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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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고함
  • 고개길
  • 승인 200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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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고함»을 쓰기에 앞서:

저의 아버님은 강원도 춘천군 사내면에서 태어났고 1942년에 가난에 시달리다 못에 나서 성장하셨던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만주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가슴 아픈 «6.25사변»과 함께 아버님의 귀향길은 영영 막히고 말았습니다.

몇 해 전 아버님은 반세기 동안 가슴속 깊이 묻혀두었던,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그 원을 끊지 못한 채 한 많은 세상에서 한을 품고 미련도 없이 무정한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님은 세상 떠나시는 그날 까지 저희에게 우리민족의 근본을 잊지 말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소학교(국민학교)에서 중학 고중까지 우리중국 조선족학교를 다녔고 저의 아들은 조선족소학교를 졸업하고 인근에 조선족중학교가 없는 연고로 지금은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놈이 우리글을 잃어버릴까 걱정되어 방학에는 조선족소학교교원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있으며 우리 글로 된 «흑룡강신문»을 주문하여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하신 아버님의 가르침에 저는 근 20년 우리 글로 우리 민족의 신문에 원고를 썼고 또 운수 좋게 재외동포문학상이란 영예도 안아보았습니다. 저는 우리의 아름다운 언어와 문자로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우리글을 쓸 것입니다.
머나먼 이국 타향에 있는 저는 또 월드컵 한국전 응원에도, 미선이 효순이 추모집회에도, «8.15평화통일대장정»에도 참가했습니다.

이상은 저의 가정에서 나름대로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했거나 하고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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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인에게 고함»과 함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요즘 중국동포들의 인터넷게시판에서는 «재외동포법개정»과 재한 중국동포들의 중국 국적 포기운동, 한국국적 되찾기 운동 등등에 대한 토론이 치열합니다.

사실 저는 «재외동포법»이란 무엇인지 «재외동포법»에 대해 뭐라고 적혀져 있는지 모르고 «재외동포법»을 개정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개정하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제 3국에서 돈벌이 하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 어쩌면 남의 일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국동포 3세, 4세들의 언행에 크나큰 충격을 받고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한 작가의 양심으로서 내가 이 일을 꼭 한국인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충격1).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유럽입니다. 이 곳에 내가 알고 있는 20대 중국조선족유학생이 있습니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 한국유학생 몇 명 있습니다. 그들은 가끔 한자리에 앉아 포도주한잔씩 할 때도 있었는데 한국유학생들이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하는 말에 그 조선족유학생은 “NO”했다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한민족인가. 나는 너희들과 같은 민족이 아니다. 한국 때문에 중국에 새로운 이산가족이 얼마이고 파산된 가족이 얼마인가 하며 말도 거칠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중국유학생동포의 전화를 받으며 이루다 말 할 수 없는 허전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한중수교 10년이나 되었는데 왜 날이 갈수록 우리와 고국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가? 이렇게 계속나간다면 중국동포와 한국사이의 그 혈연관계가 끝장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무서움과 두려움이 저의 전신을 감쌌습니다.

