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단상]내가 잠든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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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단상]내가 잠든 사이에
  • 김해응 교수
  • 승인 2010.08.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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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응 중국 인민대학교 교수
따르릉!

졸린 눈을 억지로 떠서 탁상시계를 보니 벌써 6시 반이다. 오늘 수업에 쓰일 강의자료를 만드느라 밤새 컴퓨터작업을 하다가 새벽 두 시에야 자리에 누웠더니 몸이 천근무게로 무겁다.

부랴부랴 세수를 한 뒤 화장대에 앉아서 스킨이며 로션을 바른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왠지 창백하고 초췌해 보인다.

대충 출근준비를 마치고 문을 나서려고 가방을 찾던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가방이 있어야 할 책상 위가 텅텅 비었다. 게다가 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어야 할 노트북 두 대가 온데간데 없다.

방안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다. 출입문을 밀어보니 잠겨 있어야 할 문이 활짝 열린다. 순식간에 짜릿한 전류가 등골을 타고 올라오며 입안이 바짝 말라든다.

도둑이 든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린 나는 110에 범죄신고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주소지를 묻더니 경찰이 곧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한다. 전화를 끊고서야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리고 생각을 좀 정리해보았다.

새벽까지 강의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문을 확인할까 생각을 했었지만 “잠근것 같기도 하고…” 하면서 자기최면을 걸고야 말았다. 잠깐의 방심이 도둑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텅 빈 집안에 홀로 앉아 있으려니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자꾸 눈물이 나온다.

복도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쾅! 쾅!” 문을 두드린다. 깜짝 놀란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출입문의 유리렌즈로 빠끔히 내다보았다. 다행히 눈에 안겨온 것은 경찰특유의 둥근 모자와 휘장이다. 문을 열자 네 명의 경찰들이 앞 다투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중구난방으로 사건경위를 물어보던 경찰들은 나보고 파출소로 가잔다.

학교에는 전화로 오늘 출근을 하지 못한다고 사정이야기를 하고 경찰을 따라 나섰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쇠창살로 막혀있는 칸에서 경찰이 내다보면서 사건경위를 자세히 이야기하란다.

머리가 어지러워 앞뒤 순서도 없이 횡설수설 늘여놓는 나의 말을 꼼꼼히 기록한 후, 두 명의 수사관이 각종 증거채취 설비를 들고 다시 내 집으로 향했다.

전문가는 역시 전문가였다.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범인의 지문을 바로 찾아내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명탐정 셜록홈즈의 팬인 나는그동안 봐둔 탐정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수사관을 협조하려고 이것저것 간섭하며 옆에서 설쳐댔다.

어린시절 잠시나마 경찰이 꿈인 적이 있었던 나로서는 이 순간에 마치 탐정이 된 듯하여 스릴까지 느꼈다.

그나저나 이젠 어쩌지? 경찰이 가버린 후 혼자 시름에 잠겼다. 이 집에서는 무서워 더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문을 꼭꼭 잠궜는데도 왠지 누군가 문을 차고 당금이라도 쳐들어 올 것 같다. 강박증 환자처럼 금방 확인한 문을 5분 간격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도둑이 다녀간 객실에서 나는 그나마 남아있는 소중한 보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감사했다. 그리고 순간적인 희열마저 느꼈다. 바보인가?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남은 많이 용서하되 자신은 결코 용서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 , 잠간 1분이면 일어나서 문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 당장 몸이 피곤하다고 게으름을 피운 나는 용서가 안되지만, 그나마 귀중품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간 도둑을 용서하자. 성경에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도둑이 들었다는 것은 나에게도 훔칠만한 값진 물건이 있다는 것이고, 이렇게 한 번 된통 당해봤다는 것은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고, 쓰던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은 곧 새 물건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 비싼 노트북은 당장 사기 힘들지만 싼 데스크탑이라도 마련하자. 대신 19인치 액정모니터를 사야지. 빵빵한 신형스피커를 달아놓고 잔잔한 클래식을 들으며 작업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아마 지금쯤 도둑씨도 집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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