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작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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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작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 오니바
  • 승인 2002.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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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리에 사는 한국인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강렬한 경험이 하나있지요. 바로 빠리에 처음 도착하기 전후에 겪게되는 겪게 되는 갈등과 설레임일 것이다. 이 글은 이시기의 느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편집자   오니바 108호   2002/12/22

[1] 삶은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보물찾기와 같은 것이다
파랑새를 찾으러 떠났던 아이들이 긴 여행 끝에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얘기는 어릴 때부터 늘 들어온 식상한 얘기였다. 하지만, 멀리 이국 땅까지 행복이라는 것을 찾으러 온 내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2]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온 나라가 붉은 열기로 들썩이던 6월. 그 6월엔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애국자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은 내 마음을 고동치게 했던, 열병을 앓듯 모두가 하나만을 바라던 한 달이었다. 그러나, 난 그 6월에 유학길에 올랐다. 무언가에 홀렸던 것일까. 수속을 위해 일사천리로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는 그저 그 일만이 내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내게 그 외의 모든 것은 모두 2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붉은 물결, 그 열병 역시..이제야 난 자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나를 그토록 추동한 동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물론 그 때 내가 그렇게 추종하던 그 자유와 동경 아래에 자리하고 있던 외로움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출국장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벌써 약해지고 있었다. 용감하게 나의 길을 개척하겠노라, 무슨 영웅담을 늘어놓듯 부모님을 설득하던 나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날 배웅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 때부터 누구도 꺾을 수 없으리만큼 공고했던 내 결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가까스로 들어선 출국장 안에서 나의 시야는 자꾸만 흐려지고 있었다. 차마 부모님 앞에선 흘리지 못한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그 순간, 비행기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걷던 그 통로가 너무나도 길었음을 기억한다. 가까스로 앉은 비행기 안에서 난 나를 쉬게 할 책 한 권에 내 정신을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읽다 덮어두고, 잠을 청하고, 다시 일어나 읽고 얼마나 그렇게 반복했을까. 난 어느새 내 마음만큼이나 답답한, 흐린 날씨의 빠리 하늘 아래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게 훅 끼쳐오는 눅눅하고도 낯선 공기, 코를 찌르는 갖가지 향수냄새가 이 곳이 내가 태어난 곳과는 다른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빠리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RER(빠리 교외선)를 타고 지나는 동안 난 그제서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내 눈을 가득 채워오는 낯설은 풍경들, 무언가 눅눅한 공기로 둘러싸인 듯 습한 공기를 느끼며,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는 바깥 풍경 덕분에 창으로 비춰오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그들의 무표정함을, 나와는 다른 언어로 서로 소통하는 사람들을..그리고 이내 그들과는 다른,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보았다. 나의 결정과 생각들이 얼마나 내게 힘을 줄 수 있을까. 난 무얼,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친구들과 웃으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 함께 앉아 있어도, 그저 주변을 빙빙 맴도는 나.. 그 무렵의 나의 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 때의 난, 이미 외로움과의 타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3] 외로움을,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저녁 산책길..
햇살이 저만치 멀어져 갈 때쯤이면 난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서곤 했다.
한국에서는 미처 만끽하긴 힘든, 그네들의 사고방식이 담뿍 묻어나는 여가 생활법이 바로 산책이었다. 잔디밭에 앉아 또는 누워 식사를, 카드 놀이를, 포도주를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 가운데서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내겐 위안이 되었다. 그 시간만큼은 나 또한 여유라는 것을 만끽하는 빠리지엔느일 수 있었으니.

어느날 난 여느 때처럼 나선 산책길에서 한 가게 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화분들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수많은 허브들이 저마다 같은 듯 다른 빛깔과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산책길을 지나며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던 발코니의 꽃들을 못내 부러워 했었던 기억 때문일까? 선뜻 하나를 들어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허브는 내 방 창가에 자리를 잡고는 나와 동거동락을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내게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깜빡 잊고 며칠 물을 못주면 탈진한 듯 이내 고개를 숙여 버리고, 햇빛이 인색한 날이면 여지없이 노란 잎사귀를 보였다. 참 오랜만이었다. 그런 느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무언가를 돌봐야 하는, 나의 손을 타고 싶어하는 존재에 대한 느낌.
외국에 있으면 때론 지극히 평범한 느낌도 생경하게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난 내 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화분과 색다른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통은 그 동안 내 안에 있던 문제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존재감의 부재 이것이 내가 찾아낸 나의 문제였다.난 가만히 나의 생활들을 뒤돌아 보았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루종일 긴장 상태-이방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길을 걷는 것조차도 긴장하게 된다-로 거리를 다니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였다. 어두컴컴한, 내가 꼭 스위치를 눌러 빛을 부여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나의 작은 방, 그것은 때때로 나를 숨이 막힐 듯한 고독으로 내몰곤 했었다. 그럴 때면 난 늘 따뜻하고 환했던 나의 집, 가족들의 웃음소리, 자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늘 투닥거리던 나의 동생을 그리워했다. 어쩌다 옆집에서 스며오는 따뜻한 온기라도 느낄 새라 꼭꼭 창문을 걸어 닫곤 했던, 나. 그렇게 알 수 없는 결핍에 대항하는 방식은 맞서기보단 피하기였고, 그건 그저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어느새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렇게 내 맘 깊숙이 자리잡은 가족이라는 존재. 난 그 존재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나를 방어하기 위한 일종의 오기를 부렸다. 그러한 소통을 통한 깨달음으로 내방의 새로운 식구는 그렇게 조금씩 내 결핍을 치유하고 있었다.

