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전향적인 재외국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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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전향적인 재외국민정책
  • 문화일보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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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던 중국 조선족 유학생이 7년여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갔다. 만주 창춘(長春)이 고향인 그는 일제시대에 조부가 중국으로 건너간, 말하자면 교포 3세다. 한국에 오기 전에 창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대학에서 중국 동포 장학생 초청 계획에 의해 모국인 한국에 들어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고 무사히 자기 고향인 창춘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에 e메일로 연락이 왔는데, 창춘에 있는 지린(吉林)대학의 조선어학과 교수로 임명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더욱이 필자와는 백두산을 비롯한 동북 만주 지역과 실크로드 지역 등 중국 여행을 두 번씩이나 같이 다녀오고 하여 그의 소식은 반갑기만 했다. 실제로 그는 상당히 좋은 케이스의 재중국 조선족이요 재외국민이다.
최근에 불법 취업으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재중국 조선족 불법 입국 취업자들에게도 기한을 정해 놓고 강제 출국시킨 사태를 언론 보도를 통해 보며, 마음 한 구석이 적잖이 답답함을 느낀다. 불법 입국한 외국 노동자들의 강제 추방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가 된다. 하지만 중국 거주 재외국민인 조선족들을 강제 출국시키는 일은 같은 동포로서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진다. 대개 그들은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식민지 한국에서의 핍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간 동포들의 2세 또는 3세들이다.
중국 거주 조선족은 혈연적으로, 언어적으로 우리와 똑같은 한국인이요 재외국민들이다. 민족을 구분하는 어족(語族)과 혈통을 구분하는 혈족(血族)이 모두 같은 우리의 동포요, 모국어인 한글을 사용하는 엄연한 우리 국민들이다. 다만, 거주 국가가 다를 뿐이다.
최근의 조선족 불법 취업자 추방을 보면서 감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같은 동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민족적인 동질감 또는 연대감 같은 것일 게다. 강제 출국을 철회해 달라고 호소하고, 교회에서 농성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농성 현장을 방문하여 위로하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바라보는 내국인들은 대부분 ‘꼭, 저렇게 해야 하나’ 또는 ‘강제 추방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졌을 것이다.
마치, 조선족 농성 현장을 바라보는 느낌이란, 좋을 때는 내 식구요 내 사랑이요 하다가 사정이 나빠지면 남남이라는 이기적 대립과 갈등을 그린 한 편의 통속적 연속극 같기도 하여 멍청해지고 또 우울해진다. 더욱이 농성 조선족들이 농성 현장에 내걸었던 ‘미국, 일본 거주 교포는 일등 재외국민이고 우리는 이등 재외국민이냐, 이등 재외국민이라 이렇게 차별하는 것이냐’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보면서 마치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 것은 아마 필자만의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 고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자기 고향인 만주로 돌아가 대학 교수가 된 자랑스러운 후배를 생각하니 이런저런 사정이 뒤엉킨, 다양한 형태의 재외 국민들에 대한 인식과 위상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현재 국내 거주 국민이 4700만명이고 재외국민이 600만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를 보면서 우리의 재외국민 정책과 한민족의 세계화·국제화의 인식과 정책적 실천이 대폭 확대·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된 것 같다.
이는 전 지구에 살고 있는 한국인 전체 인구의 12%가 넘는 숫자가 재외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인구 비례로 보면 유대인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의 수치이다. 중국 화교가 많다고 하지만 13억명이 중국 내에 거주하고 5500만명이 화교라고 하니 숫자는 많지만 4%에 불과하다. 12% 대 4%, 이 수치는 한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예견케 하는 수치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재외국민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실, 우리가 드러내 놓고 자랑할 만한 자원이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인구 자원밖에 더 있는가. 부지런하고 진취적이고 재주 많은 한국인들이 더 많이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 세계화를 이루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그런 관계로 이제 우리의 재외국민 정책은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때가 됐다. 모든 재외동포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재외국민들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거주국의 국적과 함께 모국의 국적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이중 국적 제도를 실행하여 전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재외국민 정책을 펼치는 것이 세계화로 가는 길일 것이다.
재중국 조선족도 여기에서 예외가 돼서는 안된다. 세계화한 한국인이 많다는 것이야말로 엄청난 자원이며 자랑이 아니겠는가.
이영유 / 시인
  [] 2003-12-13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07면 03판 214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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