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육의 장이자 한·중교류의 전당 ‘한중우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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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의 장이자 한·중교류의 전당 ‘한중우의공원’
  • 이종환 기자
  • 승인 2009.11.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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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탐방]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관

한중우의공원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당병국 관장이 전시된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MBC 대하사극 <주몽>에서 주몽 역할을 맡아 일약 톱스타로 떠오른 탤런트가 송일국이다. 그가 틈만 나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에 있는 한중우의공원이다.

5천평의 세모난 대지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실은 백야 김좌진 장군의 기념관이다.

청산리전투로 유명한 김좌진장군은 해림에 머물면서 무장항쟁에 이어 20여개의 학교도 세워 민족 교육에 힘쓴 선각자.

백야선생은 청산리전투로부터 만 10년후인 1930년 해림의 산서라는 곳에서 조선인 암살자의 총에 생을 마친다. 향년 41세.

이 백야선생이 송일국의 외증조부다. 외할아버지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 전 국회의원이고, 어머니는 김을동 한나라당 의원이다.

“해림시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땅입니다. 40년후에 해림시 정부에 반환하기로 하고 그 땅위에 기념관을 지었습니다”

한중우의공원 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당병국 관장(72)의 얘기다.

우성건설 대표를 역임하고, 재향군인회에서 일하기도 했던 당관장은 김을동 의원의 부탁에 못이겨 2년전 이곳에 와서 공원 건축 책임을 맡았다가 지금은 관리책임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좌진 장군은 국운이 기울던 1905년 15세의 나이로 집안의 노비들에게 전답을 나눠준 뒤 노비문서를 불태운 선각자입니다. 이듬해 대한제국무관학교에 들어간 이래 우리나라의 독립에 일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김좌진 장군의 기념관이 해림시에 들어서게 된 이유는 기념관 인근의 소학교 때문이라는 게 당관장의 설명. 김좌진 장군이 세운 학교 20개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지금의 해림시 조선족 실험소학교라고 한다.

우의공원은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본관에는 역사관이 있다. 역사관에는 잘 구분된 전시실은 물론, 김좌진 장군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한 영상물을 소개하는 50석 규모의 영상관도 있다. 영상물은 KBS가 제작한 것이라고 당관장은 소개한다.

역사관은 흑룡강 일대에서 활약한 동북항일연군의 주보중 조상지 등 중국의 항일지도자들도 소개하고 있었다. 역사관 아래로는 연수관이 있다.

베이징에 있는 삼성그룹에서 얼마전 수십대의 PC와 에어컨, 세탁기 등을 후원해줬다고 당관장은 소개한다. 1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의 연수시설이 4성급 호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 함께 참관한 인사들의 해석.

역사관과 연수관 앞으로는 널찍한 공원이 있고, 이를 지나면 복지관이 나온다.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을 갖췄지요”

당관장은 이렇게 설명하며, 옷장을 열어보인다. 우리식 혼례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한복들이 갖춰져 있다. 폐백상도 있다.

“우리 문화를 지키면서 배우자는 것이지요”

당관장은 한복들은 탤런트 채시라씨가 많이 제공했다고 한다.

“우의공원은 김좌진장군의 뜻을 기리는 민족 교육의 장이자, 우리 문화를 지키고, 중국과 우의를 다지며 교류하는 장소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당관장은 “이곳은 와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이 된다”며, 한국의 기관이나 청소년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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