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족(鮮族)’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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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족(鮮族)’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0.02.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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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갑 본지 해외편집위원/중화서국처장

정인갑 본지 편집위원
우리 민족의 명칭은 ‘조선족’이다. 한자로는 ‘朝鮮族’이며 가끔 ‘조(朝)’ 또는 ‘조족(朝族)’으로 약칭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떤 도서를 출판할 때 ‘본 도서의 소수민족어 번역본(蒙藏哈維朝語)도 곧 출판된다’ 라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또 이력서의 민족을 적는 칸이 한 글자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작을 때 필자는 ‘조(朝)’자를 적어 넣곤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선족’으로 약칭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일본식민주의자가 우리 민족을 폄하(貶下)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식민주의자는 동아시아의 각 나라들을 침략하며 식민주의의 의도에 맞추어 새로운 명사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우선 ‘조선왕조’를 ‘이조’라 고쳐 불렀다. 이렇게 고치면 그들이 침략한 상대는 한개 나라가 아니라 한개 왕족에 불과한 것이니 많이 합리화되는 셈이다.

공식 이름 ‘대한제국’은 아예 없애버렸다. 또 ‘조선’을 ‘선’이라 불렀다. ‘내선일치’라는 말에서 ‘일본’은 ‘내’로 표현하고 ‘조선’을 ‘선’으로 폄하하였다. ‘일본(日本)’을 ‘태양의 나라’, ‘태양이 뜨는 나라’로 자처하는데 ‘해가 뜨는 나라’, ‘아침의 나라’를 상징한다는 ‘조(朝)’자가 대단히 혐오스러웠던 것이다.

‘중국’을 ‘지나(支那)’로 고쳐 불렀다. 사실 ‘중국(中國)’은 자고로 나라이름이 아니다. ‘세계의 중심지’, ‘동아시아의 중심지’라는 듯으로 쓰이다가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세운 나라 ‘중화민국’을 약칭하며 ‘중국’이 공식 이름으로 됐다.

바다 속의 조그마한 섬이 ‘세계의 중심’ 또는 ‘아시아의 중심’을 침략한다는 것은 도저히 명분이 서지 않으므로 ‘지나’로 고쳐 불렀다. 또한 ‘월남’ 등을 ‘인도지나’로 불렀다.

저들의 이름은 되도록 크게 팽창시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은 ‘대일본제국’ 이고, ‘내국(내선일치)’이며, 저들이 세운 괴뢰정부는 ‘만주국’, ‘만주제국’이며 그 정부의 꼭두각시 ‘부의’를 ‘황제’라 불렀다.

또한 그들의 세력범위를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으로 자칭하였다. ‘만주국’도 ‘滿州國’이 아니라 ‘滿洲國’으로 표기하였다. 한어에서 아무리 큰 지역도 ‘주(州)’로 표기하지(고대의 ‘九州’ 등) ‘주(洲)’로 표기할 수 없다.

어떤 사물이나 그에 걸맞는 이름을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공자는 ‘정명(正名)’설을 주장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하여야 한다…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견해가 순통할 수 없고 견해가 순통할 수 없으면 일이 성사될 수 없다(必也正名乎…名 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

필자는 지금 <중국민족백과전서>의 최종 교열과 수정의 일을 책임지고 있으며 이 와중에 소수민족의 이름의 중요성을 많이 체험하였다.

중국의 56가지 민족은 다 공식명칭이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졌다.

조선족의 명칭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1960년대 초반까지 필자의 고향 요녕성 무순시 한족의 조선족에 대한 칭호는 여러가지였다. ‘조선족’ ‘선족’ ‘한국인’ ‘조선인’ ‘고려인’ ‘고려’ ‘소고려(小高麗)’ ‘대고당’ ‘고려봉자(高麗棒子)’… 1960년대 후반부터 뒷부분의 칭호가 점점 사라졌으며, 1980년대부터는 기본적으로 ‘조선족’ ‘선족’ 두 가지만 남았다.

조선족이 스스로를 일컫는 이름에도 문제점이 있다. 조선어로는 ‘조선족’ 또는 ‘조선사람’ 두 가지 칭호만 쓰고, 한어로는 연변조선족은 ‘조선족’ ‘조족(朝族)’ 두 가지를 쓰고 연변 외의 조선족은 ‘조선족’ ‘선족’ 두 가지를 쓴다.

지금부터라도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대서특필하여 ‘조선족’이란 명칭만 쓰고 ‘조족’을 쓸 수도 있다는 관념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민족 자체도 ‘선족’이란 명칭을 쓰며 어떻게 다른 민족이 ‘선족’이라 부른다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최근 북경텔레비, 중앙텔레비 방송에 ‘선족(鮮族)’이라는 호칭이 몇 번 등장하였다. 이에 김인철이란 젊은이가 방송국에 항의편지를 썼으나 해결을 못보고 국가 주요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 끝내 방송국의 반성과 검토를 받아냈다.

또한 필자를 포함한 세 사람이 가서 그들에게 정신교육을 하는 기회도 가졌다. 인터넷에 올려진 조선족을 모독하는 글을 보고 리수산 선생이 격분하며 우리민족의 지성인들에게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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