[4] 커다란 창문에 가려 햇살을 못 받기 때문일까?
하루하루 자꾸 늘어가는 노란빛의 잎들이 안쓰러워 허브를 창가에 내어놓게 되었다. 사실 창밖에는 화분을 둘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약간의 경사가 진 창턱은 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되기 쉽상인 구조였다. 하지만 나름의 정성으로 화분에 빛을 쐬여주려 노력했다. 어느 날 난, 내 방 밑의 작은 정원- 정원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그저 풀숲이다 싶을 만큼 방치되어 있는-에 떨어진 화분을 발견했다. 떨어진 화분은 이미 두 동강이 나있었다. 설마..설마 하던 일이 그제야 벌어졌던 것이었다.

그 때부터 난 화분 구조 작전을 위해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작전의 가장 큰 난점은 그 작은 정원에 잠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원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우리 식으로)작은 공터에 가깝기 때문에 길 쪽으로 난 작은 사무실을 통과해서 가야 했다. 대부분의 정원은 돌보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말끔히 정리된 정원이 주변에 부지기수였는데 하필 내방 앞의 정원은 그 모양이라는 게 늘 불만이었다. 암튼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생각으로 서둘러 내려갔지만, 공교롭게도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니까..라고 나를 위로하며 난, 내일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난 화분을 집 안으로 들일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내려가 초인종을 눌러도 사무실엔 인기척조차 없었다. 꼼짝없이 그렇게 안절부절 며칠을 보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난 하루하루 내 방에서 쨍쨍한 햇살에 무방비로 노출된, 불안정한 상태로 누워있는 식물을 봐야 했다. 벨을 눌러도 기척 없는 사무실을 계속 지켜본 지 3일 정도 되었을까..그제야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바캉스라서 사람이 자주 없다고 했다. 여타의 대답도 내겐 그저 다행이다 싶었다. 난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비로소 사무실을 가로질러 정원으로 갈 수 있었다. 식물의 상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여름이라, 건조하고, 강한 햇빛에 그대로 있었던 탓인지, 그 풍성하던 잎들이 반 이상 말라 있었고 게다가 많은 줄기가 꺾여 있기까지 했다. 얼마 안되지만 남은 잎들을 수습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잎들을 정리하고는 좀 작긴 하지만 집 안에 있던 화분에 다시 심어줬다. 역시 아직은 안쓰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시작된 회생을 위한 노력들..얼마나 그랬을까, 난 예의 초록빛을 함빡 머금은 싱그러운 잎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5층 창가에서 떨어져, 작열하던 태양 아래에서 하얀 뿌리를 드러내며 헐떡거리던 허브는, 지친 몸을 추스리고, 새싹까지 돋우는 모습으로, 내겐 한없이 멀리 있을 것만 같던-막상 그것을 찾아 이 곳까지 와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순간 내게 익숙했던 공간에서 튕겨져 나온 듯한 느낌으로 힘들었던 나를, 난, 창가에 떨어졌던 그 모습에서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허브를 바라보며 안쓰러워 하는 내 모습이 멀리 이국 땅에 있는 나를 걱정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으로 치환되었다. 그렇게 난, 이제는 내가, 내 자신을 추스려야 할 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여 떠난 유학길에서, 난 많은 고민들로 힘든,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건 내가 진정 원했던 생활이 아니었음을..깨달은 걸까.
이제야 난, 나를 추스려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5] 이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이 벌써 온건가?
어젠 집에 오는 길에 화원에 들러 분갈이용 흙과 조금 더 큰 화분을 사왔다.
나름의 부지런으로 작은 조약돌들도 주워다 두고 인터넷을 뒤져 화분갈이에 대한 정보도 얻어 두었다. 아마 더 든든한 삶의 터전을 제공할 수 있을 거 같다.

[6] 나의 보물찾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삶은 예기치 않은 곳에 행복을 숨겨두고 있는 보물찾기와 같은 것이었다. 난,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릴, 내가 찾아내야 할 또 다른 보물을 찾아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어떤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 그저 계속될 나의 소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의 보물찾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 이현경 어학과정 이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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