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수출하자” 정치지망생 이종훈의 즐거운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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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수출하자” 정치지망생 이종훈의 즐거운 상상
  • 홍제표기자
  • 승인 2003.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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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심 생각보다 좋데요”
지난 10월3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서 몇 시간째 발품을 팔던 한 정치지망생이 소감을 밝혔다. 이종훈( )씨. 그는 한 달 전부터 마포주민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확하게는 내년 총선에서 마포을(乙) 선거구 출마를 목표로 지역 탐사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하루일과는 ‘걷기’. 하루 4,5시간씩 순전히 도보로만 지역을 훑다보니 삭막한 줄만 알았던 서울에도 훈훈한 정이 남아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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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그를 따라 대로변에서 살짝 접어들어간 서울의 뒷골목은 정겨웠다. 문방구 앞 구식 전자오락기에는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서너 명씩 달라붙어 오락에 정신없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겠다던 엄마와의 약속은 잊은 게 틀림없다. 몇 발짝 더 가니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선율이 이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도레미파…’하는 선생님의 레슨에 맞춰 건반을 누르고있을 고사리 손들이 보이지 않아도 귀엽다. 조금 있으면 달걀장수도 오려나 보다. ‘계란이 왔어요. 달걀이 왔어요’하는 낡은 확성기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온다. 이 모든 것들이 힘없이 사위어가는 가을햇살 아래 노란 낙엽들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평소에는 왜 몰랐을까?
“바쁘게 살다보니 그랬겠죠. 평일 이 시간대에 이렇게 한가하게 나다니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정말 그랬다. 그는 지도 한 장에다 디지털 카메라 한 대 들쳐 메고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뭔가 눈길을 끄는 곳이 있으면 수첩에 메모하고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그의 표현대로 ‘지역구 투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걷는 시간과 서있는 시간이 비슷했다.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속에서 ‘느림’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 사정은 정반대였다.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찬 지도가 그 증거다. 그는 이번 ‘투어’를 위해 정밀 지도를 새로 구입했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지도는 정확도가 낮기 때문이란다. 그 지도위에 동네 곳곳의 상점과 주요 건물의 위치, 전화번호, 이름 등을 꼼꼼히 기록하며 지역 특성을 파악했다.

이런 일을 한 달째 계속하다 보니 이제 세상의 민심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한다. 낙옆 하나에서 천하에 드는 가을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기를 좀 봐요. 틀림없이 문 닫은 집이에요. 간판은 아직 그대로지만 폐업한지 꽤 된 것 같아요. 대형 할인점이 늘어나니까 저런 작은 가게는 버티기 힘든 거죠” 무심코 걷는 줄로만 알았는데 머리 속으로는 생각이 꽤 많은가 보다. 남들은 흘려보낼 만한 문제를 잘도 짚어냈다.

그의 지적처럼 깊게 패인 불황의 상처는 작은 동네일수록 더 잘 드러났다. 셔터문이 굳게 내려진 상점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고 아직 영업중인 가게도 매상이 줄었다고 울상이었다. 그가 어느 동네수퍼 앞에서 지도를 펴놓고 이것저것 메모를 하고 있으려니 여자 주인이 불편한 표정으로 따진다.

“여기서 뭐 하세요. 구청에서 나왔어요?”
“예! 뭐 불법행위 안하나 조사 나왔습니다” 그가 짐짓 딴청을 핀다.
“우린 그런 거 없어요. 가뜩이나 장사 안돼 죽겠는데...”
“아이고 농담 좀 했습니다. 실은 내년에 이 지역에서 출마해보려는 사람인데 지역 조사 나왔습니다. 요즘 어려우시죠?”

이내 경계심은 풀렸지만 ‘정치’라는 말에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관심 좀 가져달라는 부탁에 건성으로만 ‘알았네’ 하고는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돌아선 등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썩은 정치판에는 뭣하러 들어 가려느냐는 듯.

사실 그의 정치도전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매우 의외의 일이었다. 그는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18년동안 국회 연구관으로 일해왔다. 재외동포 문제를 비롯해 외교통일과 언론, 정치분야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마련한 중견 학자다. 그런 그가 현실정치의 흙탕물에 발을 담그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별 내색은 안 했지만 내심 못마땅한 눈치였다. 더구나 “연금은 받게 해주겠다”고 아내에서 약속까지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2년만 더 채우면 연금을 받을 수 있을텐데...

“2년후면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 그때는 도저히 용기가 안날 것 같았어요”
고민이 많았을 법 했다. 그는 연구관 생활을 하면서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과 총리실 전문위원, 경실련 정책위원, 재외한인학회 부회장, 재외동포신문 편집위원장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최근에는 국정경영원이라는 연구소로 설립했다.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 같은 정치인 양성기관으로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백면서생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현실정치가 어디 그리 만만한가. 이른바 ‘실탄’없이 어떻게 전쟁을 치른다는 말인가. 그가 가진 실탄은 집 한 채에다 퇴직금 얼마가 전부다.

