 순국 100주기 추모식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1.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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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서 출발
“우리 조국은 패망했습니다. 적을 벌할 수 없는 저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이듬해인 191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한방의 총성이 울렸다. 조국의 패망에 대한 애끓는 심정을 호소한 주러시아제국 대한제국특명전권공사 이범진은 자결로서 일제에 항거했다.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외교가, 정치인으로 구한말 활동했던 이범진 공사 순국 100주기 추모식이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다.

주상트페테르부르크총영사관(총영사 이석배)과 상트민족문화자치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이번 추모식은 오전 10시 총영사관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세베르나야 클라드뷔쉬 북부공동묘지에 소재한 순국비를 참배한 후 오후 6시 30분 Дом Национальностей, Актовый Зал(Маховая ул. д.15)에서 공식 추모식을 거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범진 공사는 1900년 7월 주러시아특명전권공사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부임했다. 러시아에 부임한 최초의 우리 공사인 셈이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은 강제로 대한제국의 재외공관을 폐쇄하고 외교관들을 소환했다. 이때 상당수의 외교관들이 이를 거부하며 현지에 남았다.

이범진 공사는 일본의 소환요구를 거부하며 끝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하며 항일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러공관 재산과 사재를 정리해 연해주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재외동포 항일운동 단체를 지원한 것은 물론 교육구국운동 등을 통해 국권회복에도 전력했다.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이상설, 이준 열사를 도와 탄원서를 작성하고 아들 이위종을 통역으로 보내 지원한 사실은 유명하다.

국권피탈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로 생을 마감했으나 1963년 순국비가 세워졌고, 지난 2008년에는 러시아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이 비석을 찾아 참배하고 헌화한 바 있다.

추모식 참가를 위해서는 총영사관 강봉연 행정원(448 1909)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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