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고조선 역사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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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고조선 역사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 정리=강성봉 기자
  • 승인 2009.09.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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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지난 4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성삼제 과장이 ‘고조선과 청동기문명’이라는 주제로 행한 118번째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성삼제 교과부 과장

많은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에 의한 고조선 건국을 부정하는 근거로 청동기문명과의 연관을 들고 있다. 한반도는 BC 10세기에 청동기시대에 들어가는데 국가는 청동기문명 단계에 건설되기 때문에 BC 24세기인 기원전 2,333년에는 국가가 건설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의 건국은 신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학자들은 한반도 지역이 기원전 4,000년 무렵부터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의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은 중국학자들에 의해 확인된다.

중국학계는 요동반도일대의 원시문화 유적과 고인돌 무덤을 분석해 이 지역이 기원전 5,000년 무렵 청동기시대에 들어섰다고 발표했다.

최근의 국내의 연구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 문명에 관한 비교적 최근의 연구결과가 반영된 ‘동북아 청동기시대 문화연구’를 보면 “청동기시대는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5세기경에 이르러, 만주에서는 이보다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고조선의 발상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 요서지역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고조선이 건국된 기원전 2,333년은 신석기시대여서 단군의 건국 기록은 역사가 아닌 신화’라는 지금까지의 주장은 논리적 근거를 잃게 된다.

사실 고조선 개국이 역사냐 신화냐 하는 논쟁은 유구한 우리 역사에 비춰보면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조선 개국 이래 대한제국이 끝나기까지 500여년 동안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과 황제, 문무관료, 사대부들은 물론 시골에 사는 초동목부에 이르기까지 단군조선을 포함해 고조선 역사에 대한 인식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모두 실제의 역사로 알고 있었다.

고조선 역사에 대한 학자들과 일반인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청동기유물에 대한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조선 역사 말살 정책으로 ‘국가는 청동기 이후에 성립된다’는 논리를 주입하고 한반도에 청동기 문명이 유입된 것은 한사군 설치 이후라는 논리를 폈다. 이 역사학의 최신이론을 받아들인 조선학생들은 돌로 농사짓고 사냥하던 석기시대인 기원전 24세기에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역사기록을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일본은 수천년 동안 내려온 역사인식을 ‘청동기’ 하나로 단번에 ‘허구의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학문의 이름으로 휘두른 칼에 잘려 나간 고조선 역사의 후유증은 해방 60년이 지나간 이후에도 고스란히 교육현장에 남아 있다.

4천억원을 들여세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버금 갈 정도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박물관이다. 그 박물관내 고고전시실 고고학 연표에는 고고학적으로 완전하게 입증되지 않은 중국의 고대국가인 상(商)과 하(夏)나라는 표기하면서도 우리나라인 고조선은 빠져 있다.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은 독립전시실까지 두면서도 고조선은 독립된 전시실이 없이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전시실에 함께 전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이 ‘청동기 시대에 국가가 성립하는데 기원전 2,333년은 석기시대이므로 이를 고고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인식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의 하나로 고인돌이 있다. 전세계에 고인돌은 약 7만기 정도 있다. 그 중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전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그만큼 청동기 문명이 발달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의 다양성만 가지고 따진다면 우리나라는 유물이 많기로 소문난 대영박물관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보기에도 멋진 비파형동검,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여러꼭지잔줄무늬거울, 현세와 천계를 연결해 주는 뜻으로 만든 팔주령, 쌍두령은 한국이 청동기의 나라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특히 숭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여러꼭지잔줄무늬거울은 직경 21센티미터 안에 0.3밀리미터 간격으로 1만 3천개의 가는 선을 넣은 매우 정교한 제품이다. 학자들은 같은 시기 어떤 나라도 이처럼 섬세한 청동기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한다.

청동기문명이 발달했었다는 얘기는 청동기 문명을 기초로 일찍이 국가가 건설됐을 가능성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인돌과 청동검이 고조선 역사를 밝혀줄 중요한 유물이라면 ‘환단고기’는 그 동안 밝혀지지 않은 상고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문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기간 특정 종교에 의해 전승되었다면 많은 가필과 윤색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원형도 그만큼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환단고기’는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신라 문무왕릉비의 상단 비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신라왕들의 계보가 적혀 있는데 고조선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이 비석을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이 비석에 신라왕들의 계보가 적혀 있고, 고조선의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단서가 있다는 것이다.

고조선 역사논쟁은 인위적으로 끝내고자 한다고 해서 마무리될 수 있는 논쟁이 아니다. 치열하게 논쟁하는 과정이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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