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 리스크가 주식 리스크보다 몇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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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리스크가 주식 리스크보다 몇배 크다”
  • 정리=강성봉 기자
  • 승인 2010.03.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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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강연

이글은 지난 12일 덕성여중 강의실에서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제2차 외환위기의 실상’이라는 주제로 행한 130번째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2008년 12월 22일 연합뉴스가 재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뉴스는 바로 삭제됐다.

정부 당국자는 당시의 상황이 외환위기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외환위기가 언제 시작됐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1997년의 1차 외환위기를 겪고도 올바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시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IMF위기라고 함으로써 위기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과 똑 같은 양상이다. IMF는 우리에게 돈을 빌려줘 우리가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 고마운 기관이다. 위기의 원인을 IMF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 올바른 대책이 나오겠는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도 않으니까 똑 같은 위기를 다시 겪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OECD에서 발행한 논문에 따르면 외환위기는 (1) 변동환율제의 경우, 환율상승률(자국통화가치 하락률)이 평상시 변동률(표준편차 기준)의 2~3배 이상 일 것, (2) 고정환율제의 경우, 외환보유액 감소율이 평상시 변동률(표준편차 기준)의 2~3배 이상일 것, (3) 관리변동환율제의 경우, 환율상승률과 외환보유액 감소율의 합계가 역시 평상시 표준편차의 2~3배 이상일 것 등이다.


한국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은 2008년초 900원대 초반에서 10월 하순 1,500원 돌파로 60% 이상 상승했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이 기간 원화는 아시아 최악의 통화(the worst currency in Asia)였다. 게다가 외환보유액도 급감했다. 이 시기 실제 외환 보유액 감소는 800억 달러 내외였고, 감소율은 30%에 달했다. (1)60%와 (2)30%를 합치면 90%였다. 우리나라는 외환당국이 많이 개입하는 관리변동환율제이므로, (3)의 기준에 따라 외환위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표준편차로 계산해도 외환위기에 진입한 것이 명백했다. (1), (2)의 기준에 따르더라도 외환위기였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쉽게 설명하면 환율이 33% 이상 올라가면 외환위기이다. 2008년 900원대이던 환율이 1,500원대까지 올라갔으니 한국은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제2외환위기를 겪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가 부도가 나고, 그 영향으로 단기 외채의 만기연장(roll-over)이 되지 않으면서 외환위기는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3년간 1년 미만의 단기외채가 3배 이상 늘어났다. 이 중 2008년 가을 300~350억 달러의 만기가 돌아왔다. 정상적일 때는 90% 이상 만기연장이 되지만 리만사태의 영향으로 연장 비율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만기 연장이 안 되는 만큼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달러나 엔화를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사야하니까 달러부족사태가 발생하고 그 결과 환율이 급등하면서 제2외환위기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외환위기는 어떤 점이 유사하고 어떤 점이 다른 걸까?

환율이 폭등하고, 외환보유액만으로는 부족해서 외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공통점이다. 단기외채 만기연장이 잘 안 되는 것이 역시 공통점이다. 13년전에는 만기연장비율(Roll-over ratio)이 50%를 밑돈 것이 97년 11월 하순부터 97년 말까지 40일이 채 안 되었는데, 이번에는 2008년 9월 추석 때부터 7달이나 됐다.

제1차 위기 때는 단기외채 총액이 5백억 달러가 안됐는데, 2차 위기 때는 2천억 달러가 넘었다. 하루하루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도 네 배 이상 많을 수밖에 없었고, 만기연장은 13년전과 마찬가지로 어려웠고, 이런 위기의 기간이 네배 이상 길어지니, 매일 닥치는 상환부담은 제1외환위기 피크에 비해 네 배 이상 클 것으로 추산됐다.

이 돈을 외환보유액만으로 해결하려다가 안 되겠으니까, 미국, 일본, 중국에 급전을 꾸어달라고 손을 벌렸다. 이것이 원-달러 스왑이다. IMF에 꾸어달라고 하는 것이 나라의 치욕인 것은 온 나라 주권자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개별국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나라의 수치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외환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부족하다. 재벌들은 제1외환위기 때 크게 당해서 외환대출을 하지 않았으나 제2외환위기 때는 중소기업들이 외환대출을 많이 해 크게 당했다. 환리스크가 주식리스크보다 몇 배 크다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외환당국은 중소기업의 단기 엔화대출이 늘어나고 은행이 조선업체들의 장기선물환계약을 담보로 외환부채를 많이 꿔올 때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외환위기에 대응할 시스템은 97년 당시보다 더 나빠졌다.

현 정부 들어서 금융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것은 금융정책을 한은과 금융위로 이원화하고, 금융감독 기능을 금융위가 가져가 금융감독원은 손발 역할만 하게 함으로써 금융 감독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잘못된 제도이다.

지난 1월 실업률은 5%에 달했다. 제2차외환위기는 일단 진정됐지만 이제 건설업체 부도가 늘어나는 등 실물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두 번의 외환위기를 통해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올바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다시는 외환위기를 겪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조세시스템을 갖추는 등 올바른 대책을 어서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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