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시신 가족에 보낼 때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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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시신 가족에 보낼 때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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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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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조호진(mindle21) 기자    





▲ 죽음의 행렬을 방치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김해성 목사.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지난 20일 재중동포 강태걸(46. 중국 요녕성 심양시)씨가 지하철로에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지갑에서 김해성 목사(43. 외국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대표)의 명함이 나왔고 경찰은 김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했다.

김 목사는 비참한 죽음을 수습하기 위해 경찰과 영안실을 밤새 오갔다. 강씨의 친척에게 연락하고 자살의 원인을 찾기 밤을 꼬박 새운 그는 정부의 강제추방 정책에 의한 죽음을 고발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재중동포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한숨도 자지 못한채 국회로 달려갔다.

그는 때로 수사관이 되고 장의사가 되기도 한다. 재중동포 고 김원섭씨의 구조요청을 외면해 동사케 한 경찰과 소방서의 직무유기를 밝혀낸 것도 그다. 경찰,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노동부 관계자에게 그는 '과격한 목사'로 불린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체불과 산재문제가 벌어지면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기업주와 싸워서라도 치료비와 보상문제를 해결한다.

김 목사의 애초 꿈은 부흥강사였다. 하지만 형인 김거성 목사(반부패국민연대 사무총장)가 긴급조치로 구속되고 외삼촌이 군부에 의해 구속되면서 초중학생 때부터 서대문구치소로 면회를 다녔다. 80년 광주항쟁 당시에는 대학 친구인 유동운(한신대 신학과 동기)씨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사살됐다. 당시 경찰에 쫓겨 친구집에서 숨어 지낸 그는 비겁함과 자책감에 짓눌렸다.

그는 목사를 때려치우려했다고 말했다. 기독교지도자들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를 열면서 학살자를 국가 지도자로 세워주는 것을 보고 신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 그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성남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목사를 만나 교회의 사명과 신학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그는 주민교회 전도사로 빈민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92년부터 외국인노동자와 재중동포를 위한 노동상담을 시작한 그는 지난 96년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운동 과정에서 구속되기도 했다. 인종차별의 상징인 크레파스와 물감의 '살색 없애기 캠페인'을 벌여 끝내 성공한 김 목사. 그는 재중동포 및 이주노동자의 강제추방 철회를 요구하며 기독교연합회관에서 43일째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다음은 24일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서울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진행된 김해성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이주노동자 문제에 적극 나서야"

  

▲ 국회 사무처에서 가진 재외동포법 개정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는 김 목사.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 이주노동자 문제가 풀기 힘든 현안으로 등장했는데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부가 현실을 도외시한 채 탁상공론과 행정편의주의로 정책과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패한 이주노동자 정책과 강제추방 정책이 이주노동자와 중소기업을 동시에 죽이고 있다."

-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보는가.
"불법체류자 전원을 합법화하든지, 아니면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는 내년 8월까지 출국을 유예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합법화 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허가제로 재입국을 보장해 준다면 4년 이상 된 사람들도 자진 출국할 것이며 따라서 불법체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숙련공인 이들을 합법화시키면 고용허가제 정착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서경석 목사가 주도한 국적회복운동에 따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가.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국적포기운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서 목사께서는 독단적으로 강행했다. 결국 서 목사께서는 이 운동에 의해 재중동포들의 거센 항의와 언론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기보다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비용(10만원)을 내고 단식농성에 참가했던 동포들이 서 목사의 약속과 달리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자진출국을 요구당하자 극심한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문제가 더 악화될 것 같아 걱정된다."

- 국적포기 문제로 한국과 중국관계가 불편하다. 중국정부가 양국의 우호친선과 재중동포의 인권보호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서울조선족교회가 주도한 국적회복운동(일명 국적포기운동)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국적회복을 신청한 5700여명의 재중동포 가운데 대다수가 강제추방을 모면하기 위해 동참했을 뿐 국적포기 의사는 전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농성장을 찾은 것은 동포에 대한 인도적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며, 한국국적 취득을 인정하거나 지원하겠다는 의사는 없었다. 특정인의 주도에 의해 진행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양국관계가 악화되거나 조선족에게 불이익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옳은 해결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연말까지의 자진출국 시한이 지나면 정부의 집중단속과 이주노동자들의 극한적 행동이 뒤따를 것으로 우려되는데 어떤가.
"10만 여명의 강제추방 대상자들이 잠적하거나 피신해 있는데 앞으로 한 두 달이 더 지나면 많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흘 굶어 남의 집 담 넘지 않을 수 없다는 옛말처럼 극한 상태에 처하면 범죄행위 등 사회적 사건이 심각하게 벌어질 수 있다. 더 극심한 좌절감에 시달린 이주노동자들은 전동차에 뛰어들거나 목을 매 죽는 등 죽음의 행렬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된다."

-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가리봉과 안산지역에 거주하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창문에 담요를 치고 불도 켜지 못한 채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며 숨죽이고 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집단적 정신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이나 단속반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며 책상 속에 숨거나 숨이 막혀 미칠 것 같다며 집을 뛰쳐나가는 등 정부가 만든 창살 없는 감옥에서 병들어가고 있다."



▲ 이주노동자 다라카씨의 죽음을 수습 중인 김해성 목사.  

