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증거를 네티즌의 힘으로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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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증거를 네티즌의 힘으로 지키자
  • 오재범 기자
  • 승인 2010.11.16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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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동포연대, 단바 망간기념관 재개관 청원 개시

 


지구촌동포연대(KIN)이 일제시대 징용된 재일동포들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일본 교토 ‘단바 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KIN은 지난 11일 Daum 아고라에 '일본 <단바 망간기념관> 재개관에 힘을 모아주세요!'라는 모금청원을 시작했다. 지난 15일까지 약 200여명의 네티즌이 서명한 상태로 한달 내 500명이 서명하면 모금이 검토되고 모금이 진행될 수 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99985

단바 망간기념관은 교토 북동쪽 50km 정도 떨어진 산골에 자리잡은 곳으로 과거 망간을 채굴하던 광산을 한 개인이 기념관으로 만든 곳이다.

그 사람이 바로 그곳에서 평생 광부로 일하던 재일동포 '이정호'씨다. 일제 식민지 시대 당시 이곳으로 끌려와 평생 망간을 캤던 그는 평생 이곳에서 일을 하다가 진폐증에 걸렸다.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사재를 털어 지난 1989년 그 시골땅 한구석에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발하는 살아 있는 작지만 의미있는 기념관을 만든 것이다.

그는 남은 일생을 이 곳 운영에 힘썼고, 그의 아들 이용호씨가 이어받아 운영한 덕분에 지난 20여년 동안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일본사회가 우경화되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기념관이 만성적자에 빠졌고, 매년 발생하는 500만엔의 적자를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지난해 5월 폐관되고 말았다.

이같은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자 이 박물관을 재개관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400만엔 정도가 모였고, 앞으로 재개관을 위한 보수작업에 1,000만엔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오는 27일 윤도현 밴드가 일본 교토에서 자선공연을 펼치고, 한국에서 모금운동을 할 예정이다.

한편,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에는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강창일 민주당 의원,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김창곤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반재철흥사단 이사장,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정승천 해외동포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대표, 김종철 지구촌동포연대 대표 등이 참여한다.


Daum 아고라에 나온 원문을 아래에 게재합니다.


한 손을 내어 다시 세워주세요.
일본 교토 <단바 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해 힘을 주세요.

넘어진 역사, 다시 세우려 합니다.
잠시 손을 거들어 주세요.
일으켜 세운 뒤 바라보세요.
깃발이 다시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단바망간기념관'의 깃발입니다.

단바는 일본 교토에서 북동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산골의 한 지명으로, 일본의 3대 ‘망간’ 산지의 하나였습니다. 망간은 철을 강하게 만드는 합금광석으로서 총이나 대포, 군함 등을 만드는 필수적인 ‘군수 물자’입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수요가 급증했고, 당연히 식민지인이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강제로 끌려가 망간을 캐야만 했습니다.

‘이정호’ 씨 역시 단바로 끌려와 평생 망간을 캤습니다. 좁고 어두운 굴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배고픔과 노예에 가까운 차별을 견디며…. 이후 전쟁이 끝났지만 그들의 아픈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일본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1980년대, 오히려 수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에 망간 광산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더니 급기야 모두 폐광되고, 50대에 접어든 이정호 씨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합니다. 실직도 실직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진폐증’이라는, 강제로 끌려와 일을 해야만 했던 것도 억울한데 그것으로 인한 병까지 들고 만 것입니다. 동료들도 하나둘씩 스러져 갔고, 그 역시 죽음의 날만을 바라고고 있는 상태였니다.

“이건 안 돼!” 마음 속 생각은 점점 울렁거림으로, 집념으로 굳어갔습니다. “남겨야 된다. 여기에 박물관을 만들자. 그래 비참한 삶을 살다 간 저 힘없는 동료들(조선인)의 혼을 달래고 그 역사를 후세에 남기자.”

그는 병상에 누운 몸을 일으켜 사재를 떨었습니다. ‘역사적 망각’에 대한 저항…. 망각을 요구하는 ‘전후 일본’을 향해 비록 외롭고 고단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힘차게 깃발을 들었습니다. 강제 징용이라는 거대한 폭력으로 인한 아픔과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본…. 그 시골 땅 한 구석에 작지만 의미 있는 기념관을 만든 것입니다.

박물관은 그저 역사관 하나 짓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일했던 광산을, 폐광으로 변한 광산을 사들여 무너진 갱도를 다시 파고 축대를 올려 관람객들이 직접 노동 현장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교포 2세인 이용식 현 관장의 강의 등도 접목하여 전쟁 기의 역사, 특히 재일조선인들의 한 어린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념관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소박하지만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발하는 살아있는 현장박물관으로, 일본 내 강제 연행을 증언하는 유일한 박물관으로, 1989년 5월 <단바 망간기념관>의 깃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이정호 씨는 결국 진폐증으로 타계하고, 그의 아들 이용식 씨가 “기념관이 바로 내 무덤이자, 또 죽어 간 조선인들의 무덤”이라는 선친의 뜻을 새기며 20년 동안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온몸을 바쳐 유지해 왔습니다.

“아버지는 장례식은 치르지 말라고 하셨어요. 박물관에 돈 들어갈 곳도 많으니, 오히려 박물관을 살려라, 그것이 곧 당신을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하시면서요.”

초창기에는 년 2만 명(주로 일본 학생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배우고 갔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화는 흐름과 함께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기념관은 만성 적자에 빠지게 됩니다. 년 500만 엔(년 유지비 1천8백만 엔)의 적자를 한 개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개관 20년이 된 작년 5월, 결국 고뇌 끝에 폐관을 결정하고 맙니다.

폐관 소식은 반대로 단바 망간기념관이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기념관이 한 개인에게 맡겨져 있었다니…. 발견과 동시에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폐관으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6월, 재일동포와 일본시민들이 모여 재건위원회를 구성하고 재건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동참해야 하기에 지금 한국 측 재건추진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년 2011년 3월, 단바 망간기념관을 다시 열 예정입니다. 위험한 갱도 보수 등 재개관을 위한 긴급 설비자금으로 1천만 엔 정도가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400만 엔 정도가 모였고, 11월 27일(토) 윤도현 밴드의 교토 자선공연, 그리고 한국 시민들의 모금으로 이를 충당할 계획입니다. 여러분의 의미있고 뜻 깊은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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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공동대표단

남경필(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강창일(민주당 의원)
박선영(자유선진당 의원)
김창곤(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반재철(흥사단 이사장)
이용선(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정승천(해외동포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대표)
김종철(지구촌동포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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