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세부적 창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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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는 ‘세부적 창의성’이 있다
  • 조명진
  • 승인 2009.05.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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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진(아디아 컨설턴시 대표, 유럽연합집행이사회안보전문역)
우리나라 사람들의 세계적인 경쟁력은 손을 정교하게 사용하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수술 테크닉, 반도체 제작 기술, 만화 만들기 같은 분야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강점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세부적 창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인들과 비교해 한국인들이 어떻게 세부적 창의성을 지녔는지 살펴보자.

이탈리아는 비단 최고의 스포츠카만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최고의 수공예품으로 인정받는 바이올린인 과르네리(Guarneri)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 같은 명기의 제작에서도 그 우수한 창의성을 보여준다.

이런 현악기를 만든 이탈리아 사람들에 못지 않은 창의성이 한국인에게도 있다. 우리의 탁월한 손기술은 이탈리아 바이올린보다 천년 앞서 대가야의 우륵이 만든 가야금과 고구려의 왕산악이 제작한 거문고에서 보여진다. 게다가 정교한 손기술은 신라의 금속 공예와 고려청자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인의 섬세한 과학적 업적은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한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은 독일인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 이상 앞서 있다.

그러면 한국인이 이처럼 창의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인이 창의성을 가지게 된 이유를 생활습관, 음식, 그리고 언어 3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생활습관이란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젓가락은 유럽 사람들이 식사할 때 손에 쥐고 사용하는 포크와 나이프와 달리, 손가락을 움직여 음식물을 집는다.

특히, 한국의 스테인리스 젓가락은 중국의 길고 굵은 나무젓가락이나 일본의 매끈한 젓가락보다 무겁고 잡기가 힘들다. 즉 한국인들은 가장 사용하기 힘든 젓가락을 사용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손에 익은 스테인리스 젓가락은 반찬을 집거나 음식을 뜰 때 어떤 젓가락보다 정교하게 움직인다. 즉 한국인들은 세세한 정밀작업을 함에 있어서 이미 생활습관을 통해 손에 익히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환경에서 정교함을 요하는 수술과 반도체 제작, 그리고 만화 색칠 같은 일에서 탁월한 강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음식이란 측면에서 보면, 서양인들도 좋아하는 비빔밥, 김치, 불고기 같은 우리 음식은 온갖 양념을 적절하게 배합한 것이 공통점이다.

여러 가지 재료의 정교한 배합과 숙성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미묘함이 한국 음식의 특징인 것이다. 훌륭한 맛은 세부적 배합 비율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려청자의 제작에서 중요한 요소는 점토의 세밀한 배합과 세세한 온도 조절이다. 세밀함과 정교함이 담긴 작업 공정에 의해서 명품 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세 번째, 언어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의 세부적 창의성은 한국어의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어의 특징은 형용사가 세밀하게 발달한 언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세분화된 표현은 비단 형용사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명사 ‘Life’의 뜻을 한국어로 열거하면 ‘생명’, ‘삶’, ‘인생’, ‘생활’ 등의 다양한 뜻이 있다. 이 경우는 영어의 ‘Life’만이 아니고 독일어의 ‘Leben’, 스웨덴어의 ‘Liv’, 불어의 ‘Vie’, 스페인어의 ‘Vida’ 이탈리아어의 ‘Vita’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유럽언어는 한 단어로 여러 가지 의미를 다 담고 있는데 반해, 한국어는 상황에 따라 세부적인 단어로 나뉘어져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동사에서도 나타난다. ‘입다’라는 뜻의 ‘wear’는 한국어로 ‘쓰다’, ‘신다’, ‘끼다’로 세분화된다. 즉, ‘모자를 쓰다(wear hat)’, ‘구두를 신다(wear shoes)’, ‘장갑을 끼다(wear gloves)’ 등 구체적으로 다르게 표현된다.

또한 한글은 받침의 소리를 내는 종성해에 이중모음과 이중자음이 있기 때문에 알파벳 로마자보다 훨씬 풍부한 어휘와 세부적 의성어를 지니고 있다.

알파벳 로마자로 낼 수 있는 의성어는 700개 가량인데, 한글은 8천여개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한글은 유럽 언어보다 용도가 훨씬 더 세부적이다. 따라서 노벨문학상에 한국 작가가 아직 당선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서운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벨문학상을 결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 심사위원들이 번역된 한국작품에서 작가의 작품 세계와 표현의 세세한 차이를 알리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와 한글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어의 구성에 있어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결합은 독일어의 전치사와 명사의 결합처럼 기계적이다. 기계적이라는 의미는 단어의 조합이 레고장난감을 조립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두 나라는 모두 많은 부품을 복잡한 공정을 통하여 정교하게 조립하는 작업이 요구되는 자동차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 이다.

그런데 독일어를 비롯한 유럽언어의 단어 구성은 알파벳의 자음과 모음을 기차 칸 늘리듯 수평 나열하는 방식인데 반해, 한글의 단어 조합은 수평 나열식 요소와 함께 복층 건물을 쌓듯이 수직 복합식 혼합형을 띄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건설회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층빌딩을 시공한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가 세계 최고였던 조선 산업분야에서 이제 장보고와 이순신의 후예인 한국이 세계 최고를 차지했다. 한국이 조선업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한국인이 가진 세부적 창의성의 언어적 측면에서 찾아본다.

물론 바이킹의 배보다 장보고의 선단이나 나대용의 거북선이 층이 더 높고 정교하다는 점에서 조선기술에 있어서 유전인자(DNA) 요소가 한국이 세계 최강의 조선업 국가가 되는 데 기여했음은 자명하다.

한국인의 세부적 창의성이 생활습관과 음식문화 이외에 과학적인 우리말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우수한 말을 모국어로 습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랑이며 축복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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