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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19 : 이젠 해외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어요!
dong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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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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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박사가 운영하는 "즐거운정치이야기"  (cafe.daum.net/funpol) 사이트에서 퍼온 글입니다.

..  오후 연습을 끝낸 난 스탠드에 앉아 푸른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바라본다. 스프링클러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가 시원해 보인다. 팀 동료들은 벌써 삼삼오오 운동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가끔 난 이렇게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있길 좋아한다. 텅 빈 운동장에서 스프링클러의 물줄기를 맞아가며 드리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살갗을 덮치는 물방울의 차가운 감촉에서 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6시 30분. 초여름의 저녁은 여전히 대낮 같다. 아직 1시간 30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생각난 김에 여기서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은 난 휴대전화를 켠다. 그리고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투표참여 코너 일본어 서비스로 들어간다.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한국과 시차가 없으므로 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사이에 온라인으로 투표하면 된다. 내가 사는 곳은 일본 오사카, 난 재일동포 3세다.

내 국적이 어디냐고? 할아버지가 선택한 대한민국이다. 한국 이름은 김영철. 어린 시절부터 일본 이름을 썼고 일본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난 언제나 일본을 조국이라고 생각해왔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만나면 가끔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지만 그건 그저 전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올해 나이 24세, 당분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할 생각은 없다.

아니, 마음속으로는 포기했다. 포기를 하게된 계기는 축구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정말 가슴 뛰는 경험이었다. 한국계지만 한국계임을 숨기고 생활했던 내게 그때부터 모국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클럽에 가입하여 축구를 배우며 언젠가는 일본 국가대표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키워오던 나에게 한국 축구는 일본 축구가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진 팀으로 화려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들의 경기 스타일이 내 마음에 들었다. 축구를 하면서도 무언가 갈증을 느끼던 나에게 신선한 샘물처럼 비쳤다고나 할까.

더욱이 붉은 악마의 응원은 모든 선수들이 꿈꿀 만한 그런 것이었다. 저런 응원을 받으며 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아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때부터 난 한국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 그때 나이 16세,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난 한국 축구와 한국에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내 국적이 어디인지 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확인한 것도 이때였다. 대한민국 국적이면 나도 한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뛸 수 있다! 이후 나에겐 분명한 목표가 하나 생겼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매운 김치며 젓갈 같은 것을 입에 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월드컵 직후 한국은 당시 내 또래 재일동포에겐 하나의 유행이었다. 한국 음식에 한국 노래, 그리고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것까지. 할아버지의 이유 없는 한국 사랑을 조금은 식상해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한국 사랑에 다시 한번 질린 표정을 지어야 했다.

실리적인 아버지는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불편을 주는 모국 한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태극기를 보기만 해도 눈물짓는 할아버지를 보면 짜증스러워 했다.

귀화를 결심하였다가 몇 차례 할아버지와 갈등을 겪기도 했던 아버지는 늘 자신이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여권에 일본 정부가 발행한 재입국 보장 서류를 들고 해외 여행을 다녀야 하는 것에 분개해했다.

나도 해외여행을 다닐 때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다녀야 하는 동일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아마 이 고충과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엄연한 한국 국민이지만 일본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 말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2년 뒤 모국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선물을 주었다. 재일동포만이 아닌 다른 지역 동포에게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해 준 것이다.

물론 외국국적을 취득한 동포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월드컵 때에도 한국팀 경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아버지도 이 때만은 반가워했다.

아버지의 꿈은 원래 정치인이었다. 한국 국적으로는 공직에 임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꿈을 접고 할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였지만, 포기하기 싫어하는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 일본 정부에 대해 수 차례 소송을 제기한 끝에 지방선거 참정권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그 결과 요즘은 시의회 의원직을 겸하고 있다.

소송 과정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왜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느냐? 한국 정부도 당신에게 주지 않는 참정권을 우리에게 달라는 이유는 뭐냐? 였다고 한다. 특히 두 번째 질문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동참한 운동이 한국 정부에 대한 재외국민 참정권 인정 운동이었다. 세계 각지의 재외국민, 특히 유학생이나 주재원이 주도했던 이 운동은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한국만이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삼았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선거 기술적인 난점 때문에 재외국민의 투표참여를 보장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도 정부측을 지지하여 일부 재외국민의 헌법소원에 대해 부정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었던 까닭에 재외국민을 재상으로 한 해외부재자 투표는 요원한 듯 보였다. 하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 단계 선진화를 지향하던 한국 정부가 방침을 바꿈으로써 전격 도입이 이뤄졌다. 월드컵 기간 중에 재외동포들이 보인 열렬한 응원도 이러한 방침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

도입 과정에서 나처럼 해외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장기 체류하는 재외국민은 제외하자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도입은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단기체류 재외국민으로부터 장기체류 재외국민으로... 재일동포 대부분은 후자에 속하였지만,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조기에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되려던 어린 시절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난 지금 J리그에서 뛰고 있다. 언젠가 내게도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팀 코치의 귀화 권유에도 응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이런 나에게 투표 참여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국 국민임을 다시금 확인 시켜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결과는 내일 아침에 확인해보면 된다.

아! 배고프다.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까? 7시에 남바역 앞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더 늦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  
    
   번호:22  글쓴이: 이종훈
조회:12  날짜:2002/06/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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