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파가 뭔지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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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파가 뭔지 아는 사람?”
  • 이오영 전 미주총연 회장
  • 승인 2010.05.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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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영 전 미주총연 회장

필자는 한국에 나올 때마다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를 자주 갖는다. 얼마 전 그런 모임에서 한 친구가 지공파가 뭔지 아는 사람?”하고 물었다.

외국에서 온 필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 눈을 멀뚱멀뚱 뜨고‘한국에 무슨 파룬궁 같은 도인들의 모임이 생겼나’궁금해 하며 무슨 소리가 나올지 그 친구 입만 바라봤다.

문제를 냈던 친구가 지하철 공짜파’라고 답을 말하자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자지러지며 웃었다. 그 자리의 친구들은 다 지공파였다. 그러나 필자는 웃을 수가 없었다.

미국 시민권자(외국국적 재외동포)로 돼 있는 동포들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어도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역 티켓 판매대에 가서 경로우대용 표를 자연스럽게 얻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승차권 자동판매기로 바뀌어서 지금은 주민등록 소지자나 재외국민 거소증 소지자에 한해서만 우대권을 발급받아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서울은 정말 빨리 변화하는 도시이다. 잘 알던 거리도 한 1년만 안가다 가보면 여기가 옛날의 거긴가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는 게 다반사다. 거리만 빨리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제도도 빨리 바뀌고, 심지어는 사람의 영혼마저도 빨리 바뀌는 것 같다. 대표적인 반정부인사가 정치권에 뛰어들어 철저하게 친정부적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며 깜짝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지하철 이용 제도가 바뀐 지를 모르고 판매대에 가서 경로 우대권을 달라고 했다가 망신을 당한 게 어제 일만 같다.

당연히 세계화시대에 걸 맞는 열린 정책으로 재외동포를 자국국민과 동일선상에서 취급해야한다는 정부 및 정책입안자들의 호언이 있었기에 사소한 지하철 경로우대엔 자국민과 재외동포 간에 차별이 없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떤 사람은“세금도 안내는 외국인에게 경로우대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필자는 열이 받는다.

젊어서 세금 낼만큼 내다 외국에 가서 살던 동포를 국내에서 외국국적 소지라는 이유로 차별대우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크지도 않은 지하철 비용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국적은 외국적이라도 조국을 위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재외동포들이 조국 대한민국 내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국은 정녕 외국국적 재외동포를 버리려 하는가?”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재외동포를 내국민과 동일하게 대우하겠다'는 것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많은 재외동포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재외 동포들에게 수차에 걸쳐 한 약속이기도 하다.

필자는 83년부터 한인회 활동을 하면서 동포청 신설을 주장하고 동포들에게 이중국적을 부여할 것을 주장해왔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이 다 재외동포청을 신설하고 이중국적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불완전하지만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재외동포재단이고 거소증이다. 재외동포재단은 김영삼 정부 때 설립됐고, 거소증은 김대중 정부 때 발급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이중국적은 국제법과 국내정서에 문제가 있으니 거소증을 만들어 주겠다. 영주권과 동일한 효력을 주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약속했다. 정부는 거소증을 발급하면서‘재외동포들에게 만들어 주는 신분증으로 참정권만 제외되고 다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부동산과 은행 거래에는 차별이 없었지만 경로 우대자에게 해당되는 고궁무료 입장이나 보건소‧지하철 무료 이용 등이 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국적 재외 동포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처우도 보상금을 제외하고는 국가유공자증을 발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각종 혜택에서 국내인과 현저한 차별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 노인층과 국가 유공자들에게 한하는 제한된 숫자에 불과한 사소한 사항으로 밀려 정부관계당국의 관심 밖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감정이 상하는 법이다.

“아니 내가 조국을 위해 낸 세금이 얼마고, IMF 때 달러 통장 갖기 운동을 비롯하여 지금도 매년 보내는 송금액수가 얼만데, 그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유공자들의 충성심은 자국민과 어떤 차이가 있기에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화가 나는 법이다. 재외동포로 하여금 이렇게 괄시받는다고 느끼게 해서는 민족화합 무드가 조성되지 않는다. 국가는 대범한 자세로 활짝 열린 재외 동포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많은 재외동포들은 조국이 위기와 재난을 당했을 때 그리고 조국이 불렀을 때 주저 없이 동참했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이다. 또한 중국동포, 러시아동포, 재일동포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민족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이다. 이들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이민을 갔던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민자를 조국을 떠난 매국노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이민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이제 버려야 한다.

지구촌 시대 우리 모두는 누구나 이민자가 될 수 있고, 친인척 중에 이민자가 없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도 오히려 적극적으로‘어디에 가서 살든 내 동포 내 형제요’하고 껴안아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이제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재외동포에게 복수국적을 부여하려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닌가? 하물며 국적을 불문하고 재외동포들의 국내에서의 경로 우대는 물론 국가 유공자들의 유공자증 발급과 그에 상응하는 각종 혜택을 국내 국가 유공자와 동일하게 허용하는 과감한 열린 동포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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