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러시아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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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러시아타운
  • 송옥진 기자
  • 승인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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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초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부근 호프집에서 일명 "우즈베키스탄 번개 모임"이 열렸다. 우즈베키스탄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 한때 우즈베키스탄에서 대우자동차 관련 일을 한 사람, 그리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 가고 싶은 사람, 또 통역일을 하는 사람 등 열두어명의 남녀가 모였다.
그중에는 얼마전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고 왔다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얼굴 한번 보고, 말도 안통하는 낯선이와 평생을 약속하고 돌아온 이 남성은 그녀를 한국으로 불러올 준비를 하면서 뒤늦게 갖가지 불안에 빠졌단다. 두번째 결혼에도 실패할 수 없다는 비장한 결심으로 같이 살기 전에 도움되는 얘기를 듣고 싶어 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얼굴만 보고 한국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이 얼추 3천명은 될 것이란다.
이들은 늘 이 주변에서 모임을 갖는다. 한국에서 러시아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동장 역 부근이 러시아 색깔을 짙게 띠기 시작한 것은 수년전이다. 일명 먹자골목인 광희동1가를 중심으로 을지로 6가와 7가는 ‘러시아 타운’이라고 불린다. 최근에는 몽골인이 급속히 불면서 ‘몽골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주변은 구소련 지역에서 들어 온 사람들로 밤낮 북적거린다. 동대문 시장 주변을 걷다보면 한국인지, 러시아인지 주위를 한번 둘러볼 정도다. 사무실 유리창이나 벽 간판엔 러시아 상호가 가득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노래방, 약국 등도 러시아어 광고를 잔뜩 붙여놓았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음식전문점 만도 한골목에 10개 이상이고 2개월 전엔 그 지역 빵만 전문으로 굽는 베이커리 겸 카페도 생겨났다.
관할파출소에서는 이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를 약 150명 정도로 추정한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의류를 사러온 상인들은 대부분이 이 부근 여관에서 묵고 있고, 장기 체류자들이 부근 여관방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어 이들을 합치면 몇배는 더 되는 인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곳에 "러시아  타운" 이 형성된 것은 90년 중반이다. 1994년 처음으로 서울과 하바로브스크 간 직항로를 시작으로 구소련지역에 항로가 열렸다. 이후 모스크바, 사할린, 타슈켄트, 알마티, 우란바틀 행 직항로가 열렸다. 지금은 어느 지역이든 1주일에 적어도 2편 이상의 항공편이 뜰 정도로 교류가 늘었다.
항공편이 없어 배편을 이용하던 시절에는 부산이 구소련지역 교역의 중심지였고 부산역에서 국제시장까지의 긴 중앙통이 러시아어로 범람했었다. 그런데 항공편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서울로 옮겨지고 지금 부산의 러시아 통은 쓸쓸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한국을 부지런히 드나드는 이들은 봇따리 장사꾼들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항공편을 택했고 자국환경의 변화도 항공편 이용을 촉진시켰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러시아 세관관계법규가 미비해 냉장고 같이 덩치가 큰 상품들까지도 관세없이 자유롭게 가지고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세관 감시가 심해 일일이 관세를 물어야 하니 예전처럼 닥치는 대로 사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세관의 눈도 피하고 운송비가 적게 들면서 부가가치도 높은 것이 의류다. 또 한국에서 주문생산이 가능해 진 것이 동대문일대에 러시아 타운 형성에 일조를 했다. 구 소련지역 상인들은 초기에는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만든 의류를 구매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체형이나 취향이 한국인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멀리 몽고에서도 장사꾼들이 찾아 들면서 하나의 상권이 형성되자, 소량이지만 동대문시장에 주문생산시스템이 갖추어졌다. 그러다보니 봉제공장이 많은 이 지역에 사람들이 더욱 몰리게 된 것이다. 아예 한국에 회사를 차려 직접 그들의 취향에 맞는 옷을 만들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4~5년전에는 교포들이 차린 의류회사가 이 부근에만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중국으로 상권이 많이 이전됐다는 요즘도 국립의료원 근처 허름한 빌딩을 들어서니 교포들이 직접 운영하는 의류회사가 층층마다 빽빽하다.
사할린 교포가 운영하는 아동복 전문 의류회사에 들어가 벌이를 물었더니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구, 요즘 어려워요. 러시아에도 워낙 싼 중국물건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요. 그런데다 한국에서 나간 회사가 거기서 똑같은 원단과 디자인으로 물건을 만드니까 한국으로 오던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 버려요. 그 때문에 문닫은 회사가 많아요. 중국 사람들 무서워요. 러시아 말도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잘 해요.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통역 같은 일거리도 없어요.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져요”라고 답한다.
이 회사는 직원이 넷. 모두 사할린 교포 2~3세였다. 이들은 대개 동대문 부근 여관에서 생활한다.
동대문 밀레오레나 광희동 먹자골목 주변에는 허름한 장급 여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봇다리 장사꾼들은 물론이고 장기체류하는 사람들도 여관생활을 한다. 걸어서 직장에 갈 수 있어 좋고, 하루에도 수차례 물건을 사서 날라야 하니 자연히 봉제공장이나 의류회사들이 가까운 이곳에 숙소를 정하게 된다.
장기체류자의 경우, 한달에 4-50만원을 내고 여관방 하나를 빌려 살고 있단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2003년 1월 현재 한국내 외국인 거주자 수는 63만명이다. 그 중 29만명이 불법체류라고 한다. 그 중 러시아 국적을 가진 이가 4626명, 우즈베키스탄인이 7540명, 몽골인이 1만3638명이라고 한다.
구소련지역 출신 불법체류자들의 증가가 러시아 타운 형성에 일조를 했다. 이 지역 선주민은 한국어에 능통하고 생활습관이 한국적 사할린 교포들로 쉽게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일찌기 한국을 드나들며 통역 일이나 장사를 시작했고 회사를 차린 사람들도 사할린 교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들이나 타 민족들은 말도 안 통하고 입맛도 안맞는다. 이러한 인구가 늘면서 그들을 상대로 하는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몇군데의 식당을 돌아보니 추측대로 손님 대부분이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이거나 타민족이었다. 그렇지만 식당 주인은 대부분 교포이다. 임대를 하려면 한국에 연고가 있는 교포들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인은 부모님들의 고향이 남한인 사할린 교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지 10년이 넘었지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 경제난은 계속되고 이들 지역으로부터의 불법취업, 불법체류자 또한 늘어가고 있다. 한 때 한국인들의 아메리칸드림 행렬이 있었던 것처럼 러시아나 CIS지역 사람들의 코리안드림 행렬이 시작된 것일까? 그 중에는 한국에서도 기업을 일으킬 만큼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한국 생활, 그리고 미래가 사뭇 흥미롭다.

*띠어쓰기 어색한 표현만 고쳤어요. 원고 분량 조절은 편집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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