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전통 살려 중국과의 관계 풀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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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전통 살려 중국과의 관계 풀어가야”
  • 강성봉 기자
  • 승인 2010.04.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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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숙 경연학당 대표
이글은 지난 9일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 홀에서 이윤숙 경연학당 대표가 ‘공자의 부활과 동북아의 미래’란 주제로 행한 132번째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중국에서 공자가 부활하고 유교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스스로 탄압했던 공자와 유교를 전면적으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5년부터 공자 탄신 기념행사인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공식화하고 세계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있다.

‘공자학원’은 영국의 ‘브리티시카운슬’이나 독일의 '괴테인스티투트'처럼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외에 홍보·전파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마오쩌둥학원’이 아니라 ‘공자학원’인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스스로를 은나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다.

공자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아침 일찍 뒷짐을 진 채 마당을 거닐며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지려는가? 들보가 허물어지려는가? 철인이 시들어 떨어지려는가?” 노래를 다 부른 공자는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마주 보고 앉았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자공(子貢)이 노래를 듣고 “태산이 무너진다면 나는 장차 무엇을 우러를 것이며, 들보가 허물어지고 철인이 시들어 떨어진다면 나는 장차 무엇을 따를 것인가? 선생님께서 곧 큰 병이 나실 것 같구나”라고 탄식하며 빠른 걸음으로 스승의 방으로 들어갔다.

공자는 기다렸다는 듯 “너는 왜 이리 늦게 왔는고? 나는 은(殷)나라 사람이다. 내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제물을 받더구나. 세상에 밝은 임금이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니 천하에 그 누가 나를 높여 줄까? 나는 곧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병상에 누운 지 7일 만에 돌아가셨다.

『예기』 단궁편이 전하는 공자의 마지막 모습이다. 주(周)나라 주공이 세운 노(魯)나라 곡부(曲阜) 땅에서 태어나 재상까지 지낸 공자는 스스로 은나라의 후손임을 밝힌 것이다. 동이족 예법에 따라 장례가 치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꿈속에서 미리 본 공자는 덕치(德治)는 뒤로한 채 약육강식을 일삼는 패권(覇權) 정치에 대해 마지막까지 깊이 우려하며 떠났다.

공자의 부활은 여러 이유로 우리에게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공자 부활은 동아시아 문명사적 의미를 지니는데 우리는 바로 그 문명에 속한다. 서구나 아시아나 다 같이 전근대적 봉건체제를 거쳤으나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은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서구가 100~200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몇십 년 만에 해냈으며 앞으로는 세계경제까지 주도하리라는 예측이 있다. 구(舊)유교권의 급속한 성장은 그것이 ‘유교에도 불구하고’ 가능했던 것인지 ‘유교 덕분에’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한 문명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자·유교의 부활은 중국 내부의 문제에서 촉발됐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에는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요소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 지도자의 지지율이 임기 말년에는 10%대로 떨어질 정도로 서구식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권의 리더십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학자들이 현대 민주주의 통치불능성(un-governability)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다. 공자의 위민(爲民) 정치철학·사상은 현대사회에도 유효할 수 있다.

중국의 공자 부활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공자·한자와 동이족 간의 연관성 때문이다. 이들은 한자를 은(殷·기원전 1700~1200년)나라를 세운 동이(東夷)족이 창제했다고 본다. 한자의 어원인 갑골문이 은나라 유적지인 허난성 안양에서 출토된 데다 동이족 문화와 한자 생성이치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공자=동이족=우리 민족의 일원’, ‘한자=동이족이 만든 글=우리 민족이 만든 글’이라는 등식은 엄청난 폭발력이 내포된 주장이다. ‘공자도 한자도 우리 것’이라는 주장은 중국의 공자 부활을 배경으로 한·중 관계에도 심각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최근 개봉한 영화 ‘공자’를 만든 후메이 감독은 “‘공자가 한국 사람이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공자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롯해 한국은 역사 왜곡의 천국”이라고 비난하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

물론 우리도 역사적 인물인 공자나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영화 ‘공자’에 대해서는 “사마천의 『공자세가』와 『논어』라는 문헌에 충실하여 영화의 사실성과 작품성은 뛰어났으나 ‘국수주의적’ 자세를 탈피하지 못하다 보니 다른 나라들이 공감할 정도로 공자와 유교를 복원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중국 등 동아시아 권역의 다른 나라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것이 숙제다.

공자와 유교 문명은 결코 우리와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유학 전통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가 유학적 전통을 되살린다면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월하고도 우세한 우치에 서게 됨은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또는 어리석게도 우리나라는 그동안 영어 배우기에만 목숨 걸다시피 하고 해방 이래 학문을 비롯해 모든 분야가 미국에만 경도되어 있다 보니 유학경전에 능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하다.

공자·유교 문제에 대해선 우리도 ‘지분’이 있다. 필요하다면 우리 정부는 한문교육에 대해 정책 수정을 검토해야 하며 민간 학술 차원에서는 공자와 유학 진흥과 관련해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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