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를 만나다> “야키니쿠가 일본음식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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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를 만나다> “야키니쿠가 일본음식이라니요?”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0.12.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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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식당네트워크 동경협의체 박건시 회장과 황세훈 사무국장을 만난 것은 코리아푸드엑스포가 한창 진행 중인 지난 20일 서울 코엑스에서였다.

박건시 회장.
북적대는 전시장을 빠져 나와 잠깐 걷는 동안 박 회장은 짧게 본인에 대해 소개했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크게 흠 잡을 데 없는 한국어실력을 갖고 있었다. 딸이 이화여대에 다녔었노라 재빠르게 덧붙인 자랑 아닌 자랑 역시 인상적이다. 한가한 자리를 찾아가 앉은 그에게 ‘일본음식’ 야키니쿠에 대해 물었다.

“야키니쿠는 엄연히 재일동포의 음식, 한국인의 음식”이라고 강조한 박 회장은 어떻게 그것이 일본음식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냐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운함보다 먼저 그의 표정에 드러난 것은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는 이내 야키니쿠가 일본 열도에서 밟아온 선 굵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해방을 전후로 먹을 게 없었어요. 먹을만한 고기는 모조리 군에서 가져가버리니까. 그래도 내장은 남았어요. 1952년 내장을 못먹게 했던 규제가 사라진 후 그걸(내장을) 가져다 구워먹었어요. 원래 야키니쿠는 다양한 고기 종류를 불에 구워 먹는 음식이에요.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닭고기, 돼지고기도 재료가 됐죠. 그렇게 조선사람들이 즐겨 먹는 걸 일본인들이 즐기게 돼면서 야키니쿠 식당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는 성이 안 찼다. 야키니쿠가 한국인의 음식이란 생각에 여전히 적지 않은 의심을 품은 채 한국어가 서툰 박 회장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일본인들도 그것이 한국인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을 한국인의 음식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있나? 우리 동포들이 야키니쿠 식당을 경영하고 있나? 모든 질문에 대해 박 회장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현재 야키니쿠 식당 경영자의 40% 정도가 재일동포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말문을 잃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손을 내저으며 “최근에는 경기가 나빠 많이 줄어든 숫자”라고 덧붙인다.

“야키니쿠 식당에 가면 전부 다 한국음식이예요. 찌개, 지짐이, 상추 등 한국어 이름을 그대로 따다 일본어로 표기한 메뉴들이 붙어 있죠.”

야키니쿠 정찬.

이를 설명한 것은 황세훈 사무국장. 메뉴와 메뉴구성에 대해 설명하던 박 회장은 “지짐이가 경상도 사투리”라는 황 사무국장의 부연설명에 깜짝 놀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박 회장에게는 굳이 이 같은 경계를 구분해내는 것이 무의미한 듯 보였다.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박 회장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40대 이상만 되도 야키니쿠는 한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걸 다 알아요. 야키니쿠 식당에 가는 것은 한국음식을 먹으러 가는 거다 생각하죠.” 도대체 그걸 새삼스럽게 다시 설명해야 하는 이유를 박 회장은 난감해 하는 듯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건너간 뉴커머 황 사무국장은 이 같은 정보의 단절 현상에 깊이 공감했다. “야키니쿠 식당에 가면 메뉴판에 상추, 냉면 같은 것들이 있어요. 우리가 갈비집에 가서 갈비를 먹는 코스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야키니쿠는 오히려 우리 식의 갈비 요리에 더 가까워요. 육수가 많은 불고기와는 많이 다르죠.”

불고기보다는 갈비 가까워

야키니쿠를 우리 식의 불고기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 두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박건시 회장은 “한국의 불고기는 7,80년대에 들어 음식이름으로 정착했지만, 야키니쿠는 해방 이후부터 재일동포들이 즐겨먹었던 것이고, 그 기원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우리 민족이 먹던 음식에 있다”고 강조했다.

