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옥타 김재현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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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옥타 김재현 상임집행위원
  • 오재범 기자
  • 승인 2010.10.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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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삶의 신조가 ‘가정에 잘하자’.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라는 2가지입니다.”

악세사리 무역을 오랫동안 해왔던 김재현 상임집행위원은 미국에 건너가기 전 한국에서 ‘신문사’에 다니던 기자였다. 10대에 가졌던 전문직의 꿈을 실현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농지개혁이 일어나 집안이 가진 토지를 뺏기는 일이 생겼습니다. 결국 중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일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전북 남원에서 소작을 줄 정도로 여유 있던 집안이 광복과 6.25를 맞아 어려워지자 서울로 올라와 주경야독을 하며 광운전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전기과로 진학했다.

이후 그는 대학 3학년 때 매일경제신문사 공채 1기로 입사해 언론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체신부 등 여러 기관에 출입하며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10월 유신과 사회적 분위기가 그를 놓아두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수출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대 무역학과를 다니면서, 당시 어렵다는 무역사 자격증을 1974년 받고 사업가의 길로 나섰습니다.”

당시 그는 자본이 없었지만 손으로 만든 제품이 해외시장에 경쟁력 있다고 보고 자수정 등 보석을 수출하려 했지만 다른 단체가 이미 하고 있어 악세사리로 품목을 바꾸게 됐다고.

결국 1976년 서울에 ‘STAF양행’이라는 개인 회사를 차려 수출을 시작했고 순탄하게 성장하며 회사가 자리를 잡자 83년에 최초로 미국 텍사스 라레도(로레이도) 지사를 처음 만들었다. 가트(GATT) 상황에서 중남미 지역 수출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당시 파견한 한국직원이 문제를 일으켜 지사가 불안해지자 본인이 직접 건너가 일을 하면서 동포기업인의 삶이 시작됐다. 이후 1995년 1월 WTO가 체결돼 무역시스템이 바뀌자, 미국 내에서 중남미 지역 사업이 어려워져 멕시코시티 1984년에 이주해 직접 무역을 하면서 현지기업을 운영했다.

“멕시코에서 옥타지회를 만들었고 한인회장도 역임했습니다. 아이들도 잘 키워서 독립시켰고요. 저는 항상 애국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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