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복수국적제도 시작부터 ‘첩첩산중’
상태바
제한적 복수국적제도 시작부터 ‘첩첩산중’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0.12.22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역문제, 언어문제 등 겹쳐, 입양인 18만 중 얼마나 될지 ‘의문’
지난 4월 열렸던 국적법 개정안 세미나.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입양인 K씨는 내년도에 한국국적을 신청할지 고민이다. 우리나라에 계속 거주할 생각이지만, 능통하지 않은 한국어가 걸림돌이다.

내년도에 한국도 복수국적제도를 본격 시행하지만, 제도의 진행과정을 우선 지켜보겠다는 게 그의 생각.

“그동안 미국대사관에서 도움을 크게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국적을 받으면 대사관에 도움을 신청할 수 없다고 합니다. 법원, 경찰서 등에서 영어로 원활하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점도 한국국적 신청을 주저하는 이유입니다. 당분간 그냥 미국국적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복수국적의 문호가 열렸지만 입양인들은 이처럼 이에 대한 신청을 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입양인 숫자는 최소 20만 명. 국내에서도 수백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법무부도 입양인 숫자를 약 17~18만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입양인들은 복수국적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해외입양인연대(G.O.AL)는 21일 “현재 90명만이 내년도에 한국국적을 신청할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연대가 보유한 회원만 최소 1만명. 홈페이지, 이메일, 세미나 등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홍보를 지속해온 것에 비하면 예상 밖으로 저조한 수치.

“김충환 국회의원이 지난해 5월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어 많은 입양인들이 선뜻 참여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원 입양인연대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스위스 군대를 제대한 바 있지만, 복수국적을 받기 위해 한번 더 한국에서 병역을 이행해야 할 뻔 했다”면서 "다행히 40세가 넘었기 때문에 이를 피할 수 있게 됐다"며 웃지못할 사례를 설명했다.

이러한 제도적 헛점을 막기 위해서 김충환 국회의원은 지난해 12월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문화적 차이 및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해외 입양인의 경우 징병검사 없이 제2국민역에 편입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내용.

그러나 정부관계자들은 "내국인 여론 추이가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있어서의 핵심적 관건”이라고 일관되게 말해, 이에 대한 통과를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복수국적제도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관련제도가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것.

이밖에도 정부부처간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자칫 한국의 문호를 넓혀 국익을 증진시키겠다는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복수국적을 받은 동포가 원칙적으로 해외에서도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관계 부처에 문의한 결과 부처 간 혼선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긴밀한 논의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65세 이상이라 해도 거소증을 받은 동포는 기본적으로는 복수국적을 받을 수 없다’는 정부측 해석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거소증이 오히려 동포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역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재외국민보호법공청회에서는 “이중국적자는 재외국민보호대상이 아니다”라는 외교부의 방침이 발표돼 벌써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우수인력 유치에 있어서도 뚜렷한 기준이 마련돼지 않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국적·난민과 과장은 "65세 이상 동포들의 경우를 비롯해, 내년도에 제한적 복수국적제도가 시행되면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을 것으로 예상 된다”고 말하는 등 정부의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이 같은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많은 전문가들은 법률안 이상으로 정부가 복수국적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봉섭 전 재외동포재단 전문위원은 현 정부의 정책과 관련 “인도 정부도 영국, 미국, 캐나다 등 16개국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복수국적제도를 시행했지만 미국 금융, 과학자들을 수 천명을 유치할 수 있었다”면서 “우수인력 유치에 있어 재외동포 또는 외국인들의 특허기술, 투자금액 등 엄격한 기준을 정해 이들을 우리나라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입양인과 차세대 동포들 중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은 만큼 적극적으로 이들에 대한 제약을 풀어주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내년도 복수국적제도를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