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와 편지로 싸우는 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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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와 편지로 싸우는 동포들
  • 홍건영
  • 승인 2003.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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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법 개정과 불법체류 사면을 내걸고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로비 시멘트 바닥 위에서 20일 넘게 농성중인 중국동포들은 요즘 한창 전화걸기 투쟁(?) 중이다. 투쟁의 대상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15명의 국회의원들.
조웅규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법안이 정기국회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아직 법안 심사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는 농성지도부의 보고가 있은 뒤 농성참가자들은 전화로 의원들을 설득하고 재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의원 한 명한테 여러 명이 돌아가며 틈틈이 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화투쟁은 벌써 여러 날 째 진행되었다. 전화를 받는 의원사무실의 직원이나 보좌진한테 동포들은 동포 특유의 사투리를 섞어가며 약간 어눌한 말씨로 동포법 개정의 당위성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이 달 말까지 동포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동포법이 폐지된다는 걸 의원님은 알고 계세요?”
“우리가 바라는 건 국적취득이 아니라 같은 동포로서 평등한 자유와 권리를 주고 동포로 인정해 달라는 건데, 왜서 이렇게 힘든 겁니까?”
동포들은 전화걸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편지쓰기도 병행하고 있다. 책상이 따로 없어 시멘트 바닥에 깐 스티로폴 위에 엎드린 채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편지에는 전화통화로 못다 전달한 절절한 심정과 할말 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연길에서 살다왔다는 윤호수(54)씨가 쓴 편지의 한 대목이다.
“비록 국적은 중국이지만 우리들의 몸에는 민족운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일제의 억압과 탄압에 맞서 싸운 항일투사들의 정의롭고 지혜로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국에 와서 고향에서 살아보지 못한 조상들의 원을 풀어드리고 우리의 후대들에게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건설하려고 왔습니다. 이것이 죄가 되는가요? 왜서 동포라 하면서 동포로 인정 안해주고 차디찬 수갑을 채워 강제추방하는 것인가요? 세계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한민국이 동족을 비참하게 하고 분열시키는 목적은 무엇인지요? 10여년 동안 잘못된 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비참하게 되었는지 의원님은 알고 계시는지? 위원회에서 이 법을 평등하게 개정하지 않으면 우리 동포들의 마음에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길 것입니다...”
거의 모두가 불법체류 신분이라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농성참가 중국동포들은 오늘도 농성장 차디찬 바닥 위에서 전화걸기와 편지쓰기로 동포법 개정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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