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팍스 아메리카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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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팍스 아메리카니즘
  • 조은섭
  • 승인 2004.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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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국의 유물보다는 이집트와 그리스, 아시아와 아프리카대륙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예술품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그 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명품감상에 얼이 빠진다. 그러나 감상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과거 두 나라가 누린 힘의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피 묻은 전리품들의 숨결을 달래는 것일 게다. 전쟁과 침략에 희생된 영혼들이 그 안에 깃들어 있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럴 진데, 여전히 전리품 수집을 위한 전쟁은  저, 이라크 땅에서 계속 되고 있고, 거기에 대해 파병의 목소리마저 드높다.

        팍스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마치 광견처럼 이라크 침략을 합법화하기 위해 몸부림쳐 왔다. 아프가니스탄을 며칠 만에 초토화 시키고도 모자라 국제사회의 미아, 이라크마저 침략한 것은, 2차대전 이후 줄곧 세계를 호령해 온 팍스 아메리카의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 최고 석유 산유국 중 하나를 '접수' 하려는 움직임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빈 라덴의 고국이란 것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할 텐데, 고맙게도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을 강행해 1980부터 무려 9년 동안 100만 이상의 희생자를 냈고, 1991년에는 주변국을 집어삼키겠다는 야욕으로 걸프전을 일으켜 또다시 10만 명 이상의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빼앗은 전범, 후세인의 나라이기까지 했다.

        그 대의명분에 혹했건 아니건 간에 노무현정부는 서희와 제마부대를 파병해 주었다.  프랑스 68혁명의 주역이자 '국경 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베르나르 쿠쉬네르를 비롯한 많은 프랑스 사회당인사들로 같은 맥락에서 이라크파병을 정부에 요구하며 대통령 작크 시락을 강하게 압박했다고 하니, 노무현만을 탓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의 파병역사의 골은 깊다. 일찍이 원의 속국이었던 고려는 일본정벌을 위해 원이 파병을 요청하자, 전함 900척, 군사 8천명, 뱃사공 6700여명 파병했었다. 이런 사례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광해군 집정 때, 명나라와 청나라가 전쟁을 벌이자  강홍립이 1만의 군사를 이끌고 명나라를 도우러 갔던 것이다. 당시 조정 신료들은 임진란 때 명의 도움을 받았으니 어려움에 처한 명을 도와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존명사대론(尊明事大論)을 이유로 파병을 찬성했다 한다. 20세기에도 파병은 이어졌다. 일제치하에서는 강제 징집된 학도의용군과 강제 동원된 위안부가 있었는가하면, 베트남전 때는 존슨대통령의 파병요청으로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오랜 기간 베트남파병에 열을 올렸다. 백마, 맹호, 청룡부대를 주축으로 한 무려 30만 여명을 파병,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벌이를 했으니 전 국민이 가난과 기근으로 시달리던 당시로서는 정부가 파병을 국가 최고의 국책사업이라 떠들어댈 만도 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춰보면 당시 벌어들인 금액으로는 결코 보상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할 수 있다.  전사자 5천여 명에  부상자 1만 5천여 명. 아직도 5만 여명의 고엽제환자와 가족들은  베트남 파병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실패한 역사의 전례가 있고 이미 한 차례 파병을 했음에도, 정부는 다시 3000여 명을 추가 파병하겠다고 결정했다. 외교관들이 무참히 살해되고, 민간인이 투숙한 호텔이 폭격 당하고, 노동자가 처참하게 살해되어, 전투병을 파병할 것이냐 치안유지군이나 재건요원을 파병할 것이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마당에 파병의 의지는 굳건하다. 궁핍을 벗어나기 위한 생계형 베트남 파병도 아니고, 일제치하에서처럼 총칼의 위협 앞에 의지와 무관하게 끌려가야 했던 학도의용병도 아닐 진데 한국군이 정녕 미국의 시녀가 아니라면 왜 또 추가로 파병해야하는가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 묵인할 수가  없다. 임진란 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광해군이 명나라에 파병했던 것처럼, 6.25를 계기로 혈맹 국을 자처하는 미국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1차 파병만으로도 그 대가를 충분히 치른 게 아닐까.
  
        그 '국익론'이란 것도 그렇다. '국익론'의 명분으로 파병 반대 운동을 묵살한 것에 맞춰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던 프랑스, 독일 등의 기업들에 대해 이라크 재건 사업 수주 금지 방침을 발표했다. 파병을 찬성하는 한국과 일본 내 보수단체들이 쾌재를 부를 발표였지만, 실은 미국과 파병 국들의 유치한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 이라크가 부시의 마음대로 자지우지 할 수 있는 땅이던가. 게다가 '국익'이란 게 진정 정부의 주장처럼 이라크 재건 사업 수주와 석유개발권을 둘러싼 경제적 이익 챙기기에 국한 된 것이라면 남의 불행을 팔고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그 파이조각을 챙길 이유 또한 없다. 후세인 잔당제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간파하고 요청한 얄팍한 파병 요구에 왜  장단을 맞춰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24년 간 철권통치를 한 이라크 침공의 훌륭한 명분, 후세인도 생포된 마당에 무슨 명분으로 추가파병을 요구하고 응수한단 말인가. 인권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추구를 존중한다면 추가파병은 앞으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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