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울먹이는 중국동포타운 가리봉, 무너지는 ‘코리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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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울먹이는 중국동포타운 가리봉, 무너지는 ‘코리언드림’
  • 김용필
  • 승인 2003.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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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울먹이는 중국동포타운 가리봉, 무너지는 ‘코리언드림’
11월 17일 불법체류 외국인 집단단속을 앞두고, 중국동포타운을 형성해 활기가 넘쳤던 가리봉을 떠나는 동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에서 더 있으면서 돈을 벌어야 되지만 너무 불안해서 떠나기로 했다”고 짐을 꾸린 중국동포 부부는 쓸쓸히 가리봉 7호선 남구로역 방향으로 갔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지만 자진출국 만료일인 11월 15일 이내에 전세금, 밀린 월급 등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동포들도 있다.  
흑룡강에서 온 김정자(45)씨 부부는 11월 15일 출국항공권을 예매해놓고 두 달 전부터 1천만원 전세보증금이 빠지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계약자가 나타나지 않아 울상이 되었다. 계약만료일이 되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리봉은 동포들이 주로 유동인구인데, 처음 한국을 찾은 중국동포들이 1천만원 전세보증금이 들어가는 방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길림에서 온 이충산씨도 97년도에 한국에 입국하여 이번에 강제추방대상이다. 이씨는 11월 15일날짜 선박표를 예약해 놓은 상태이지만, 건설회사로부터 2백50만원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돈을 받아야 출국하는데, 회사에서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만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출국날짜를 연장해주겠다는 공식적인 발표도 없기 때문에 이씨는 15일 이내에 출국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며 며칠동안 불안속에서 술만 마셨다.
이런 상황속에서 11월 12일 법무부는 “17일부터 합동단속을 강력하게 벌이겠다”면서 “일부 단체나 개인드이 불법체류외국인을 은닉하거나 선동하여 단속을 방해할 경우, 공무집행 방해죄 등을 적용하여 공권력 확립 차원에서 엄정히 대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자진출국 만료일인 11월 15일에 임박하자 가리봉에서는 예전보다 세 배 이상으로 방이 비어간다고 이곳 부동산 업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체류 4년 이상자로 강제추방대상이지만, 빚도 못갚고 이대로 중국으로 갈 수 없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지방으로 잠적하고 있다.
서울에 있어봐야 고용주들이 사용하지 않고 또 집중단속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적한 시골에 가서 일하다가 기회를 봐서 다시 올라오겠다고 하는 동포들도 있다.
많은 동포들이 전화로 “정부정책이 변화된 것이 없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동포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단속반에 잡히며 그 자리에서 동맥을 끊고 자살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오려고 시도하다 4번을 실패해 엄청난 빚을 지고 겨우 한국에 온 동포였다.
가리봉은 올해 3월 자진신고기간이 끝나자마자 지금과 같은 진통을 겪었다. 고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가리봉 식당가에서 고향친구 친지들과 어울려 이야기 하던 중국동포들이었다. 하지만 11월 17일 이후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집중단속을 펼치겠다는 정부의 완고한 정책이 변함이 없자 가리봉을 떠나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국인 한국이 중국동포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정적인 정책이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했지만, 이젠 중국동포들도 더 이상 한국정부에 기대할 것 없다 판단했는지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는 동포들의 원망 섞인 말들이 서슴없이 나온다.
자진출국 하는 동포들 중에 꼭 4년 이상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합법화 대상이지만 “한국에 와서 스트레스만 많이 받았다”며 마음 편히 살겠다며 출국하는 동포도 있었다.    
지난 10월 합법화신청 기간동안 “11월 15일 이후부터 정말 한국정부가 동포를 강제추방합니까?” 수차례 물어오고 또 가리봉거리를 돌아다니며 “여기가 정말 우리 아버지의 고향땅이냐? 내가 강제추방을 당하면 중국 가서 한국인을 모조리 박살내겠다”며 고국에 대한 원망과 한에 사묻힌 동포청년도 더 이상 가리봉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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