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선생님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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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선생님의 이중생활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1.06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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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장학생으로 원주 호저초교 부임…낮에는 스텔라, 밤에는 박지윤

강원도 원주 호저초등학교에는 두 얼굴의 여교사가 있다.

뉴질랜드 동포인 스텔라 선생님(한국명 박지윤, 24세)이 호저초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개월 남짓. 8월 해외영어봉사장학생 프로그램인 ‘TaLK’를 통해 한국에 온 그녀는 한달간 연수를 거친 후 원주의 호저초등학교에 부임했다.

“경쟁률이 20대 1 정도였어요. 심사도 까다로웠죠. 영상면접까지 봤다니까요.”

지원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실제로 함께 지원한 친구는 끝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한국행이 좌절됐다.

“원주는 호젓하고 깨끗해서 뉴질랜드와 많이 닮았어요. 원주가 좋아요.” 원주에 이렇게까지 애착을 갖게 된 이유는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원주초등학교의 아이들 때문이라고.

기자가 찾아간 수요일, 스텔라 선생님은 연달아 3학년, 5학년, 6학년 수업을 진행했다. 미리 준비한 카드로 퀴즈를 내기도 하고, 간단한 상황을 만들어 아이들이 직접 상황극에 참여하기도 한다.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뒀어요.”

1.5세 동포인 그녀의 한국어실력은 완벽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한국어를 모르는 양 어깨를 으쓱하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연기를 한다.

수업을 참관하는 기자에게 아이들은 다가와 속삭이며 묻는다. “선생님 한국어 정말 못해요?” 외국에서 온 한국인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궁금하고 알고 싶은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못하는 척 내심 연기를 하고 있는 그녀의 깊은 속내는 따로 있다.

상처 많은 아이들, 아껴주고 싶어

호저초등학교에는 인근지역 보육시설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상당수 다니고 있다.

“가끔 아이들이 상당히 방어적인 것 같은 느낌을 가져요. 비슷한 거리에 다른 초등학교도 있는데 이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요. 우리학교에서도 편하지만은 않아요. 문제가 생겨 전학가는 아이들도 있고…”

그녀는 혹시 학교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스레 학생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자신들의 그런 사정을 제가 몰랐으면 하는 것 같아요. 한국어를 못하는 제게 더 애정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그래도 그때까지는 들키고 싶지 않아요.”

스텔라 선생님의 이중생활은 이렇게 그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아이들의 바람과, 그런 아이들을 아껴주고 싶은 선생님의 바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사기극인 것.

정이 든 만큼 겨울이 지나 학교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워요. 아직 헤어진다고 생각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그래도 곧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서운하고 속상하죠.”

이같은 헤어짐을 그녀는 또 다른 계획으로 상쇄하고자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예뻐하는지 알게 됐어요. 한국에서 아동심리나 아동상담 같은 좀 더 전문적인 분야를 공부하려고 해요.”

그녀는 이어 점차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는 토크에 대해서도 야무진 조언을 덧붙였다.

“잠깐 놀러간다, 쉬러 간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면 곤란해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행동이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니까요.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한국에서 무엇을 배워갈 것인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게 좋아요. 무엇보다 사명감을 가져야죠.”

수업이 끝난 후 졸업을 앞두고 있는 6학년 학생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과 헤어지기 너무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선생님을 만나고 난 후 달라진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인다. 스텔라 선생님을 통해 공간감각의 지평을 넓힌 아이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을까. 하얗게 눈이 쌓인 운동장을 걸어 나오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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