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엑서더스'로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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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 `엑서더스'로 `썰렁'
  • 연합뉴스
  • 승인 200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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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이른바 `조선족거리'.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을 하루 앞둔 16일, 중국동포가 집단적으로
모여사는 `조선족거리'는 그야말로 눈에 띄게 한산했다.

    집세가 싼 `쪽방'을 중심으로 중국동포가 `둥지'를 튼 이곳 일대는 평소 일요일
이면 오랜만에 휴식을 즐기려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로 활력이 넘쳐났었다.

    그러나 일제단속을 앞두고 많은 불법체류자가 고향으로 돌아간  데다  상당수의
잔류 외국인 역시 잔뜩 웅크린 채 몸을 숨겨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또 `건설일용직 모집', `철거인력 모집' 등 구인 전단 사이로 `즉시 입주', `빈
월세방' 등 세입자를 구하는 전단이 건물 곳곳에 나붙어 외국인 노동자  `엑서더스'
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 썰렁한 조선족거리 = 이곳 상인들은 우선 `불황'의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다 남은 외국인마저 꼭꼭 숨은 탓에 가게
를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남은 사람 대부분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돈 쓸 여유가 없
는 외국인 근로자여서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곳에서 국제전화카드와 복권 등을 파는 30대 아주머니는 "평소  주말과  달리
보다시피 손님들이 거의 없다"면서 "예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조선족거
리'의 분위기를 전했다.

    1년 전부터 S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44.여)씨는 "붐벼야 할 저녁에도 손님
이 거의 없어 몇몇 가게는 아예 문을 닫았다"면서 "우리도 장사가 안돼 일하던 아주
머니에게 당분간 쉬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불법체류자 중 출국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대개 시골에 내려간 것
으로 들었고, 나머지는 집에 들어앉아서 안 나오겠다고 하더라"라면서 "다들 전화카
드를 잔뜩 사서 어딘가로 도망하거나 숨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체류 3년 이상 4년 미만인 외국인들은 출국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
다"면서 "우리 조카도 3년이 넘었는데 과연 재입국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 한참 고민
하다가 일단 출국했다"고 덧붙였다.

    `엑서더스'의 흔적은 부동산 업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해 온 50대의 백모씨는 "단속 얘기가 나오기 전까진 방
이 꽉 찼는데 요새는 15% 가량이 비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한 집에 방이 보통 10∼
20개 있는데 그 중 1∼5개가 비어 있다"고 엄살을 떨었다.

    월세 및 전세방을 내주고 있는 60대 아주머니는 "이제는 방을 찾는 사람이 하나
도 없다"면서 "방세를 안 내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사라진 사람들도 많아 속상하다
"고 말했다.

    ◆ 숨고, 도망하는 불법체류자 = 정부의 단속방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는 불법을 감수하고 체류하기로 했다.

    뾰족한 대책은 없지만 일단 집에 숨어서라도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고 혹시 걸리
면 그 때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딱한 사정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조선족동포도 있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 출신으로 한국 체류 7년째인 김모(4
3.여)씨는 "그간 고향의 시아버지가 당뇨로 고생하면서 병원비를 대느라 돈을  제대
로 못 벌었다"며 눈시울부터 붉혔다.

    김씨는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남은 애들 뒷수발이라도 할  수  있게
딱 1년만 더 있게 해 주면 얼마나 고맙겠냐"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함께 왔던 남편은 지난 5월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됐다"면서 "지금
은 인천에서 공사일을 하고 있지만 단속이 심하면 집에 숨어지내는 수 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중국동포 정모(46)씨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넘었는데 단속 때문에 겁이  나
일은 못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면서 "단속을 어떻게 피할지 별 대책은 없지만  돈
을 못 벌었으니 귀국을 못할 수 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정씨는 또 "떼돈 벌어갈 욕심은 없고 조금 모아서 부모님이랑 자식들이랑  나중
에 생활비로나 쓰고 싶다"면서 "얼마나 숨어 있어야 할지 몰라 고향에 생활비도  안
보내고 임시로 먹을 것을 사다놓고 집에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김모(32.여)씨는 "1천만원을 내고 산업연수원생으로 왔는데 소개해 받
은 회사 월급으론 몇 년을 일해도 빚을 못 갚을 판이어서 결국 불법체류자가  됐다"
면서 "보름 전 다니던 식당에서도 불법체류자니 나가라고 해서 나왔는데 가진  돈마
저 없어 막막하다"고 딱한 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는 또 "투신자살한 외국인 노동자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
른다"면서 "마음 같아선 사람 대우도 못 받는 이곳을 떠나 고향에 가고 싶지만 고향
의 나이 드신 부모님과 동생들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악몽만 꾼다"면서 "이젠 빚을 대충 갚은  만
큼 조금만 돈을 더 벌어 돌아갈 수 있게 한국 정부가 봐줬으면 좋겠다"고 정부의 선
처를 호소했다.

    sisyph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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