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산가족 상봉 방식 달라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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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산가족 상봉 방식 달라져야 ”
  • 신승철 본지 편집위원·정신과전문의
  • 승인 2009.09.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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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 본지 편집위원정신과전문의
이산가족 추석 상봉행사가 오는 9월 말쯤 재개된다는 소식이다. 이 행사가 시작된 지 어언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상봉 신청자는 12만 7천명. 그간 신청자 중 불과 1천600명밖에 상봉을 못 했다(신청자의 가족포함 상봉자 총 인원은 2만 1천여명). 그 신청자 중 4만명 정도는 이미 고인이 된 것으로 집계된다. 노령화를 고려할 때 향후 7~8년 정도면, 그 상봉의 맥도 끊어질 듯 가물가물하다.

상봉이 없는 것보다는 계속 이루어지는 게 그나마 바람직한 모양이다. 이번에 재개가 된다하니 다행이다.

하나 과거 10년처럼 같은 방식의 부분적 처방으로 반복되다 보니, 그 의미가 예전 같지 않다. 상봉 관련 물적 지원을 들여다보니, 신청자 1인당 10억원 가량 들어갔다는 추산도 나온다. 성과에 비해 씁쓸한 기분이다.
헤어진 지 60여년 지나 추석 선물처럼 고대하던 가족을 상봉하게 되면,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그러나 곧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하니, 다시 재이산의 아픔을 겪게 된다. 만난 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목멘 소리도 간혹 들어봤다. 첫 상봉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몇 가지 추억을 되살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언제 다시 봐도 정겹고 눈물 자아내게 하는 광경이었다.

하나 그 가운데 느닷없이 ‘그저 수령님 덕분에 잘 살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측은한 생각에 등이 오싹해졌던 기억도 난다. 그런 분위기가 감돌면, 남측 가족들은 주위를 의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감지덕지였다.

상봉 후 시간이 흐른 뒤, 대부분 마음의 고통을 오래도록 느껴왔다고 토로한다. 돈도 넉넉히 주지 못해, 우리만 편하게 사는 것 같아, 마음의 빚만 잔뜩 쌓였다. 잘 산다는 선전성 얘기를 들었지만, 못내 가슴이 아리다.
재이산의 아픔도 컸다.

만남 후 오히려 화가 더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리움과 한(恨)이 더해져서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았다고 자책하는 분도 더러 있었다. 여동생을 봤는데, 큰 누님보다 더 폭삭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한데도 수령님 덕에 행복하게 잘 지낸다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상봉을 계기로, 그나마 기대했던 북에 대한 환상마저 아예 없어졌다는 분도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북으로 돌아갔던 형님이 1년도 안 돼 타계했다는 소식이다. 남쪽에선 그 후 마음의 병을 앓아 소리도 없이 끙끙 앓다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종종 들려온다. 상봉 전후로 가족들은 기대와 희망의 긍정적 감정을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체로 비탄과 자책, 후회의 부정적 감정들이 교차되곤 한다. 급성 스트레스에 대한 심리적 과부하가 걸린 탓이다. 노인들은 이에 더 취약하다. 2세 자녀들은 갈수록 그 감정이 무덤덤해진다.
상봉의 패턴도 이젠 좀 달라져야겠다.

북의 선처에 마냥 따라가거나, 정치적 쇼의 성격에서 벗어나야 된다.

세계인권선언 제16조3항이나, 제네바 협약 제 74조를 늘어놓지 않아도, 이산가족의 문제는 기본적 인권의 문제다. 애초부터 힘들더라도, 생사·거처 확인 → 서신교환 → 상봉이나 방문 → 재결합(국제 적십자사 방식)의 절차를 밟아야 했다. 북에 대한 물적 지원 같은 문제도, 이런 절차에 따라, 상응하는 대책이 있었으면 나을성 싶다.

아직도 상당수 이산가족이 아예 상봉신청조차 안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지해야 한다.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 소수의 만남뿐이어서 그 기다림에 진작에 무기력증을 느껴, 그저 관망하는 자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납북자·국군 포로의 문제도 계속 제기돼야 한다. 이들 역시 이산가족이다. 이산가족의 생사·거처 확인이 먼저 이루어지도록 촉구해야 된다. 그게 소수의 상봉보다는 8백만 이산가족의 마음을 더 넉넉히 해주는 일이라 본다.}

상봉의 광경을 볼 때마다, 마치 남·북의 인질들이, 무슨 조건을 내걸고 정치적 성과를 낸 냥 선전하는 인상이 짙었다. 이런 식의 반복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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