야키니쿠를 한국 이름으로 직역하면 ‘불고기’지만 한국사람들이 즐겨먹고 있는 ‘불고기’와는 같지 않다는 것이 황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이쯤 되니 야키니쿠가 한국 음식이라는 증거를 대보라며 종용하는 기자의 입장이 우습게 됐다. 도대체 왜 우리는 야키니쿠가 한국인의 음식이라는 것을 아직도 몰랐던 것인지 그 과정이 궁금해진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는 일본에서 야키니쿠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50여명의 재일동포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반세기 가까이 야키니쿠식당을 운영한 그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경에 소재한 한 야키니쿠 식당의 전경.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문의했더니 ‘직접 통화’를 권하는 담당자에게 건네받은 전화번호가 황 사무국장의 번호였다. 최근 협의체 업무와 한식세계화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 때문에 한국에 자주 들르고 있는 황 사무국장과 박 회장은 바쁜 가운데에서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50년 동안 야키니쿠 업계의 터를 닦아온 재일동포 운영자들의 역사는 시간보다 더 짙고, 단단하다. “연기가 많이 나는 음식이다보니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어요. 재일동포나 노동자들이 먹는 음식이라고들 생각했죠.” 박 회장의 설명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중적인 인기가 없던 야키니쿠에 기회가 찾아왔다. “연기를 빨아들이는 기계가 보급됐어요. 옷에 연기가 배지 않으니 아가씨들도 식당에 스스럼없이 찾아왔죠. 즐겨 먹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야키니쿠가 보양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겨났어요. 일본 음식과는 달리 든든하고, 원기가 보충되는 느낌을 준다는 거죠.”

그렇게 야키니쿠는 일본 요식업계의 중심부로 들어섰다. 식당이 늘어나면서 야키니쿠의 가격도 2,000엔 부페식에서 2,3만엔대의 호화음식까지 다양한 품목이 생겨났다.

“작년 광우병 파동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안정된 편이죠.” 야키니쿠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박 회장은 야키니쿠와 관련한 잡지를 펴내던 이력을 바탕으로 현재 협회에서 한식당 종사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한식을 주제로 삼는 협회지 발간도 그의 주요한 업무다.

박 회장에 따르면 여전히 일본에서는 재일동포에 뿌리를 둔 야키니쿠 식당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직영점만 40개 점포에 전통 깊은 맛을 자랑하는 조조엔(서서원)을 비롯해 상장기업으로서 각각 수백개의 점포를 거느린 안락정이나 큐카쿠 역시 현재 재일동포가 운영하고 있거나, 재일동포에 기반을 둔 식당들이다.

그 중 맛으로 제일인 집을 꼽아달라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박 회장은 “그래도 맛은 조조엔”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기자는 최근 일본에 진출한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야키니쿠’를 꼽았다가 구설에 올랐던 사실을 끄집어냈다. 당시 이 멤버의 발언에 대해 국내 네티즌은 “불고기와 유사한 ‘야키니쿠’를 좋아한다고 하다니!”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회장과 황 사무국장의 설명대로라면 이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 야키니쿠는 한국의 ‘불고기’와 비교하기 어려운 전혀 다른 음식이며, 그 스스로는 한국 전통음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박 회장은 “빠가(바보같은 소리)”라고 응수할 뿐이었다.

재일동포 애환의 역사 녹아 있어

기자는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그렇다면 왜 야키니쿠는 야키니쿠 식당에서 판매되는 다른 음식들과 달리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게 된 것인가”를 물었다.

박 회장은 그 같은 사실에 재일동포 역사의 애환이 녹아 있다고 설명한다. “그때는 친북적인 성향을 가진 재일동포가 더 많았어요. 그래서 야키니쿠라 하면 북한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먹는 인식이 자리잡을 조짐을 보였죠. 야키니쿠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그런 이미지를 경계한 민단계 동포들이 ‘야키니쿠’라는 명칭을 붙인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야키니쿠’라는 명칭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전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갖고 있든 간에 재일동포의 역사에서 남북의 분단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남는다.

여전히 업계 1,2,3위를 다투는 야키니쿠의 명가는 재일동포가 경영하거나, 경영했던 것을 주식회사 형태로 바꾼 것이라며 박 회장과 황 사무국장은 본지가 나서 야키니쿠에 대한 인식을 바꿔 달라고 당부를 거듭했다.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은 언론의 임무, 자신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일본에서 더 열심히 사는 데 있다는 그들의 뒷모습에 기자의 어깨도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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