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정의신 작, 조선인 전범에 관한 연극 ‘적도아래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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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정의신 작, 조선인 전범에 관한 연극 ‘적도아래의 맥베스’
  • 서지영 연극평론가
  • 승인 2010.10.2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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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서울연극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13개국 48개 작품이 참가했는데 행사의 주제는 ‘사랑’이다. 연극올림픽은 1995년 연극의 본원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어 이번이 제 5회째이며 각 나라를 대표하는 14인으로 구성된 연극올림픽 국제 위원회가 주최하는 범국제적인 행사이다.

이번 참가작 중에는 ‘역사의 증언’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연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록으로서 연극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갖게 만든 작품이 있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제일교포 2,5세 정의신의 작품 ‘적도아래의 맥베스’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인 B·C급 전범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으로, 극단 미추의 손진책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B·C급 전범이란 A급처럼 중대 전범은 아니지만 포로 학대를 하는 등 전쟁에 가담하여 비인도적 행위를 한 전범”들을 말한다. 정의신은 두 차례나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된 재일교포 이학래(84)옹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은 연합군 포로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의 젊은이 3,000명을 군속으로 모집해 갔다. 그들은 월 50원의 봉급에 2년만 참으면 일본인 대우를 해주겠다는 약속에 넘어가 동남아행에 올랐다.

당시 일본군은 동남아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철도공사에 연합군 포로들을 동원했는데 이 때 한국 군속들은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포로들을 감시했는데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는 등 가혹행위도 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되자, 한국 군속들은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으로 처리됐고, B급 전범들은 대부분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 연극은 거기서 살아남은 김춘길(실제인물 이학래 옹)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는 전범으로 몰린 사람들과 함께 사형집행을 기다렸던 당시의 처참한 심정을 회상했다.

전범으로 체포된 한국 군속들, 그들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처럼 마녀의 부추김으로 죄를 지어야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파국이 결국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여지도 두었다.

주인공 김춘길은 “자신은 연합군을 손바닥으로 몇 대 때렸을 뿐”이라고 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울부짖으며 사실은 주먹으로 때렸다고, 주먹으로 마구 갈겼다고 증언한다. 과연 그가 속죄해야 할 문제인가. 그의 속죄는 자책이었다.

재일교포의 정체성문제,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 등을 작품을 통해 고민해 왔던 정의신에게B·C급 전범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가 다루어 온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교포 2세의 운명처럼 전범들 역시 한국에선 친일파 취급을 당하고 일본에선 그저 외국인일 뿐이었다.

조선인 B·C급 전범들이 모여 만든 동진회(同進會)라는 모임이 있다. 지난 10일 회원들은 이 연극을 단체관람한 뒤 처절한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전쟁의 끝엔 결국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전범국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전범국의 개개인은 모두 가해자일까. 나치친위대원이었던 소년들, 강제징집된 군인들, 그들은 모두 전범재판을 받아 죄의 무게에 따라 처벌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해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들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전쟁에는 가해자라고 낙인찍힌 피해집단이 있다. 명령대로 했을 뿐인데, 내가 죽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분명히 그들을 죽였을 텐데.

그러나 일본이 전범국가가 되었는데 일본인도 아니면서 전범 취급을 받아야 했던 한국군인의 실상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정의신의 작품은 신세대의 쿨한 정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작품의 결말을 관객에게 맡기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루하리만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어느 정도의 결론에 도달하면 작가는 빠져버리는 것이 현대극의 특징이지만 정의신은 관객을 믿지 못한다.

이 연극을 연출한 손진책씨는 ‘연극성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증언 쪽에 더 무게를 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연극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대본의 진지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너무나 고지식한 서술이었다.

작가의 메시지를 주지시킬만한 극적장치가 좀 더 필요했다. 연극이 연극의 기능을 통해 작품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냥 책으로 읽는 것이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를 주지시킬만한 극적장치가 좀 더 있어야 했다.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의 무대는 이야기의 단조로운 서술이었기 때문에 연극적 표현은 없었다. 연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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