ⓒ2003 외국인노동자의집

- 이주노동자들이 합동단속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어느 정도인가.
"단속반들을 어떻게 훈련시켰는지 모르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이주노동자들을 덮친 뒤 한 명은 뒷덜미를 잡고 다른 사람은 발을 걷어차 넘어뜨리는 위험한 단속방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언론이 감시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얼마나 심각하게 유린되는지 짐작이 간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 사례와 실태에 대해 국가인권위와 시민단체들이 시급히 조사해서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인권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한국 국민들을 상대로 한 인권문제는 상당히 개선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문제는 논할 수준이 못 된다. 머지 않아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적인 인권단체들의 항의와 감시를 받게될 것이고 결국 국가적 망신과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 인권단체 및 시민단체들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적극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나.
"정치권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인식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은 특히 재중동포들이 참정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가치를 못 느끼고 있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벌써 열 명이나 죽었고 앞으로 더 죽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종교계와 시민단체가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죄악이자 극단적 이기주의에 편승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죽음의 행렬만큼은 막아야 한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운동에 적극 나설 것을 호소한다."

"외국인노동자 시신 수습하며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대표로 있는 외국노동자의집과 중국동포의집에서 지난 92년 이후 수습한 시신이 무려 1000여 구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이들의 주검을 거두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지난 92년부터 2003년까지 10여 년 동안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이들은 병원비를 내지 못해 몇개월 동안 영안실에 잡혀 있다가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부패되어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구차량 비용을 아끼기 위해 트럭으로 4∼5개의 관을 짐칸에 싣고가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은 커녕 쓰레기만도 못한 비참한 죽음들이었다. 숯덩어리로 변한 시신, 목이 잘린 시신 등 참혹한 시신을 가족들에게 보낼 때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 병원비가 없어 교회로 데리고 와 임종을 맞게 할 때는 무력감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 특히 코란 율법에 화장을 금지하는 이슬람권 사망 노동자를 송환하기 위해 예배실이나 사무실에서 부검한 시신을 방부 처리해야 했다."

  

▲ 이주노동자의 잘린 손을 들어보이는 김해성 목사.  

ⓒ2003 외국인노동자의집
-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어떤 경우였는가.
"몽골사람 바트센드라는 사람은 돈이 없어 고통을 참다가 혼수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급성맹장이 복막염으로 번졌고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스물 여섯 된 중국동포 배충용이라는 청년은 입국 3개월만에 감기에 걸렸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폐렴으로 숨졌다. 하지만 치료비와 영안실 비용 2300만원이 없어 6개월 동안 방치돼 있다가 병원의 협조로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배군의 부모가 죽은 아들을 안고 울부짖는데 너무 처절했다. 중국동포 김인성이라는 사람은 회사 복도 벽에 "사장 김×× 천벌 받는다, 내 영혼이 영원히 너를 괴롭히겠다, 한국이 슬프다"라고 스프레이로 쓴 뒤 분신자살을 했다. 김씨의 유서처럼 너무나 슬픈 조국의 현실이다."

- 최근 동사한 김원섭씨와 전동차에 뛰어들어 숨진 강태걸씨의 주검을 직접 수습한 것으로 아는데….
"중국동포 한 사람이 동사했다는 연락을 받고 동대문경찰서로 달려갔었다. 경찰 관계자는 여권은 있지만 가족연락처 등 인적사항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체의 소지품이 있느냐고 묻자 노란 봉투를 건네줘 책상에 쏟았더니 휴대폰이 나왔다. 전원을 켜고 통화내역을 확인하는데 놀랍게도 112 열 세 번, 119 한번 구조 요청한 사실이 나타났다.

그 순간에 중국에 있는 김원섭씨의 어린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끝내 아버지가 동사한 사실을 말해줄 수밖에 없는 잔인한 사람이 됐다. 경찰이 구조 요청한 통화내역을 감춰달라고 부탁했지만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 공개했다.

강태걸씨의 경우도 시신을 직접 뒤져서 잠바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찾아내 친척과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과연 한국 사람이라면 그렇게 죽음을 방치했을 것인지 묻고 싶다."

- 이주노동자를 위한 인권운동에 따른 재정적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재정문제는 두번째 문제이고 가장 시급한 것은 인적자원이다. 상담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임금체불이나 폭행 당한 사건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 십 번을 쫓아다녀야 한다.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하루에 백여건 정도의 상담이 쇄도하는데, 밤을 새워 일을 해도 인원이 부족해 다 해결하지 못한다. (이때 곁에 있던 중국동포의집소장 이선희 목사가 '목사님 하는 일이 돈 꾸러 다니는 일이며 쌓인 빚이 2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 추진중인 사업 가운데 가장 역점을 쏟는 사업은?
"이주노동자와 재중동포를 위한 전용병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장례를 치르면서 사후약방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병원설립을 추진했다. 원장은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지낸 신상진 선생이 맡기로 했고, 미국에서 일부 의료기와 약품을 지원 받기로 했다. 병원은 가리봉에 있는 중국동포의집 옆 건물을 매입할 계획인데 임대비용이 부족해 늦어지고 있다. 아마도 이주노동자를 위한 세계 최초의 병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만들고 몇 년 뒤 완벽한 실패라는 것을 깨달았다. 방글라데시 사람이 산업재해로 손목이 절단돼 어렵게 3000만원을 받아내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그 돈으로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젊은 여자를 부인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와준 또 다른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악덕기업주가 돼 살고 있다는 소식, 술과 마약에 폐인이 되었다는 소식, 돈 까먹고 떨어져서 한국에 초청해달라는 연락을 받으면서 좌절했다.

의식을 바꿔 새 삶을 살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안산·광주·양주 등 이주노동자의 집에 교회를 만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목회자가 돼 약자를 돕고 싶어했지만 불법체류자라 신학대학 입학이 안돼 좌절했다. 이를 보다가 이주노동자를 위한 신학대학을 설립했다. 돈은 일체 받지 않고 있다. 이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빛과 소금의 사명의 역할을 하면 정말 좋겠다."  

2003/12/25 오후 9:15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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