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전 세계에 태권도 인구는 1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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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전 세계에 태권도 인구는 1억”
  • 강성봉 기자
  • 승인 2010.07.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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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남 단국대학교 재외동포연구소장 강연
이글은 지난달 25일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 홀에서 김길남 단국대학교 재외동포연구소장이 ‘세계속 한민족’이란 주제로 행한 137번째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근대 한민족의 재외동포사는 1860대부터 시작된다. 물론 9세기 장보고가 활동하던 통일신라시대에도 중국에 신라방이니 신라촌이니 해서 이민의 기록이 있고, 고구려유민, 백제유민 등이 재당신라인 사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것을 한민족 재외동포의 기원으로 삼을 수는 없다. 재외동포란 해외로 이주했으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했을 때만 재외동포일 수 있기 때문이다.

1860년대 연해주가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양된 후 한국 사람들이 연해주로 이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1865년 함경도 지역의 13개 농가가 돈을 주고 양반을 산 사람들의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연해주로 영구 이주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최초의 이민 기록이다. 이때부터가 한민족 이민의 시작이며 재외동포사의 시작이다.

한민족은 전세계에 750만 정도의 재외동포를 가지고 있다.

재외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순서는 중국에 240만, 미국에 210만, 일본에 90만, 러시아‧CIS에 53만 등이다.

우리 민족 이민의 특색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민의 시기와 형성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동포사회가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세계 4대 강국에 비교적 고르게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이민은 1902년 12월22일 제물포에서 시작됐다. ‘하와이에는 돈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믿고 102명의 한인이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출항했다.

월요일이었던 그날, 56명의 남성과 21명의 여성, 13명의 어린이와 12명의 젖먹이 등으로 구성된 노동이민자들과 그 가족들은 3년간의 단기 노동계약에 따라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원으로 노동이민을 떠났다. 이들은 22일간의 항해 끝에 1903년 1월 13일 수요일 새벽 3시30분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무사히 입항해 검역관의 신체검사를 받았다.

결국 안질이 있던 15명이 허가를 얻을 수 없어 돌아가고, 86명(남자 48명, 여자 16명, 어린이 22명)만이 호놀룰루에 상륙하게 되었다. 미주 한인이민사의 첫 장은 이렇듯 초라하게 막을 열었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해외이주는 몇 시기로 시대구분을 할 수 있다.

1860년부터 1920년까지 먹고 살기 위해 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행해진 러시아, 중국, 미국으로의 이주를 제1기로 볼 수 있다.

제2기는 일제강점기의 일본으로의 이민을 말한다. 192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들어간 생계형 도시노동자, 징집에 의한 광산 노동자, 군인 등이 이 시기의 해외 이주자들이다.

제3기는 해방후인 1945~1956년까지로 한국에 진주한 미군과 국제결혼한 여성, 미국가정에 입양된 전쟁고아 등 미국으로의 특수이민이다.

제4기는 해외이주를 하는 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해외이주절차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1962년과, 미국이 새 이민법을 통과시킨 이후(1965)를 기점으로 1990년대까지 이뤄진 미국·남미·유럽으로의 이민이다.

이시기 가운데는 월남전 이후 동남아시아로의 ‘사업이민’(1975~1985)도 활발히 전개됐다. 구소련이 와해되고 중국이 개혁 개방을 한 이후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CIS 지역의 동포들과 중국동포들이 부각된 것도 이시기에 일어난 주요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5기는 1990년대 들어 IMF사태부터 현재까지 남태평양의 섬나라, 중앙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의 우간다, 짐바브웨, 남아공까지 다양하게 분산된 이민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든 한국사람이 들어가서 살지 않는 곳은 이제 거의 없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재외동포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네트워크화 하느냐이다. 더군다나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결혼이민이나 노동이민을 온 100만이 넘는 이주민이 있다.

이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 한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그리고 한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활용해야 할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째는 태권도이다.

전세계에 1억이라는 태권도 인구가 있다. 고국에서는 외면 받지만 해외로 진출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이 일궈낸 위대한 업적이다.

전세계에서 매일 1억 이상의 태권도인이 도장에 나가 도장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향해 45도로 절을 한다. 그들은 초단 이상만 되면 그랜드마스터의 고국인 코리아에 매료된다. 전세계로 진출한 태권도인이 가지고 있는 인맥을 활용하면 이뤄내지 못할 일이 없다.

두 번째는 새마을 운동이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배우겠다고 난리다. 그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다. 제3세계국가들에게 지도자를 파견하여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한국이 가지고 있는 개발노하우를 전수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좋은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이다.

몽골을 예로 들어보겠다. 몽골은 세계10대 지하자원 대국이다. 몽골 민족은 원래 우리와 같은 핏줄이다.

고구려를 구성했던 여러 민족 중에 터어키의 조상인 돌궐족과 함께 몽골족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인지 몽골사람들은 한국을 외국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도 몽골을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도와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몽골에 국가연합을 제안한 적도 있다. 몽골은 예스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직 노라고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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