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한글은 지배계급 물갈이를 위한 통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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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한글은 지배계급 물갈이를 위한 통치문자
  • 강성봉
  • 승인 2009.06.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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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지난달 22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정광 우석대학교 교수가 ‘한글발명의 재고’라는 주제로 행한 제111회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 지난달 22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열린 ‘제111회 희망포럼’에서 정광 우석대 교수가 강연했다.

필자는 ‘몽고자운 연구’라는 책을 집필하여 현재 인쇄중이다. ‘몽고자운’은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칸이 라마승 파스파를 시켜 만든 파스파문자로 중국 한자의 표준음을 표기한 운서이다.

지난해 한 학술대회에서 필자가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창적인 글자라는 내용을 발표해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적이 있다. 동서양의 언어학계에서 한글이 파스파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만들어진 문자라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그러나 국내학계는 우물안 개구리 격으로 훈민정음이 전례 없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오늘 필자는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점에서 독창적인가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파스파문자는 아직도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이 많은 불가사의한 글자이다. 몽골이 유라시아대륙의 동부를 모두 점령한 이후 만들어진 이 문자는 원이 망한 뒤 명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가 적고 그 연구도 매우 지지부진하다.

그러면 쿠빌라이칸이 파스파문자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쿠빌라이는 중국을 정복한 후 원나라를 세우고 원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파스파문자를 만들었다. 쿠빌라이만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중국을 정복하거나 침공해 나라를 건설한 북방민족은 나라를 건설한 후 대부분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요나라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거란문자를 만들었다. 금나라 태조 아구타는 여진문자를 만들었고, 유라시아대륙의 초원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몽고 위그르문자를 만들었다.

이들 새로운 문자는 중국어를 배우기 위한 한자 발음기호로서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을 물갈이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수당 이래 모든 관리의 임용이 과거시험을 통해 이루어졌다.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면 지배자들은 새 문자를 만들어 새 왕국의 추종세력과 그 자제들에게 교육하고 과거시험을 통해 이 문자를 학습한 인물들을 선발하여 관리에 임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지배계급을 물갈이 했고 신구세력의 세력교체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통치상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문자를 통치문자라고 한다.

훈민정음의 창제도 동일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자마자 한자의 표준음을 우리말로 표기한 운서로 동국정운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훈민정음을 시험과목으로 채택해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 데 활용하였다.

훈민정음을 제작 반포한지 불과 3개월만인 세종 25년(1446) 9월에 세종은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관리 선발시험(取才)에 훈민정음을 아울러 치르게 하라. 비록 뜻과 논리가 통하지 않더라도 글자만 합할 수 있으면 뽑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세종 26년 4월에는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자제들을 특채하겠다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앞서 세종 23년 윤7월의 교지에 “함길도의 자제로서 내시(內侍) 다방(茶房)의 지인(知印)이나 녹사(錄事)에 응시하는 자는 서(書) 산(算) 율(律) 가례(家禮) 원(元) 속육전(續六典) 중 세 과목에 합격하면 뽑으라”고 하였으나, 세종 26년에는 “이과(吏科) 선발시험에 6과목에 다 합격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점수가 많으면 뽑을 것이며, 함길도 자제를 삼재지법(三才之法 ; 세 과목만 붙으면 뽑는 법)으로 뽑는 일은 다른 도의 사람보다 특별히 우대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함길도 자제로서 이과에 응시하는 자는 다른 지역의 예에 따라 6과목을 치르되 점수를 갑절로 주라. 다음 식년시부터 시작하되, 먼저 훈민정음을 치르고 합격한 자에게만 다른 과목을 시험보게 할 것이며 각 관아의 이전(吏典) 선발에도 아울러 훈민정음을 치르도록 하라”고 명령한다.

이처럼 세종은 각 관청의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관리 선발시험에 훈민정음을 부과함으로써 지배계급의 물갈이를 시도하였다.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의 예에서처럼 한자음을 기록하는 발음기호로서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질서 수립을 위한 통치문자로 활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훈민정음 제정에 파스파문자가 미친 영향은 문자제정의 발상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음과 모음의 선택, 자음자와 모음자의 구별, 음절 단위의 모아쓰기, 한자음의 발음전사 등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로부터 받은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파스파문자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져 갑자기 나타난 글자는 아니다. 파스파문자는 티베트문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훈민정음의 글자형태까지 파스파문자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 따 만들었고, 모음은 천지인 삼재(三才)를 본 따 만들었다는 말을 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글의 독창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다른 문자들이 가지고 있는 결함을 모두 극복하고 가장 합리적인 발전된 문자를 만든 것은 역시 세종대왕의 위대함이요 우리 민족의 자랑인 것이다. 

정리=강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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