충격2). 며칠 전  저는 «재외동포법은 누구를 위한 법이여야 하는가?»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우의 충격이 주되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조선족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후 그에 단 리플을 보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번 일이(재외동포법개정이나 중국국적포기 운동이나 한국국적 되찾기) 그렇게 경솔하게 처리하거나 책임 없이 흘러 보내서는 일이 아님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글에 이런 리플이 하나 달렸습니다. “...저는 중국4세대 조선족입니다. 연변토종이죠. ...지금 한국에서 재외동포법 때문에 떠들썩하지만 손톱만큼한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경멸합니다. 왜 저런 한국인들이 우리와 같은 핏줄을 나눈 민족인지 부끄럽습니다. ...한국인과 한민족인 것이 수치스럽습니다.”
필자는 “한국인과 한민족인 것이 수치스럽습니다.”는 그의 말에 그렇게 말하면 반민족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것은 저의 글의 목적이 우리 서로 사이에 불화를 초래하고 서로 헛듣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언어가 과격했고 사용한 단어 또한 타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본의 아니게 당신에게 함부로 모자를 씌워 미안합니다. ...틀린 것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기 바랍니다...한 고개 두 고개 넘다보면 넓은 들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언젠가는 민족의 대화합이 있는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라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 중국4세동포는 이렇게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고개길님 제가 좀 과격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민족에 죄를 짓는 일이 아닌 줄 압니다. 민족에 죄를 짓는 이는 바로 우리 200만 재중조선족을 동포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님은 한국은 국민이 대통령을 선거한 민주국가라고 했습니다. 그런 국가에서 반민족적인 동포법을 제정된다면 뭘 더 말하겠습니까?...”
저는 이 중국4세동포의 말에 가슴이 찔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격한 그의 말 속에도 저는 그도 은근히 공정한 재외동포법을 바라고 있는 것을 보아냈습니다.
위험과 희망이 동반된 현재 중국 3~4세 동포들의 심리갈등입니다. 이 쪽이 아니면 완전히 저 쪽으로 돌아 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저는 우의 두 충격에서 이렇게 안일하게 자기의 가족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연 며칠 고민에 거듭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내일은 나를 위함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후대들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때 그 시절,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핍박에 의해 만주로 건너갔고 따라서 우리들에게 부모님의 고향에서 살수 도 없고 자유왕래도 할 수 없는 오늘의 불행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 망국노의 굴욕을 안고 있는 고국도 자기의 백성들을 돌 볼 수도 없었고 나라나 백성이나 자기의 권리가 없었습니다. 민족의 비극이고 수난이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세계경제력 7위에 도달한 민주의 대한민국이 동방에 우뚝 섰습니다.
대한민국이 식민국가인가요? 대답은 아닙니다. 민주의 나라, 주권국가입니다. 힘이 없었던 그때의 부모님-고국을 우리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가 낙후했고 경제, 군사 모든 것이 왜놈들에게 뒤졌기에 침략을 당하고 유린당한 것입니다. 결국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 민족으로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 세대들은 각성했고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식들의 교육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었으며 중국이라는 땅에서 조선족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우리말을 하고 우리 학교를 세웠습니다. 중국에서 몇십년을 살면서 중국말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부모님 세대들이 그 얼마입니까.
우리 세대들은 부모님의 본을 따라 지금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이산의 아픔을 참아가며 도시진출, 해외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으며 공부를 시켰고 또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의 후대들이 지금 공평하지 못한 재외동포법을 두고 아예 돌아서 버리는 그런 기미입니다.
저의 아들은 지금 15세입니다. 몇 년 후에 아들이 불평등한 재외동포법을 보고 “한국은 우리와 같은 동포도 아닌데 아빠는 왜 같은 민족이라고 저를 속입니까?”하고 중국에서 태어난 이 아빠에게 질문한다면 난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합니까?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또 다른 민족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 어려운 년대에도 허리띠를 질끈 졸라매고 우리를 공부시켰고 결국 중국이라는 56개 민족 중에서 문화 보급률이 가장 높고 대학생도 인구비례로 가장 높은, 우수하고 순수한 민족으로 일떠세웠습니다. 한국인들의 눈에는 이 것이 보잘 것 없는 실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이는 “한강의 기적”같은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은 만족은 아예 자기들의 언어와 문자를 거의 포기한 상태고 많은 이들은 한족으로 개족改族한 실정인데 반해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민족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힘겹게 몸부림치고 있으며 우리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말 속담에 십년 공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근 반세기동안 중국동포들이 대에 대를 이어 오늘날 까지 계승 발전시킨 우리민족발전사는 중국문화의 일부분이면서도 더욱이 우리한민족의 자산인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에 의해 더욱더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한번의 실수로 아예 그 귀중한 자산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십년 공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라 반세기 공 나무아미타불로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오늘의 잘 못된 이해타산과 선택으로 내일의 후대들에게 우리는 후회해도 만구 할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지구는 둥글게 생겼습니다.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다만 시대가 다를 뿐 역사는 항상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뭉쳐야만 힘이 되는 이때, 눈앞의 이익만 보고 공평하지 못한 소위 “재외동포법”이란 그런 졸작으로 세인을 속이려고 한다면 우리는 또 한번 과오를 범할 것입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도, 고건 총리도, 법무부 장관도, 국회위원도 모두 당신들의 아들딸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선택한 대통령이고 총리이고 법무부이고 국회가 아닙니까.
불공평한 “재외동포법”이 통과된다면 그 것은 단지 법무부나 국회위원들의 잘못이 아님을 아시가 바랍니다. 당신들의 아들딸들의 잘못에 당신들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겁니다. 한 것은 대한민국은 독재국가가 아닌 주권의 민주국가이기에 당연히 불공평한 “재외동포법”도 역시 대다수민중의 뜻을 담은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중국 4세 동포의 말이 귀전을 아프게 때립니다.
“어느 나라에서 동포법땜에 이렇게 떠들썩합니까? 세계 여러 민족 앞에 나서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어떤 한국 분은 우리가 한민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명을 내놔라 이겁니다. 어허 컥! 기막힌 발상입니다.”

월드컵 때 광화문에 나섰던 “붉은 악마”여, 미선이 효순이의 혼을 부르며 광화문 나섰던 “초불”이여, 그대들은 지금 어데 계십니까? 오늘 불평등한 재외동포법개정을 위해 또 한번 감동의 쉼표를 하나 찍어주십시오. 200만 중국동포는 한편이 된 당신들의 뜨거운 성원과 지지와 포섭에 또 한번 감동할 것이고 한민족의 탯줄을 타고 난 것을 두고 자랑으로 여길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항상 당신들의 한편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여기가지 쓰고 나니 또 고민스럽습니다. «한국인에게 고함»이라고 했으면 한국인에게 보여야 하는데 저는 한국인에게 보일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의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 바로 대한국민의 주민증이어야 합니다. 전 세계를 통하는 인터넷도, 전 세계에서 인터넷 보급률이 앞서가는, “세계를 행해”를 웨치는 대한민국의 게시판에서도 글 하나 올리는데도 국적을 묻고 비자를 신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우롱을 당하고 외면을 당하고 왕따로 몰리고 있습니다.
저에게 한국비자도 없고 한국주민등록증도 없습니다. 그럼 나의 이 글은 못난 오리처럼 조선족게시판에서 이 앓는 소리로만 되어야 하는가?

2003.11.6. 새벽 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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