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풍류를 아는 ‘한국바둑’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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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풍류를 아는 ‘한국바둑’ 무엇인가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0.11.1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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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위해 한글, 영어, 한문 3개 국어 구성

낙엽 쓸어가는 바람에 문풍지가 운다
머리 하얀 노승은 소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이제는 영정이 나를 반겨
뜰에는 달빛이 어지러이 비치고
석탑 위에는 바둑돌 놓는 소리                   (남효온의 시 중에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바둑에 대한 인식이 점차 새롭게 바뀌고 있는 이 때, 옛 우리선조들의 바둑을 통한 여유를 발견할 수 있는 시집이 나와 눈길을 끈다.

도서출판 현자의 돌은 지난 5일 <한국 고전 바둑시>(Korean Classical Baduk Poems)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는 수천편의 바둑 고전 시 중 50편이 엄선돼 있으며, 총 128쪽으로 구성됐다.

작품에는 고려시대 문신 이규보, 조선전기 은둔학자 김시습·서거정, 여류시인 허초희, 조선말 풍자시인 김삿갓, 임재왜란 의병대장 곽재우 등 30여 고려·조선 시대 인물들의 시가 담겨있다.

한문 원문과 한글 그리고 영문 세 가지 언어를 동원한 것이 특징이다. 세계인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바둑시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김상덕씨가 한시를 우리말로 옮겼고, 곽종민씨가 영문으로 번역하는 등 두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책이 완성됐다.

책에 나온 고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옛 선비들과 문인들은 바둑을 하나의 풍류와 여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 김상덕 씨는 “왕부터 관리, 선비 심지어 기생이 허물없이 함께 하는 게 바둑이었다”고 말한다. 풍류의 도구로 쓰였으니 당연히 바둑 관련 시문이 수 천편이 넘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둑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각박하게 바뀌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바둑을 예도(禮度)의 한 분야로 생각하고 있지만, 중국은 바둑을 완전히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은 예도에서 스포츠로 바뀌고 있는 중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과 같이 승부가 더욱 중요시되고 있고, 팀 리그제 등을 통해 흥미요소를 강조한다.

이 책은 옛 선조들의 풍류문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스포츠·경쟁으로 부각되는 지금의 바둑문화와 대비 시킨다. 그럼으로써 바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국기원 사이버오로(www.cyberoro.com)에서 칼럼을 쓰고 있는 김상덕 씨는 “이 책을 통해 옛 사람들이 바둑을 대하던 정취와 감흥을 현대인들이 함께 나누고 더 나아가 세계인도 함께 공감할 수 있으면 한다”고 밝혔다.

곽종민 씨는 “한국에는 수천 편의 바둑 한시가 존재하지만, 세계에 알려지지 못했다. 이 책이 전 세계에 바둑 인구를 늘리고 바둑문화를 창달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늦가을이다.

조선전기 문신 남효은은 적막한 산속에서 “낙엽 쓸어가는 바람에 문풍지가 운다”고 표현한다. 그는 바람소리마저 여운 깊은 바둑돌 놓는 소리와 함께 운치 있게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듣는 바둑소리는 상대가 필요 없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일 것이다.

김삿갓은 책에서 “떵떵 바둑돌 놓는 소리는 석양빛에 스며있다”고 말했다.  낙엽이 짙게 물드는 오후, 바둑돌 놓는 소리가 내 귓가에도 들리는 듯하다.

다음은 이 책에 소개된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의 시이다.

擧手下子遲(거수하자지)
賭此山中閑(도차산중한)
爛柯者誰子(난가자수자)
歲月非人間(세월비인간)

손을 들고 어찌 돌 놓기를 주저하는가
산중 한가한 정취를 내기로 걸었던가
도끼자루 썩힌 이는 누구인던가
세월 탓이지, 사람 탓이 아니라네

Why not place the stone with your hand up?
Have you bet on a leisurely mood in the mountains?
Who is he who made an axe helve rot?
It's time's doing, not 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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