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재단 이광규 신임이사장 취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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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재단 이광규 신임이사장 취임인터뷰
  • 최연구
  • 승인 200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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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외교부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재외동포재단 신임이사장으로 취임한 이광규 이사장을 만나 동포사업에 대한 생각과 포부를 들어보았다.
#그림3  외교부출신이 아닌 민간전문가로서 재외동포재단사업을 맡게 되었는데 소감은 ?
이광규 : 민간출신이란 것이 잇점이 될 수도 있다. 이쪽 제도권을 잘 몰라서 돈키호테처럼 실수도 할 수 있겠으나 눈치 안보고 의욕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좋은 조건이라 생각한다. 학계출신이지만 학계보다는 NGO의 지원을 많아 받았다. 실제 NGO 활동을 하면서 외국의  NGO를 많이 봤다. 외국의 경우는 NGO가 하는 일을 정부가 적극 후원해준다. 특히 외국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나서면 내정간섭이 되므로 NGO를 통해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NGO활동이나 외국과의 연대활동이 경험이 많으니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재외동포재단은 외교통상부 산하단체이므로 외통부의 간섭이나 통제 등 갈등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이광규 : 재단에도 외교부에서 파견나온 근무자가 있다. 이들이 재단사업을 감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협조해 준다고 본다. 모두가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일을 하는데 큰 차이가 있겠는가.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외교부 라인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NGO의 관계를 잘 조화하는 게 제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포, 정부, NGO의 삼각관계를 잘 구축해 나갈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정책을 비판하고 제안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 재야에서 활동할 때와는 다른 조건이 됐다. 오히려 외무부와 가깝게 지내면서 평소 생각을 주어진 범위 내에서 실현해 갈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동포강국인데, 우리민족에게 동포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이광규 : 우리나라처럼 동포가 긴요한 나라가 없다. 중국이 일어선 것이 화교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새마을운동 할 때 재일교포들이 많이 원조해 줬다. 70년대 중공업을 일으키고 경제개발할 때는 미국교포들이 도와줬다. KAIST 세울 때도 그들이 두뇌를 지원했다. 포항공대도 미국교포들이 두뇌지원을 해 준 전형적인 예 아닌가. 또한 중국조선족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90년대의 고도성장과 일산, 분당 건설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일교포는 경제적으로 도았고, 재미교포는 두뇌지원을 했고, 재중동포는 노동력을 지원했다. 현재 중국에 한국인이 20만 명이나 나가 있는데, 현지 동포가 없었다면 그렇게 못한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것은 우리가 교포가 있다는 것이다. CIS지역에 127개 민족이 있는데 일본인은 한명도 없다. 중국에 조선족이 200만 명이 있지만 일본인은 한명도 없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부러울 것이 없는데 하나 부러운 게 있다면 한국이 교포를 많이 갖고 잇다는 것이다.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포활용이다. 우리 교포들의 재력은 대단하다. LA에 가니 큰 빌딩 중 십여개 이상이 교포들 것이더라. 재일교포는 파친코를 많이 하는데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파친코에서 유통되는 돈이 일본5대 자동차회사 매출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이 파친코의 80%를 한국인이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재력을 한국에 투자하도록 연구해야 한다. 동포들 중 죽기 전에 조국에 공헌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잘 유도해서 나라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동포연구와 실천에 일생을 바쳐왔는데 동포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60년대말-70년대초경에는 마이너리티(소수민족) 연구가 유행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화교를 연구하려고 했는데, 6만명 중 2만명은 대만으로 돌아갔고 2만은 미국으로 떠나 2만명 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이왕 연구하는 바에는 해외의 마이너리티인 교포연구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번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방법의 문제였다. 한국인의 모습은 안에서 보는 것보다는 다른 문화권에 들어 갔을때 더 잘 보인다. 해외한인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모습, 정체성을 연구하고자 했다. 해외한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해 가는가 이런 것을 연구하고 싶었다.

재일동포의 경우 민단에만 84억을 지원하고 있는데, 총련계 등 조선적 동포에 대한 지원도 생각하고 있나?
다른 지역동포에 비해 민단에 대한 지원이 과다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60년대 총련과의 대립 때문에 생긴 산물이다. 가난한 중국이나 러시아에 교포가 더 많은데 대립이 적었기에 지원예산이 적었다. 민단에 대한 지원을 점차 줄이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생각에는 예산을 오히려 더 많이 줘서 조총련을 감싸 안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6.15정상회담후 조총련이 흔들리고 있는데, 대범하게 예산을 증액해 이들을 흡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단과 협력해서 총련을 껴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재일동포수자에는 귀화동포가 빠져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재일교포숫자가 65만 정도로 잡혀있는데 여기에는 30만명을 넘는 귀화동포가 빠져있다. 일본에서의 귀화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보고 있다. 일제를 겪었기 때문에 귀화는 일본에 대한 항복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제명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귀화동포들을 일본인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고 조국을 배반한 사람으로 본다. 이들을 ‘신일본인’이라 부르는데 ‘신일본인’에서 ‘신’자를 떼려면 3대가 걸린다. 이들도 포용해야 한다. 그들이 귀화한 것은 주로 사업때문이다. 은행에서 융자가 안 되니 귀화했던 사람이 많다. 현재 매년 일본인과 결혼하는 동포와 귀화하는 동포가 각각 1만명씩이다. 재일동포숫자가 매년 2만명씩 줄고 있다. 그러다 보면 재일동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귀화동포도 포용하고 총련도 포용해야 하며, 재일동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민족의 후예로서, 재일동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세계화시대인데, 민족이나 동포라는 개념이 퇴색하는 것이 아닌가?
국가가 생존경쟁단위였던 시대는 지나갔고, 21세기는 민족이 생존경쟁단위가 되고 있다. 이라크전도 그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앵글로색슨족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민족이 단위가 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일찍부터 국가보다 민족을 내세워왔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 한족대회에서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은 13억의 중국인과 6천만 동남아 화교의 재력과 3백만 미국계 중국인의 두뇌를 합치면 유태인보다 더 나으며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당시 하바드 대학의 철학교수 웨이 멩 투에게 주제강의를 시켰다. 우리나라는 내셔널리즘을 제대로 겪지 않았다. 내셔널리즘을 겪지 않고 인터내셔널리즘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발전에는 단계가 있는 것이다.

재단사업을 어떻게 이끌 것이고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사업은 ?
전임 권병현 이사장처럼 큰 것은 못할 것 같고, 대신 기초적인 것에 충실하고 싶다. 재외동포들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파악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기본적인 자료를 정리하고, 정책입안에 필요한 기초작업을 제대로 하고 싶다. 한상사업의 경우 실질적으로 김봉규 이사장때부터 해왔던 사업이다. 한상 같은 기존 사업은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고 해외동포교육에도 특히 중점을 둘 생각이다. 동포사회에서는 대를 내려갈수록 아이덴티티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18매)

인터뷰 : 최연구 www.choiy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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