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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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려면
  • 뉴욕 중앙일보
  • 승인 2004.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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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봐요. 해묵은 한국음식이 더 먹고 싶어지고 한국에서 맡던 땅내음이 더 간절해 지지요. 그러나 내가 죽은 후 내 시신만큼은 미국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내 자식들이 모두 다 이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으니 죽어서 자식들 성묘나 받으려면 당연히 이 땅에 묻혀야지요.”

한인 김경희(플러싱·82) 할머니는 윗대 선조들은 모두 한국 땅에 묻혀 있지만 자신만은 자식들이 있는 곳에 묻혀야 겠다며 롱아일랜드 워싱턴 메모리얼 공원묘지에 가족묘지 자리를 구입해놨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모(89)노인은 최근 무궁화상조회를 통해 묘지를 구입했다. 그는 “자식들과 떨어져 있지만 뉴욕에서 오래살다보니 이 곳이 고향 같다”며 “이 곳에 묻힐 요량으로 타주에 있는 자식들과 상관없이 묘자리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어떤 한인 가정은 아예 한국에 있는 조상의 묘를 미국에 이장하기도 했다.

이민연륜이 깊어지고 뉴욕에 있는 한인 이민사회가 ‘스몰 코리아’로 자리를 잡으면서 미국 공원 묘지에 가족묘지 자리를 구입, 선산으로 삼으려는 한인 가정들이 늘고 있다.

과거엔 미국이 내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죽으면 조국의 땅에 묻히겠다는 한인들이 많았으나 당당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살다 가겠다는 생각을 가진 한인 노인들이 자식들이 살고 있는 미국을 제 2의 한국으로 여기며 오랫동안 살았던 이 땅에 묻히겠다는 인식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인들이 가장 많이 묻혀있는 곳은 롱아일랜드 워싱턴 메모리얼 공원 묘지. 7천여개의 묘가 있는 이 곳에는 한인들만이 묻힐 수 있는 ‘무궁화 동산’도 있다. 이 동산에는 3천여개에 달하는 묘지가 있으며 7백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분양이 끝난 상태다.

무궁화동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무궁화상조회 김홍근 회장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한국에 연고가 없는 한 한인이 맨해튼에서 숨졌을때 워싱턴 메모리얼 공원 묘지 대표 레온 시퍼씨가 묘 한 자리를 무료로 내줘 장례식을 무사히 치를수 있었으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묘지를 분양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미국에 와서 선산을 장만할 처지는 못되지만 최소한 부모, 형제를 위한 가족묘지를 손수 조성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가족 묘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 한인 1.5·2세뿐만 아니라 3·4·5세대들에 주인의식 및 뿌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선산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플러싱 효신장로교회에서 실시하는 가족묘지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배종국씨는 “미국에 딱히 선산이란 개념이 없다보니 점차 가족묘지를 조상의 선산으로 삼으려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미국 공원 묘지에 부모·형제 등 가족들이 묻힐 묘자리를 구입하려는 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은숙 기자

〈nyresk@joongangusa.com〉

입력시간 :2004. 01. 08   18: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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