“돈 안 쓰는 선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예비 출마자들끼리 모임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 방법론을 책으로 출판할 계획입니다”

지역구 투어도 그런 아이디어 중의 하나다. 미국의 한국계 의원 신호범 씨의 사례를 벤치마킹 했다. 신씨는 초선 도전 당시 신발 세 켤레가 모두 닳아 없어지도록 지역구를 누볐다. 주류 백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편은 몸으로 때우는 것이었다. 이 씨의 신발이 아직 멀쩡한 것을 보면 그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꽤나 먼 것 같다. 하지만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었다.

“주민들과의 ‘스킨쉽’을 기르는 데는 이것처럼 좋은 게 없어요. 요새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아는 체 하기도 하고, 차 한 잔 건네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가 한 번은 이름을 밝히길 한사코 거부하는 팔순 노인에게 스킨쉽을 시도했다. 좀처럼 입을 열지않던 노인이 한참만에 내뱉은 한 마디는 “정치인들, 다 도둑놈이야. 하지만 예로부터 도둑놈이 없던 때가 있었나? 할 수 없는 거지 뭐” 그렇게 대화가 끝나버리는 줄 알았더니 그가 용케 노인의 마음을 열었다. 화제를 돌려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더니 별 별 얘기를 다 들려준다. 헤어질 무렵에는 아쉬움에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했다. 결국 노인으로부터 나중에 밥 한 끼 사겠노라는 약속까지 얻어냈다. 오히려 유권자에게 밥을 얻어먹게 된 셈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홍보는 분명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시시콜콜 챙기는 것도 좋지만 명색이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은 정치인이라면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마치 시 의원에나 출마하는 사람처럼 군다는 조언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활정치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생활에는 국가정책이 다 녹아있기 마련입니다. 분리된 게 아니죠. 지금까지는 정치인 개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국민을 이용해왔는데 앞으로는 그 반대가 돼야 합니다. 국민의 꿈을 정치인이 대신 꾸어줘야 한다는 것이죠. 정치인은 국민의 희망을 실현시켜주는 ‘서비스 맨’일 뿐입니다”

이런 정치철학은 그의 최근 저서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에 잘 나타난다. 정치 관련서 치고는 내용이 쉽고 읽기가 편해 그가 즐겨입는 옷처럼 캐주얼하다. 이 책에서 그는 “정치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수출하자”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편다. 우리나라는 수출을 해야 먹고사는 국가인데, 정치라고 수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치 제도와 문화, 관행을 수출할 경우 막대한 부가적인 파생소득이 생겨나는데, 미국정치가 한국시장 초기진출에 성공함으로써 지금까지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수익을 거둬가고 있다는 게 그 반증이다.

그렇다면 과연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는 우리 정치가 선진화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상상으로 지어낸 것이라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IMF 이후 기업이 자기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했듯 정치권의 개혁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확신이 행간을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래 한국사회에서 국회의원의 세비는 기업의 연봉제처럼 차별화된다. 입법 실적과 회의 및 표결 참석 건수, 보직 유무 등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이다. 이에 따라 의원입법이 급증했다. 실적에 따라 수당지급액이 갈리기 때문이다. 별도의 비자금 조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당이나 후원금에 목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대 국회의 의원입법이 연평균 200건 안팎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그 10배가 됐다. 가장 큰 피해자는 의원 보좌관이다. 일이 10배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좌관들은 세비 차등 지급이 국회 취직 이후 ‘최대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재외동포 문제 전문가가 재외동포들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언급을 빠뜨린 것이다. 그는 한때 재외동포당을 만들자는 주장까지 했었다. 마음이 바뀐 것일까?

“천만에요. 정치입문하면서 다른 직책은 다 버렸어도 재외동포와 관련된 것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만 출마하는 입장이다보니 선거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최근에는 잠시 접어둔 상태입니다. 하지만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면 국회내에 재외동포특위 같은 것을 만드는게 제 목표입니다. 재외동포 문제는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재외동포재단 신임 이사장에 이광규씨가 임명된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신임 이사장은 비 외교부 출신으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갖고있는데다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이 이사장을 도와 재외동포 문제 공론화에 기여했고 재단 설립에도 입안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과거 제 역할을 못해온 재단 운영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변화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 외교부 출신이 재단 이사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지만 그리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죠. 지금 정치권에 불어닥친 태풍도 변화의 몸부림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회 시스템이 바뀌는데 정치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저의 정치적 상상도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고 즐거운 현실로 나타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말입니다” (25.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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